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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한국학, 부흥 아니라 위기 상태 출판사업 등 국내외 학자 共助 필요”
“유럽 한국학, 부흥 아니라 위기 상태 출판사업 등 국내외 학자 共助 필요”
  • 제갈춘기 / 영국통신원·카디프대 박사과정
  • 승인 2007.11.05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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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동향] 영국서 열린 ‘한국학 공동학술대회’를 다녀와서

□ 지난달 24일부터 사흘간 영국 에딘버러대학에서 ‘1회 동아시아 소장 연구자 회의’와 ‘4회 유럽 한국학 대학원생 학회’가 열렸다. 이번 공동학회는 유럽의 중견 및 소장 한국학자, 대학원생을 비롯해 여러나라에서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치러졌다.

지난달 24일부터 사흘간 영국 에딘버러 대학에서 제1회 동아시아 소장 연구자 학회와 제4회 유럽 한국학 대학원생 학회가 공동으로 개최됐다. 이번 공동 학회는 유럽의 중견 및 소장 한국학자, 대학원생을 비롯해 여러 나라에서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치러졌다. 이번 학회가 가능했던 것은 한국국제교류재단과 일본국제교류재단, 영국 학술원(British Academy), 영국 경제 및 사회 연구 위원회(Economic and Social Research Council), 에딘버러 대학 등 여러 단체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장학자 및 대학원생을 중심으로 치러진 학회로는 영국 최대 규모의 동아시아 학회를 치러냈다는 점이 이번 학술대회의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패널 발표자가 전원참석하였다는 점이 이번 학회에서 기록할 만한 점이다.
학술대회 첫날 기조 발제에 나선 셰필드대학의 글렌 후크(Glenn Hook) 교수는 오키나와 미군 기지를 둘러싼 긴장관계에 대해서 발표했다. 이틀에 걸쳐서 진행된 국제 워크숍에서는 주로 유럽과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중견 동아시아 학자들이 각 국가의 정치제도와 국제 안보 등의 현안을 중심으로 의견을 나눴다. 이와 더불어 3일에 걸쳐서 20여개의 패널을 통해 약 60편의 논문이 발표됐다. 국제 워크숍 세션은 이번 학회를 위해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저널과 전문 학술지 발간을 목적으로 구성되어 진행돼온 장기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이번 워크숍에서 발표된 논문들은 저널 특집호로 묶여서 나올 예정이며 2009년 유럽 정치연구 컨소시움(The European Consortium for Political Research)에서도 워크숍을 구성할 예정이다.

한국계 러시아인 조명한 다큐멘타리 선보여
학술대회 둘째 날에는 정 데이비드 교수(미시건 대학 한국학 프로그램 부교수)와 맷 디블(Matt Dibble)씨가 공동 제작한 다큐멘터리 ‘고려사람: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Koryo Saram: The Unreliable People)’이 특별 상영되기도 했다. 이 작품은 강제이주정책으로 인해 현재의 카자흐스탄에 정착한 한국계 러시아인의 삶을 다룬 1시간짜리 다큐멘터리로 강제이주의 역사뿐만 아니라 오늘날 ‘고려사람’이라고 불리는 한국계 러시아인들이 가지고 있는 복잡한 민족적 정체성 등 복잡다단한 문제들을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의 부제이기도 한 ‘신뢰할 수 없는 사람들(unreliable people)’이라는 말은 스탈린이 1937년에 대량 인종 청소를 감행하면서 한 말로 당시 고려인은 국가의 적으로 규정됐다. 여러 참석자들 중에서도 특히 러시아 한국학자들이 많은 관심을 보였고 고려 사람이 한국의 전통 풍습을 유지하는 모습(결혼식과 돌잔치)은 많은 참석자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이 다큐멘터리는 올해 상파울로 국제영화제 공식 초청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난 20년 동안 한국에 대한 관심은 영국을 비롯한 유럽 지역에서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다. 이는 한편으로는 한반도의 정치적 긴장관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차지하는 중요성과 영향력 때문이기도 하다. 2006년 12월에 열린 ‘제 1회 범세계 한국어 교육 단체·지역 대표자 세미나’에서 연재훈 교수가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영국에서의 한국학 및 한국어교육은 1940년대에 런던대학교 아시아-아프리카대학(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 SOAS)에 한국어 강좌가 설치되면서부터 시작됐다.
연 교수에 따르면 “1989년 쏘아즈에 한국학 학위 과정이 생기고, 빌 스킬렌드(Skillend) 교수 혼자서 외로이 지키던 한국학 연구소의 교수진이 6명으로 늘어나면서, 지역학으로서의 한국학 연구도 그 열기를 더해 가고 있다. 한국학 전공 학생들의 숫자는 학년당 10~15명 정도로, 중국학이나 일본학에 비하면(학년당 약 40~50명) 적지만, 매년 그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 셰필드대학에 한국학 과정이 설치된 것은 1979년 산학재단으로부터 5년간의 기금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됐다.
1987년에 연세대와 학생 교류협정을 체결하고 1990년에 처음으로 학위과정을 개설했다. 셰필드 대학에서 한국학 학위 과정을 관장하는 곳은 동아시아학연구소(School of East Asian Studies, SEAS)이다. 한국 종교 연구가 전공인 쥬디쓰 체리 교수가 한국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어 강의는 리즈 대학에서 한국 영화에 대한 연구로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이향진 교수가 책임을 맡고 있고, 시간 강사들이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옥스퍼드 대학의 한국학 연구는 한국 국제교류재단의 지원으로 1994년부터 시작됐는데, 아직 한국학 단독으로는 학사학위를 받을 수 없고 중국학이나 일본학의 선택 과목으로 가르치고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1996년 처음으로 한국학 석사 학위를 받은 학생이 생겼고 대학 측에서도 학부 과정의 한국학을 독립된 학위 과정으로 승격시키기 위한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재외동포신문, 2007년 2월 22일) 하지만 아쉽게도 영국만 놓고 이야기하자면, 지역학으로서 한국학에 대한 관심은 점점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영국에서 중국학과 일본학이 주요 지역학 분야로 자리를 넓혀가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현재 영국에서 한국학을 전공으로 선택해 연구하고 학위를 수여하는 대학은 런던대학, 셰필드 대학, 옥스퍼드 대학 등에 그치고 있다. 이 밖에도 뉴캐슬(Newcastle) 대학, 덜험(Dulham) 대학, 리즈(Leeds) 대학 등에서 한국어 강좌를 개설한 적이 있지만 현재 재정 문제와 학생 수 부족으로 중단된 상태다.

