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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 좌표 그리는 브레인 …'역사의 검증' 필요하다
한국사회 좌표 그리는 브레인 …'역사의 검증' 필요하다
  • 김혜진 기자
  • 승인 2007.11.05 14: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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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과 지식인_ 지식인과 현실정치, 어떻게 관계 맺고 있나]② 미래 설계자들의 성향과 연구

다른 후보들과의 경쟁이 부각돼야만 하는 정치 현실에서, 지식인들은 차별적인 밑그림을 그리기에 여념이 없다. 지식인의 학문은 상호 토론과 설득의 과정에서 더 낳은 통합적 대안을 도출하기보다는 자기 것을 보호하기, 남의 것을 흠집내기에 쓰이기 십상이다. 지식인의 학문적 소신과 역량이 올바로 반영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일까. 현재 캠프에 있는 교수들의 연구는 미래 설계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 짚어본다.

글싣는 순서  ① 2007 대선공간의 지식인 지형도 ? 미래 설계자들의 성향과 연구 ③ 2007 정책 비전의 평가와 과제

지식인들은 전문성을 기반으로 끊임없이 한국사회를 진단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밑그림들을 그려왔다. 이론과 현실을 접목하려는 학자들의 노력은 지난 시기 정치권 밖에서 주요하게 이뤄졌지만, 정치권력과의 접점에서도 이뤄졌다. 그 방향성에 대한 평가는 뒤로 미루더라도 지식인의 연구는 한국사회를 이끌어온 제도 설계의 기본이 됐다는 데에 이론의 여지는 없다.

물론 지식인들이 한국사회의 주요한 설계자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정치권력이 학자를 기용하는 목적은 무엇보다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보조 이론을 발굴하는 데 있었기 때문이다. 최후 결정권이 정치인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식인들의 연구는 그 구체적 방향성을 제시했기에 역할의 중요성을 놓칠 수 없다.

박정희 정권 시절 교육문화특보직에 있었던 故 박종홍 서울대 교수의 국민교육헌장은 개발주의·국가주의를 합리화하는 설계도 역할을 했고, 유신 정권의 철학적인 기반을 다졌다. 문민정부 시절 박세일 서울대 교수는 세계화의 방향을 제시했으며, 국민의정부 시절 ‘중경회’는 개혁성향의 경제학자들을 중심으로 ‘DJ노믹스’의 기본 구상을 제출했다. 정치권에 참여하는 지식인들의 연구는 한국 사회의 미래를 예견하는 바로미터로 바라볼 수 있다.

캠프마다 분야별로 정책과 공약을 설계하는 교수들이 모두 포진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정책설계의 좌장 역할을 하고 있는 교수들은 경제학자들이 대다수다. 차기 대선의 의제가 ‘어떻게 먹고 사는 미래를 제시할 것인가’에 모아져 있다는 점도 무관하지 않다.

이명박 후보의 브레인 중 브레인으로 꼽히는 3인방 중 곽승준 고려대 교수와 백용호 이화여대 교수가 경제학 전공자이며, 정동영 후보와 관계하고 있는 류근관 교수 역시 서울대 경제학과에 재직하고 있다. 문국현 후보의 경우 브레인 트로이카로 꼽히는 신봉호(서울시립대)·김태동(성균관대)·윤원배(숙명여대) 교수 모두가 경제통이다. 한국의 경제학 전공자들이 주로 미국에서 학위를 받는 경우가 많은 만큼 대부분은 미국에서 수학한 인사들이다.

캠프별 역점 분야가 다른 만큼 차이점도 있다. 경제학자가 대거 포진한 가운데도 이명박 캠프의 곽승준 고려대 교수는 환경 경제학이 세부전공이고, 지리학자인 유우익 교수의 역할도 돋보인다. 핵심 공약인 대운하 공약에 힘을 싣고 있는 것의 연장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정동영 캠프 정책자문단의 수장인 권만학 교수는 대북정책과 남북관계를 연구한 정치학자다.

한국 사회의 시대 진단이 경제적 문제에 집중된다는 차원에서 차기 정부의 브레인들이 경제학자 중심으로 이뤄진 것은 일견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우려의 시선도 있다. 윤종빈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정부 운영은 미시적 접근도 중요하지만, 거시적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 국정운영이 합리적 계산에만 치중하다보면 공공선의 차원에서 가치관이나 방향을 자칫 소홀히 할 개연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경제통 중에서도 곽승준 교수는 ‘이명박 대세론’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가장 주목받는 학자 중 한 명이다. 곽 교수는 그간의 연구 성향을 볼 때 반개발주의적 입장에서 개발주의의 선봉장으로 돌아섰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곽 교수의 세부 전공도 환경적 가치에 주목하는 환경경제학이다. 그는 1991년 미국의 밴더빌트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아 1995년 고려대에 임용됐다. 이후 ‘영월댐 건설로 인한 환경피해: 자연보전의 가치추정(1999)’, ‘동강자연환경 보존의경제적 편익추정(2001)’ 등 환경의 가치를 측정하는 경제학에 매진했다.

