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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권력논쟁, 이렇게 전개됐다
문학권력논쟁, 이렇게 전개됐다
  • 교수신문
  • 승인 2001.1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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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의 정당성 둘러싼 에꼴들의 지적 전투
게임에 법칙이 있듯이 사회에도 법칙이 있게 마련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법칙 속에서 나름의 삶을 영위한다. 이들과 좀 다른 부류의 인간들이 있다. 눈앞에 주어진 법칙에 그냥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장막에 가려진 법칙을 하나하나 발견해 나가고자 하는 이들이다. 이런 부류의 인간들을 일러 우리는 ‘지식인’이라고 한다. 지식인들 역시 게임의 법칙에 따라 형성되는 가치 체계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법칙을 발견해 나가고자 하는 존재인 만큼 그러한 가치 체계에서 한 발짝 떨어져 스스로를 객관화시키는 데 유리하다. 지식인들 중에서도, 다시, 다른 영역을 차지하는 부류가 있다. ‘게임의 법칙’을 넘어서서 ‘게임의 의미’를 묻는 것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이들이다. 바로 철학자들이 그러한데, 그들은 그 의미를 따져 물으면서 게임이 게임으로 성립하게끔, 법칙이 법칙으로 통용되게끔 정당성을 부여한다.

철학자들이 치밀한 논증을 통해 그러한 사실을 설명하고자 한다면, 문학인들은 그러한 세계를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젊은 작가들의 작품 세계에 강렬한 죽음 의식이 발견된다는 것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이 시대에 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에게는 단 두 가지 길이 있을 뿐이다. 창작을 하거나 아니면 살인에 이르는 길”을 얘기하는 김영하, 인간을 단지 야수의 차원에서 파악하여 살육의 세계를 보여주는 백민석, “무엇이 나를 그토록 괴롭혀서, 무엇으로부터 달아나겠다고 나는 지구의 반대편까지 가려고 했을까요, 병신처럼. 왜 훌훌 떠나 이 지긋지긋한 피를 갈지 못했을까요”라고 묻는 한강은 그 대표적 예로 꼽을 수 있다.

많은 작가들이 죽음 의식에서 자유롭지 못한 까닭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작동하는 법칙이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디에도 몸 둘 곳 없어서 우리 사회의 바깥으로 나아가려는 의식이 죽음으로의 傾斜로 나타나는 것이다. 사회의 바깥이란 결국 죽음의 영역이 아닌가. “낡은 것은 멸해 가는데 새로운 것이 오지 않을 때 위기가 온다.” 그람시가 말하는 위기, 즉 정신적 공황이 바로 죽음 의식의 다른 말이다. 더군다나 지금 활동하는 작가의 생물학적인 나이를 꼽아본다면, 80년대적 가치와 90년대적 가치가 정면적으로 충돌하여 연이은 분신을 낳았던 91년 5월의 충격과 따로 이야기할 수도 없다. 91년 5월은 역사를 파악하는 시선의 방향과 그에 따르는 가치가 顚倒되는 상징적 사건이었는데, 그 정국의 중심에 그들이 서 있었던 것이다.

‘문학권력논쟁’이 벌어지면서 90년대 초엽부터 전개됐던 ‘신세대문학논쟁’까지 언급되는 까닭은 여기에 있다. 신세대문학을 옹호하던 이들의 근거는 사회의 급격한 변화와 이를 반영하는 문학 정신의 요구에 바탕한다. 물론 그러한 주장은 타당성이 있으나, 이는 민족문학 진영에 대해서, 즉 당시 문단 지형의 변화에 대해서만 해당될 따름이다. 그들의 옹호가 충분해지기 위해서는 변화하는 사회, 그러니까 자본주의적 질서가 공공해지는 움직임에 문학은 어떤 방식으로 대응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동반되어야만 하는 것. 그러나 두 번째 물음은 제대로 제기되지 못했고, 그에 따라 문학 내 자본력의 영향력은 팽창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됐다. 이러한 와중에 특정 학맥이 보이는 공적 제도의 사유화 현상 또한 불거지기 시작했고, 진보를 표방하는 문학단체가 과연 진보의 입장을 제대로 고수하고 있는가의 의심이 제기되기도 했다.

따라서 ‘문학권력논쟁’이 먼저 문학과 사회의 관계 정립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현상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신세대문학논쟁’이 문학과 사회를 잇는 매개지점을 흐리는 방향으로 나갔다면, ‘문학권력논쟁’은 그러한 지점을 분명히 세우는 경향을 띠기 때문이다. 이 논쟁이 언론권력과 문학권력의 결합으로 얘기되는 동인문학상 논쟁, 언론개혁을 둘러싼 문제로 확대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학벌 문제가 계급재생산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과 이어지면 문단 내 그러한 현상을 문제 삼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논쟁은 문단 안팎을 둘러싼 권력의 정당성에서 빚어진다. 그러기에 그것은 다시 ‘문학의 의미’로 가 닿는다. 한 쪽에서는 ‘게임의 법칙’과 ‘게임의 의미’를 대립시키면서 법칙의 문제, 즉 삶의 구체적 운영방식에 대한 접근을 타락한 것으로 파악하기도 하고, 그 반대편에서는 ‘게임의 법칙’을 따지는 수준에 머무르기도 하지만. 그 수준을 넘어서고자 하는 이들은 문학의 성찰까지도 감싸안고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기도 한다. 철학과 문학의 사이, 철학자와 작가들의 사이, 저항과 죽음의 사이에서, 문학평론가들은.

홍기돈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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