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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학·경제학 전공한 77~79학번, 당·정·기업 세대교체 중심
법학·경제학 전공한 77~79학번, 당·정·기업 세대교체 중심
  • 이중 전 숭실대 총장
  • 승인 2007.10.22 15: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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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의 中國 散策]49. 17기 인민대회와 새로운 지도부의 탄생

대만 국적을 가진 화교 한 분과 그가 운영하는 중국식당에서 짧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중화민국(대만) 여권과 중화인민공화국이 발행한 입국허가증 둘을 내게 보여주었다. 그들 부모님의 고향은 중국 산동성이지만 그들 자신들은 한국에서 태어났다. 중화인민공화국과 수교한지 15년이 됐는데 왜 아직 대만 시민권을 가지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대만 여권이 외국 나들이에 편리하다는 대답이었다. 선조의 고향에는 자주 가느냐고 했더니 대체로 1년에 한 번 씩은 다녀온다고 했다. 올 봄에도 다녀왔다고 한다. 10여 년 전에 갔을 때에는 가난하고 찌든 삶이, “야 공산당 사회가 다르긴 다르구나” 하면서 하루라도 빨리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었다고 웃는다. 10년 전과는 완전히 다르게 변모한 중국 대륙을 다녀오는 그들의 가슴은 뿌듯했을 것이다. 자랑과 자신감이 대화 속에 용해돼 있었다.

대만 국적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중국 정부 입장에선 엄연한 중국 국민이다. 북경, 상해 등 어느 국제공항에 가도 대만 국적 중국인들은 홍콩 사람들과 같은 출입구를 이용하게 돼있다. 외국인이 아닌 것이다. 대륙의 정부는 대만인의 자유로운 출입을 허용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대만 기업의 중국 진출을 장려하고 각종 특혜를 베푼다. ‘경제 통일’부터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도 대만의 집권당은 대만 독립을 부르짖고, 대륙 정부는 절대로 대만 독립은 허용할 수 없다며 엄포를 놓는다. ‘일국양제’로 평화통일을 지향한다고 이번 17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도 정부의 방침을 거듭 천명하고 있다.

지난 15일부터 북경에선 제17기 인민대표대회가 열리고 있다. 서방 언론의 촉각은 이번에 결정될 정치국 상무위원의 교체 범위와 그들의 정치적 배경과 성분에 집중되고 있는 것 같다. 호금도 주석이 승리하느냐, 상해방이 이기느냐, 이분법적으로 권력투쟁에만 관심을 보이는 인상이다. 그러나 정작 인민대표대회에서 보인 쟁점이나 관심사항은 개혁개방으로 다져진 경제발전의 토대 위에서 중국의 새로운 진로와 방향을 모색하고 설정하는 데 있다고 보아야 한다. 빈부격차 해소를 정점으로 교육, 의료, 주택, 취업 등 삶의 질을 제고하는 보다 광범위한 화두들이 이번 대회를 지배하는 주요 논점인 것이다.

북경의 지역당 대표토론에서 한 대표는 “공평 교육의 문제가 화두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 전제는 교육 기회와 우수한 교육 서비스를 누구에게나 균등하게 제공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광동성 珠海지역의 한 대표는 “수입의 평등이 있어야 비로소 사람의 평등이 있다고”고 외쳤다. 당면한 중국의 고민과 난제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중국의 지도부는 이미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선 지 오래다. 지난해 10월 제16기 중전회에서 호금도 주석의 和諧社會論이 당 지도이념으로 채택된 바 있다. 중국 정부가 2020년 실현을 기약하는 9개 당면 목표다.

① 사회주의 민주법제 정비. ② 도농 간, 지역 간 격차 축소. ③ 취업과 사회보장 체계수립. ④ 기본적인 공공 서비스 체계완비. ⑤ 사상과 도덕의 소질 향상. ⑥ 창조형 혁신국가 건설. ⑦ 사회 관리체계 완비. ⑧ 효율적인 자원 이용. ⑨ 높은 수준의 전면적인 小康社會 실현이 그것이다.