실천적 차원에서도 그는 환경정의 시민연대, 환경운동연합 등 환경운동진영에서 활동했다. 환경운동연합 정책국의 한 관계자는 “곽 교수는 훼손되고 있는 환경의 가치가 매우 크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특히 댐건설 반대운동에 이론적 토대를 제시해왔다”며 반개발주의적 입장을 견지했다고 전한다.

학문적 소신과 정치적 입장의 간극
곽 교수가 환경경제학 학자로서 주목받은 이유는 ‘조건부 가치 측정법’이라는 방법론을 정립했기 때문이다. 환경이라는 비시장적 가치를 시장적 가치로 전환하는 기준을 제시, 편익을 분석하면서 각종 환경정책의 전문가로 이목을 끌었던 것이다. 반개발주의 진영에서 활동한 경험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구는 경제적 가치가 더 큰 것을 선택해야 한다는 입장에 서 있다는 점에서 개발주의로 돌아설 수 있는 경제주의적 면모를 보이고 있다.

그가 정치권과 연을 맺은 것은 환경전문가로서의 이력에 의해서였지만, 최근에는 경제주의적 색채를 강화시켜왔다. 초기에는 2000년 국무총리 산하 영월댐 건설 타당성 조사단을 시작으로 정치권에 발을 들였다. 그러나 이 후보를 직접적으로 지원하게 된 2004년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의 활동을 기점으로 개발주의 정책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나라당의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는 대표공약인 한반도 대운하 사업성 평가를 맡으면서 이명박 캠프의 정책브레인으로 입지를 굳혔다.

곽 교수와 함께 환경경제학회 회원으로 활동하는 홍종호 한양대 교수(경제학)는 “적어도 학자로서 평가하기에 곽 교수의 최근 모습은 전형적인 학문 왜곡으로 볼 수 있다. 환경의 경제적 가치 평가라는 연구를 통해 새만금사업, 영월 동강댐 사업 등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왔는데, 최근 대운하 공약 연구는 연구방법조차도 기존과 다른 방식을 적용하고 있어 공약의 타당성을 지원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한다. 

구체적 비전 제시하지 못한다면…
권만학 경희대 교수(정치학)는 당내 경선 선대위부터 경선 이후 최근 재편된 선대위까지 정동영 캠프의 정책 수장이다. 권 교수의 연구 이력과 정동영 캠프 공약과의 관계는 매우 자연스럽다. 양자 모두 포용적인 남북관계에 방점을 찍고 있다. 학자로서 주목할 점은 소신보다는 역량의 측면에 있다. 정동영 후보의 대북정책 전반을 얼마나 구체적이고 전문적으로 뒷받침하고 있느냐에 관심이 쏠리는 것이다.

권 교수는 동양통신, 연합통신에서 기자 생활을 한 후 유학길에 올라 텍사스 오스틴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박사논문은 ‘한국자본주의 성장과 정치변동’으로 한국정치 분야였지만, 세종연구소 연구원 활동 이래 남북한 관계와 통일정책을 지속적으로 연구하면서 북한 및 통일 전문가로 탈바꿈했다.

전문 분야뿐 아니라 방향성도 정 후보의 대북정책과 통한다. ‘한반도 탈냉전과 통일안보 정책(2001)’이라는 논문은 이를 잘 드러내 준다. 권 교수는 이 논문에서 “냉전이 끝난 상황에서 통일은 흡수통일의 형태로 진행될 수밖에 없으며, 이러한 전망 속에서 붕괴 압박이라는 대결방식보다 화해협력이 유익한 선택이 된다”고 밝히고 있다. 남북한 국가연합으로 가는 큰 틀에서 대북지원을 통한 평화유지 정책을 펴야한다는 공약의 방향성과 동일한 맥락이다.

