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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체제 대비, 경제협력-평화 ‘선순환’ 계기 조성
평화체제 대비, 경제협력-평화 ‘선순환’ 계기 조성
  • 김근식 / 경남대·극동문제硏 남북협력실장
  • 승인 2007.10.15 1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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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남북정상회담 _ 남북관계, 어떤 성과 있었나

정상회담 특별수행원으로 평양을 다녀오자마자 큰 충격에 휩싸였다. 북에서 받아본 합의문은 정말 애초의 예상보다 높은 수준의 성과를 담은 것이었다. 오히려 김정일 위원장이 이 정도까지 수용했는가 싶을 정도로 기대 이상의 내용이었다. 퍽이나 큰 선물 보따리를 갖고 온다는 자부심을 가졌던 필자가 남쪽의 전혀 다른 분위기를 알아채는 데는 그리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도라산역을 넘어오자마자 모 방송국 토론에 패널로 나간 필자는 큰 성과라는 기대어린 평가 대신 합의 사항 거의 전부를 시비걸고 왜곡하고 폄하하는 것을 보고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우리사회의 현실을 절감하게 됐다.

우선 이번 2007 남북정상 선언은 6·15 공동선언을 계승 발전한 것으로서 6·15 선언에 기초해 지속해왔던 남북관계를 보다 높은 단계로 발전시키기 위한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그동안의 경협을 확대발전시키기 위해 필수조건이었던 한반도 평화 문제가 본격 다뤄졌고 그 결과로 남북간 군사적 신뢰구축과 평화체제 구축 방향에 합의를 이뤄냈다. 이에 기초해 경협 또한 새로운 단계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추었고 공리공영과 유무상통의 원칙하에 경제협력을 더욱 확대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평화와 번영의 새로운 국면을 만든 것 외에도 상호 체제 존중 방침과 인도주의 사업 증진 및 당국간 대화의 격상 등 화해와 통일 차원에서도 일진보하는 성과를 냈다.

김 위원장, 정상회담 자연스런 일로 인식
그러나 누가 봐도 명백한 성과에 대해 일부에서는 시비를 걸고 그 의미를 훼손하고 있다. 우선 정상회담 기간 동안 김정일 위원장이 굳은 표정을 보인 채 노무현 대통령을 홀대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000년 1차와 비교하면서 웃지 않고 딱딱한 표정을 보인 김정일 위원장의 모습을 크게 부각시키기도 했다. 정상회담의 내용과 실제 진행과정을 지켜보는 게 아니라 얼굴 표정과 모습이라는 극히 형식적인 부분에 집착하는 본말전도도 놀랄 만한 일이거니와 1차 정상회담 이후 7년 동안 지속된 남북관계의 발전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트집 잡기에 불과하다.

반세기 동안 적대와 대결을 지속하던 남북의 양 정상이 극적으로 순안공항에 직접 대면한 2000년의 상황은 그 자체로 김정일 위원장에게도 흥분이었고 감동이었다. 당연히 포옹과 환한 웃음이 절로 나올 것이었다. 그러나 그 후 7년 동안 지속된 남북관계는 김위원장에게도 정상회담은 흥분할 일보다는 자연스런 일로 받아들여졌다. 양 정상의 만남인 만큼 예의를 다해 대대적인 환영식은 준비하지만 김위원장 개인에게 1차 때와 같은 감동과 흥분이 덜했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홀대가 아니라 매우 자연스러운 정상적 환영식이었다. 남북관계가 남과 북 모두에게 이제는 일상화됨으로써 정상회담도 차분하고 객관적이며 실리적인 정상적 회담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고 또 이런 현상은 남북관계의 발전과정에서 응당 바람직한 일이기도 하다.

정상회담 기간 중에 남측 일부 언론에서 제기한 편향적인 추측 보도와 분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협상 도중에 회담 기한을 하루 더 연장하자고 제안했던 김정일 위원장의 파격은 현지에서 일종의 해프닝 정도로 간주되는 분위기였다. 끝까지 의미 있는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서 또 성과가 나면 멀리서 온 손님을 하루 더 대접하기 위하는 정도의 김위원장 특유의 전격 제안이었고 노대통령이 정중히 사양하면서 일단락된 것이었음에도 남측에서는 이를 두고 갖가지 억측과 비판이 난무했다. 정작 중요한 회담의 내용과 흐름은 도외시한 채 곁가지 지엽적인 것에 집착하면서 정상회담의 관심을 엉뚱한 데로 호도하기도 했다.

회담의 성과로 도출된 정상간 합의 사항에 대해서도 여전히 시비를 걸고 있다. 비핵화와 관련해 합의 내용이 미흡하다는 비판이 핵폐기나 비핵화라는 구체적 단어가 명시되는 것이 더 좋았다는 아쉬움이라면 그건 당연히 정당한 지적이다. 그러나 마치 이번 합의가 핵문제에 대해 아무런 의미 있는 내용을 담지 못했다는 식의 비난은 정당하지 못하다.