이번 대회에서는 이러한 국가 목표를 재확인하고 그 실천 방안을 보다 구체화하기 위한 새로운 지도부를 구성하게 된다. 지도부의 재충전이다. 단순히 권력투쟁으로 보는 시각은 굴절 또는 왜곡됐다고 할 것이다. 오늘의 중국은 당과 정부 간부들에 대해 革命化, 知識化, 專業化, 年輕化를 통한 업그레이드를 강하게 추진하고 있다. 당의 정체성을 위해서도 혁명성 고양은 자연스런 목표이다. 실제로 중요한 것은 지식화와 전문화, 그리고 세대교체라는 사실이다. 중국 당정의 최상층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들의 교체가 초미의 관심사인 것도 다 이런 배경 때문이다. 이 신문이 나올 무렵이면 대표자 대회도 끝나고 지도부의 윤곽이 확실해지겠지만, 거론되는 인물로는 리커창(李克强) 요령성 당 서기, 리위안차오(李源潮) 강소성 당 서기, 보라이시(薄熙來) 국무원 상무부장, 시진핑(習近平) 상해시 당 서기 등이 이번에 새로이 정치국 위원이나 상무위원으로 발탁되리라는 전망이다.

그들에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그들 모두가 ‘后三屆’에 속한다는 사실이다. 중국에서는 1977, 78, 79년도에 대학에 입학한 세대를 가리켜 ‘后三屆’라고 일컫는다. 중국의 당, 정부, 기업 등 다방면에 걸쳐 이들 학번 세대들이 주된 미래 세력으로, 중국의 희망으로 떠올라 있는 것이다. 그들은 대체로 1947년~55년생들로 구성돼 있다. 왜 77, 78, 79학번인가. 여기에 등소평의 교육개혁과 미래 지향의 강력한 의지가 드러난다. 1976년 9월에 모택동이 세상을 떠났다. 10년을 끌었던 문화대혁명의 불길이 사그라지면서 ‘4인방’이 타도된다. 역사의 전환점이다. 명목상의 후계 주석은 화국봉이었지만, 대세는 당의 사상 개방과 개혁개방을 내세운 등소평의 집권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등소평은 대학의 재건, 대학 입시의 부활을 단행했다.

그 이전의 대학 입학생은 ‘工農兵學員’에 국한돼 있었다. 공장에서 농촌에서, 또는 군대에 있는 사람들 중에 사상성이 좋고 모범이 되는 사람들을 골라 대학으로 보내주었다. 그러다보니 자질이나 능력 면에서 차이가 심했다. 물론 현재의 중국 지도부에도 당시의 공농병 학원 출신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새로 대학 입시가 부활한 뒤에 어렵게 대학 입시의 관문을 뚫고 용케 대학에 진학했던 ‘후삼계’만큼 사회적 인식이나 기대를 갖게 하지는 못한다. 앞에서도 밝혔지만, 그들의 나이차도 심했다. 농촌이나 공장에서 5년 내지 7, 8년 씩 생고생을 하며 ‘썩은’ 젊은이들이었다. 출신 성분이 좋지 않거나 우파분자로 낙인찍혔던 사람들의 자제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냥 이렇게 인생이 끝나는구나 하고 체념과 절망감에 사로잡혀 있던 유능한 인재들이 1977년 가을, ‘恢復高考’의 소식을 듣고 몸부림치며 흥분했던 것이다. 지금도 중국에서는 대학 입시 통일고사를 ‘高考’라 한다.

현재의 정치국 상무위원들은 거의가 이공계 출신으로 기술 개발형 경제 발전의 주역들이라 할 수 있다. 이번에 거론되는 젊은 지도자들은 대개가 법학이나 경제학을 전공했다. 북경대, 청화대의 경제학 박사나 법학 박사들이다. 경제 사회적인 안정과 조화를 위한 새로운 정책 개발을 위해서도 그들을 필요로 하는 것이 중국이 당면해있는 현실이다. 지도자 교체도 단순한 年輕化 뿐만이 아니고, 전문성의 교체도 아울러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老鬼란 괴상한 이름의 작가가 있다. 『血色黃昏』,『母親楊沫』이란 작품으로 유명한 그는 중국에서 천재작가로 통한다. 그는 문화혁명 기간 중, 몽고 자치구의 건설병단에서 5년간 갖은 고생을 했다. 그는 1976년에야 老戰友의 한 사람인 아버지 친구의 도움으로 겨우 산서성 大同으로 올 수 있었다. 부모로부터도 따돌림을 받고 그는 외롭게, 처절하게 혼자 ‘語文지식’을 공부하며 창작 수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도 ‘고고 회복’의 소식이 들려왔다. 1977년 12월 6일 오전 9시, 그는 대동시 제10중학 교실에서 치르는 ‘고고’에 참가하면서 지나온 30년 젊은 날의 인생을 돌이키며 극도로 흥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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