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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맞은 편지
도둑맞은 편지
  • 김용희
  • 승인 2007.10.22 14: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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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편지는 잊혀진 기억들을 떠올리게 한다. 편지는 사실 ‘고백’의 형식인 것이다. 우리는 말하고 싶은 중요한 일을 큰 소리로 말하지 않는다. 깊숙한 비밀은 언제나 은폐된 봉인이 필요한 법. 하여 편지는 둘 만의 기억에 대한 완벽한 봉인이자 신표다. 봉함엽서와 긴사각의 하얀 봉투는 비밀의 사연이 봉인된 하얀 사각의 관(冠)이었던 셈.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정년퇴임을 앞 둔 노교수가 자신의 후임 젊은 교수를 불러 자신의 연구실에 숨겨둔 옛날 첫사랑과의 연서를 보관해줄 것을 부탁했다. 노교수는 더 이상 자신의 비밀을 숨겨둘 곳이 없었던 것이리라.

그러나 때로 관 뚜껑이 열리듯 내밀한 비밀이 햇빛 속으로 드러날 때가 있다. 그것은 아름다운 기억의 재발견이 되기도 하고 때로 추문이 되어 추악해지기도 한다. 지난 9월 영인문학관에서는 문인들의 편지전시회가 열렸다. 문인들의 연서, 스승과 제자사이의 편지, 부모와 자식간의 안부서신들이 육필로 공개되었다. 소설가 박범신 선생은 그 자리에서 젊었을 때 아내에게 썼던 연애편지를 좌중에게 읽어주기도 했다.

때를 같이 해 언론에서는 신정아씨와 변양균 실장 사이의 연서가 공개되었다. 사람들은 제 삼자의 스캔들을 들먹이며 ‘로맨스’와 ‘불륜’사이에서 이죽거렸다. 러브레터는 당사자에겐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의 집적체지만 그들 둘을 제외한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는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사랑의 형식은 ‘진정성/유치함’사이를 언제나 오가기 때문에. 편지, 그것도 연서는 당사자와 그 외의 타자들을 구분하는 극단적 배타성을 전제하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공개된 편지’는 이미 편지가 아니다. 공개된 비밀은 이미 비밀이 아니다. 둘 만의 사연과 암호들은 대중 관음증의 대상이 될지언정 진정 해호되지 못하는 수수께끼다. 문인전시회에서 공개된 편지는 진짜 비밀 편지를 숨긴 또 다른 은폐의 형식일 뿐이다. 신씨와 변씨 사이 공개된 편지는 해석될 수 없는 ‘내밀성’을 희롱거리로 만든 블랙코미디였다.

나는 왠지 ‘편지’가 공개된다는 것에 대한 불쾌감을 갖는 것 같다. 전자메일이 검색당하고 삭제 후에도 끝없이 복원되는, 결코 죽일 수 없는 터미네이터처럼. 죽여도 죽여도 다시 살아나는. 이 증거인멸불가능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이 나는 끔찍한 것 같다. 미드 <CIS과학수사대>에서처럼 철저하게 과학적으로 검증되고 검열당하는 전자감시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이 나는 두렵다. 너와 나만의 깊숙한 비밀을 이제 어느 곳에도 담아둘 수 없다는 사실이. 언젠가 노출, 발각될지 모른다는 사실이.

아, 그러나 이 가을에 노출커녕 발각당할 편지 한통조차 나는 받지 못했다. 비밀스런 쪽지나 메모 한 장도. 메모는 언제나 떼다 붙였다가 가능한 포스트잇으로 대체됐다. 잉크냄새가 나던 종이편지는 전자메일로 대체됐다. 연말이면 직접 카드를 쓰던 학생들은 학기말 강의평가제 코멘트 란에 익명의 복수극을 펼치는 것으로 교수를 단죄했다. 강의 평가란에서 학생의 코멘트란 기껏 답신할 수 없는 발신인 불명의 편지일 뿐이니…. 오, 그러니, 우리는 진정 ‘편지’를 도둑맞은 것은 아닌가. 내밀한 사연을 전하고 인생의 고민을 나누던. 마음을 설레게 하던 그 편지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인가. 그러니 이 가을, 사람들아, 제자들아, 나한테 편지 좀 해라. 깊숙한 비밀을 나누라. 내 비밀로 답신하는 길고 긴 답장을 쓰고 싶다.

편집기획위원· 평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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