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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중간광고’와 축구
[대학정론]‘중간광고’와 축구
  • 최재천 / 논설위원·이화여대
  • 승인 2007.11.19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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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잠을 청할 목적으로 무심코 켜놓는 몇몇 심야프로들을 제외하곤 TV를 거의 보지 않는다. 하지만 1990년대 오랜 미국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했을 시절에는 저녁때마다 열심히 온갖 프로그램들을 시청했다. 15년 만에 돌아온 고국의 문화를 다시 배우기라도 하듯 열심히 본 사극은 물론 온갖 다른 드라마들과 토론 프로그램들도 즐겨 보았다.
그러면서 하릴없이 TV를 탐닉하는 내 자신이 신기하기까지 했다. 요즘 우리 시청자들이 열광한다는 ‘미드’ 즉 미국 드라마에도 그렇게까지 빠져들어 본 경험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TV의 드라마들이 질이나 재미 면에서 미국 드라마보다 월등하기 때문인가 곰곰이 따져 보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한참을 고민하다 내가 찾은 결론은 바로 우리 드라마에는 중간광고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최근 우리 방송위원회가 중간광고의 허용 범위를 확대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따라할 게 따로 있지. 선진국들이 하고 있다고 무조건 다 따라해야 하나. 중간광고는 이미 실행하고 있는 나라마다 어떻게 하면 폐지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는 제도인 걸 왜 모르는가.
미국은 자국의 운동 경기에도 ‘월드시리즈’ 등의 오만하기 짝이 없는 이름을 붙인다. 하지만 고깝긴 해도 거의 모든 운동 종목에서 미국이 세계 제일의 기량을 보이는 걸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에는 예외가 있는 법이다. 전 세계가 열광하는 최고의 스포츠인 축구만큼은 미국이 최고가 아니다. 최근 천문학적인 돈을 제공하고 영국의 축구 스타 베컴을 영입했지만 좀처럼 축구 열풍이 불어주질 않는다.
미국에서 축구가 뜨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명들이 있다. 미국인들은 천성적으로 유럽식 축구보다는 미식축구를 더 좋아한다는 설명에서부터 이렇다 할 고급 장비 하나 없이 달랑 공 하나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스포츠가 돈 많은 미국인들에게 호감을 주기 어렵다는 설명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은 축구를 중계할 때 중간광고를 넣을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발한 억지를 부리는 일이라면 누구 못지않은 우리 국민인데 중간광고가 들어간 축구 중계방법을 찾아내지 말라는 보장이 있을까 두렵다.
후발주자는 본디 불리한 것이지만 한 가지 유리한 점은 앞서 간 자들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가 잘못을 인정하고 후회하는 제도를 애써 도입하려는 까닭이 진정 광고주들을 향한 대선용 아부라면 정말 용서하기 어렵다. 기업인 몇몇의 표를 얻으려고 진정 국민 전체의 심기를 건드릴 셈인가.

최재천 / 논설위원·이화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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