북한 비핵화 의지 읽을 수 있었다
합의문에 명시된 9·19 공동성명에는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프로그램을 폐기’한다는 가장 높은 수준의 표현이 포함돼 있고 2·13 합의는 이를 실질적으로 이행하는 구체적 이행조치이다. 이들 합의들을 재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북의 비핵화 의지를 읽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더욱이 회담 도중 핵문제에 대한 노대통령의 문제제기에 대해 김위원장이 김계관 부상을 직접 불러 6자회담 진전 상황을 보고하게 한 것은 핵문제에 관한 한 6자회담 틀에서 이미 합의한 대로 핵폐기의 방향으로 갈 것임을 가시적으로 확인해 주는 행동이었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에 대한 합의를 두고 NLL을 포기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는 것은 도가 지나친 정도다. 이번 합의사항 중 가장 의미 있는 내용으로 꼽히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는 한 마디로 남북관계의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는 엄청난 성과이다. 남북의 군사적 대결과 충돌의 최전방이었던 서해를 이제는 군사적 관점에서 협소하게 접근하는 게 아니라 남북의 경제협력과 공동번영을 통해 항구적인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을 도모하는 종합적이고 입체적인 새로운 접근을 한 것이다.
해주 공단에서 남과 북의 노동자가 같이 일하고 장차로는 개성과 해주와 인천을 연결하는 평화의 삼각지대를 만들어 그 안에서 사람과 물자가 자유롭게 오고 가는 공동번영의 새로운 장을 형성한다면 여기에는 남북의 군사적 대치와 충돌은 있을 수가 없다. 경제협력이 평화를 증진시키고 그 평화가 다시 경제협력을 가속화하는 선순환의 전략적 접근이 셈이다. 노대통령의 제안에 대해 김위원장이 군 인사를 불러 가능성 여부를 확인하고 수락했다는 전언은 이번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안이 우리의 적극적 제안에 북이 합리적으로 수용한 것이고 따라서 NLL 단어가 합의문에 포함될 리 없었음을 짐작케 한다. 군사 분야의 평화와 경제 분야의 공동협력이 공존하는 서해의 평화번영 벨트라면 굳이 남과 북이 대치하는 NLL의 협소한 의미는 저절로 사라지게 된다. 향후 개최되는 국방장관회담은 이 같은 문제의식 속에서 서해상의 평화정착을 위한 포괄적 신뢰구축 방안을 적극 논의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NLL은 필요한 논의 안건 중의 하나로 자리매김될 것이다. NLL을 포기한 것이라는 감정적 비난은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라는 새로운 발상의 전환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일부러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무지의 소치이다.

새로운 경제협력이 추진될 경우 소요되는 경제적 부담을 지나치게 내세워 합의 성과를 깎아내리려는 모습도 보인다. 항상 사용하던 익숙한 수법이다. 실제로 이번 합의문에는 추가 비용이 그리 들지 않으면서 우리가 주장해왔던 것을 북이 전격 수용한 게 더 많다. 개성공단 확대문제와 문산-봉동간 철도화물 개통 그리고 통신·통행·통관 등 3통 문제 해결을 명시한 것은 개성공단에 입주한 우리 기업이 오랫동안 요구해왔던 숙원사업들이다. 안변과 남포에 조선협력단지를 건설하는 것은 우리 민간의 조선회사가 오히려 새로운 기지와 저렴한 노동력을 필요로 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간 기업의 독자적 판단과 필요에 의해 진행될 것이다. 백두산 관광 실시와 이를 위한 서울-백두산 직항로 개설 역시 우리 민간 기업이 항상 원해오던 숙원사업이었다.

 
막대한 예산이 소요된다는 엄살이 그나마 통할 수 있는 대목은 개성-신의주 철도와 개성-평양 고속도로 개보수 문제인 바, 이 역시도 사실은 앞으로 남북의 경제협력이 진전되고 북한에 더 많은 특구와 남북합작의 공단이 개설되고 조성돼야 한다면,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 남쪽이 북을 통과해 대륙으로 진출할 수 있는 새로운 경제발전의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면 철도와 도로 보수는 꼭 필요한 인프라일 수밖에 없다. 이는 북에 대해 무조건 퍼주는 게 아니라 우리의 경협 전략 차원에서 그리고 우리의 장기적 경제발전을 위한 선투자의 개념이다. 결코 헛돈을 퍼붓는 게 아님에도 굳이 천문학적 액수를 내세워 우리의 혈세가 새고 있다고 호도하는 것은 정말 앞으로 진행될 남북협력의 새로운 경제발전 기회를 도외시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객관적 평가 필요한 시점
남북관계의 발전과 한반도의 평화가 우리가 동의하는 방향이라면 이번 2007 남북정상선언은 이를 위한 구체적이고 의미 있는 합의들을 담고 있다. 최근 핵문제 해결방향과 더불어 이제는 한반도 평화체제가 가시화될 정세변화의 국면을 맞고 있다. 어렵게 도래한 한반도 정세 급변 시기에 정치적 고려만을 내세워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머뭇거린다면 후일 크게 후회할지도 모른다. 한반도의 미래 비전과 통일을 생각한다면 정권의 재창출과 교체 여부에 상관없이 이 합의는 이행되고 연속되어야 할 것이다. 객관적이고 냉정한 평가가 필요한 때다.

김근식 / 경남대·극동문제硏 남북협력실장


필자는 서울대에서 ‘북한발전전략의 형성과 변화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청와대 안보실 정책자문위원이자 북한채널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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