“한국학 정치학자로는 살아남을 수 없어”
이 점에서 해외 한국학 지원과 관련해 국내에서도 관심이 환기 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학술대회를 준비한 김영미 박사(에딘버러 대학 박사후과정 연구원, 정치학)를 비롯한 소장 한국학 연구자들은 해외 한국학을 개인의 역량에 의존한 단발성 행사 위주로 진행 할 것이 아니라 국내외 연구 기관이나 연구자들과 연계해서 지속가능한 학제적이고 다문화적인 비교연구를 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는 것이 핵심과제라고 입을 모았다. 김영미 박사는 한국 정치학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연구를 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현실을 지적했다.
“한국학은 현재 부흥 상태라기보다는 위기상태다. 저만 해도 한국학 정치학자라는 이름으로는 대학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어서 동아시아의 다른 국가로 연구대상을 옮겨야 하는 실정이다. 실제로 연구기금을 신청할 때 한국, 대만, 일본을 비교하는 계획을 제출했다. 한국만 했더라면 연구기금을 받을 확률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많은 한국학 전공 정치학자들이 대학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에딘버러 대학에 재직 중인 권헌익 교수(사회인류학과)는 영국에서 오랫동안 한국학을 고민해온 학자답게 한국학의 미래에 대해서 포괄적이면서 구체적인 발전상을 제시했다.

“한국에 기대하는 것은 재정지원이 아니다”
“무엇보다 지역학(특정지역의 문화와 역사)과 국제학(지역을 구성요소로 한 국제 혹은 세계 체제)이 기능적으로 분화된 상황을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권 교수는 이 두 영역을 분석적으로 통합하고자 하는 노력에 대한 아낌없는 지원이 필요하다며 지역학과 국제학의 유기적인 연대를 강조했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한국학 역시 “연구 중심이 국가경제발전모델연구에서 진정한 의미에서 지역의 (동아시아) 경제발전, 정치발전, 문화교류로 확대돼야” 함을 강조했다. “특히 한국은 냉전의 체제 내에서 경제발전을 이루어 냈고 세계체제의 붕괴과정에서 정치적 민주주의를 이룩한 저력을 가지고 있다. 이 점에서 세계 변화에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이지요.” 권 교수는 민주적이고 호혜로운 동아시아 질서를 형성하는 과정에 북한의 경제적·정치적 발전이 중요한 이슈임을 지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처럼 해외에서 한국학을 하고 있는 한국 연구자들이 국내 연구기관이나 연구자들에 기대하는 것은 단순히 재정적인 지원만은 아니다. 권 교수가 지적한 것과 같은 연구주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유럽공동체 연구와 동아시아 지역학의 밀접한 교류가 요구되고 동시에 유럽과 한국의 연구 인력들의 생산적인 공조가 필요하다. 바로 이 지점이 한국학 지원 단체들의 이해와 지원이 절실한 부분이다. 구체적으로는 국내 연구자와 해외 연구자 사이에 특히 출판 사업에서 긴밀한 공조와 상호지원이 필수다. 왜냐하면 한국학과 동아시아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활발한 해외출판이 동아시아의 이슈를 국제사회에 공론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학회를 통해 쌓인 경험과 역량이 내년 네덜란드 라이덴대에서 개최하는 5회 유럽 한국학 대학원 대회에 단단한 발판이 되기를 바란다. 학술대회 전문은 유럽 한국학 대학원생학회 홈페이지(http://www.ksgsc.org)에서 볼 수 있다.

제갈춘기 / 영국통신원·카디프대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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