이렇듯 정치에 참여하는 학자로서 권 교수의 소신은 매우 일관적이다. 그러나 학자이자 정책자문단장의 입장에서 정 후보의 가치와 방향을 얼마나 잘 구체화하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좀 더 살필 필요가 있다. 권 교수가 대북정책의 전문가로 캠프의 수장을 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의 장기적 전망과 과정이 미흡하다는 비판이 주목된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연구실장은 “권 교수는 정동영 후보가 제시하던 대북 및 통일정책 내용에서 진일보한 구체적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남북한 관계 발전을 점진적 통일로 연결시키기 위한 전략적 접근이 결여됐다는 점이 대표적이다”라고 지적한다.

관료·정치인과 차별적 된 시각 있나
문국현 후보의 정책 수장인 신봉호 서울시립대 교수는 미시경제학과 산업조직을 주전공 분야로 한다. 평생학습체제의 구축과 중소기업의 강화를 통한 고용창출이라는 뉴패러다임은 공정한 경쟁질서 확립과 시장의 투명성 확보에 주력한 그의 연구의 연장선에 있다.

신 교수는 서울대를 졸업한 뒤 워싱턴 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서울시립대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외국기업에 의한 산업별 독점지대의 추정 및 새로운 무역정책의 방향(1995)’이라는 논문과 『한국의 부패와 반부패 구조(2000)』 등의 저서에서 드러나는 그의 연구는 주로 기형적인 산업구조의 해부에 있었다.
신 교수가 자신의 연구 저변을 확대하고 깊이 있게 들여다보기는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중경회에 속해 DJ노믹스의 기반을 다진 이래 신 교수는 김대중 정부 시절 정책비서관, 노무현 정부의 정무기획비서관, 정책기획조정비서관 등 두 정부에서 경제브레인 역할을 해왔다. 지난 두 정부 시기 자신의 연구보다는 정책개발에 그만큼 힘을 쏟았을 것이란 짐작이다.

오랜 기간 정책에 몰두했던 이력은 학자로서 관료 및 정치인과 다른 차원의 전문성을 반영할 수 있을 것인가에 의문의 여지를 남긴다. 뉴패러다임이라는 이론이 한국사회에 던진 의미는 적지 않지만, 발표논문이나 저서 등 학계에서 그가 남긴 족적은 그리 많지 않다.

지식인은 어떤 역할을 짊어져야 하는가
이미 각 캠프에 참여하고 있는 지식인들은 연구 소신과 역량을 발휘해 한국사회의 청사진을 제출한 상태다. 교수들의 경제학적, 정치학적, 지리학적 전문성은 한국 사회 구상에 밑거름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참여 자체에 비난의 화살을 쏟을 근거는 없어 보인다.

최근 현직 총장의 캠프 참여를 계기로 불거진 폴리페서 논쟁도 지식인의 정치 참여를 판단하는 기준이 변화됐음을 보여줬다. 비난의 중심에는 현직 총장으로서의 직무유기, 학교를 대표하는 상징적 인물로서 정치적 중립성의 훼손가능성에 모아졌지, 참여 자체에 대한 비난은 부각되지 않았다. 이제 지식인과 정치에 대한 논쟁의 축은 ‘관계맺음 자체’에서 ‘어떤 관계맺음’인가로 옮아가고 있다. 소신과 역량, 전문성을 얼마나 바람직하게 반영하는가가 판단의 중심에 있는 것이다.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정치학)는 “학자들의 정치참여가 바람직하고 또 필요한 부분은, 관료들의 단기적인 시각과 정치인들의 이해관계에 입각한 시각과 달리 장기적이고 논리적인 안목을 가지고 한국 사회의 미래를 설계하는 부분에 있다”고 전한다. 지식인으로서 현실 정치에 필요한 역할이 무엇인가, 차별적인 시선은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지식인이 정치인의 이용 대상이 되는 현실에서 자구적인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임현진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문국현 후보와 지인으로 지내고 있으나, 수업을 하고 있는 관계로 자문단 활동 계획이 없으며, 지지선언 명부에도 공식적으로 의사를 밝힌 적이 없다”고 전했으며, 정동영 캠프에서 가족행복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만드는 등 자문 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도 “비공식적으로 관여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당분간 미국에 머무르기 때문에 활동계획이 없다”고 밝혀왔다. 참여에 신중을 기해야할 대목이다.

이제 고민해야 할 것은 지식인이라는 특수한 위치가 해야 할 역할을 둘러싸고 ‘올바른 관계맺음’을 했는가에 있다. ‘보험용 교수직’, ‘줄서기 지식인’이라는 부정적 꼬리표를 떼어내고,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위치에서 미래 설계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방향의 모색에 관심을 집중해야할 때다.      

김혜진 기자 khj@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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