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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軟性 권력 시대의 인문학
[學而思]軟性 권력 시대의 인문학
  • 임상우/서강대·사학
  • 승인 2007.10.15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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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또는 지구촌의 탄생은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19세기에 이미 시작되었다 할 수 있다. 즉, 서구의 제국주의적 팽창과 함께 전 지구적으로 하나의 역사지평이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시기에 있어 국제사회에서는 물론이고 각 국가 내에서 초미의 화두는 이러한 국제질서에서 생존하고 성장할 수 있는 힘을 확보하고 발전시키는 일이었다.

그 힘이란 단적으로 말하자면, 국민을 총체적이며 효율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국가의 체제, 군함과 대포로 상징되는 군사력, 그리고 거대한 공장 굴뚝으로 상징되는 산업력 등이었다. 우리나라도 뒤늦게 이 대열에
합류하긴 했지만 지난 반세기에 걸쳐 이러한 힘을 신속히 갖추는데 있어 놀라운 성과를 이룬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와 같은 지난 두 세기 동안 세계사의 발전 원동력이 가시적이고 물리적인 힘에 기반했다는 뜻에서, 그 힘을 규정하는 용어로 硬性 권력이라 표현한다.
이는 금세기의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軟性 권력에 근거할 것이라는 관찰에 대비시킨 표현일 것이다. 정보화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다문화 사회에서 이제 과거와 같은 중앙집중적이고 물리적 크기에 의존하는 권
력의 영향력은 축소되어가고 있다.
반면에 세계화, 전지구화의 과정이 진행되는 동시에 지방화, 분산화의 경향을 보여주는 ‘글로컬리제이션(Glocalization)’의 시대에 있어 사회발전의 원동력은 비가시적이고 유동적인 연성권력에서 비롯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치적, 문화적 주도권이 시민사회와 대중문화로 이동하고, 경제적 부의 창출도 하드웨어적이기보다는 소프트웨어적으로 이루어지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러한 탈산업화 시대에 있어, 과학기술의 계속적인 발전과 기여는 변함없이 지속될 것이지만,
새로운 시대의 다원화, 개방화라는 추세에서 이제 과학적 합리주의의 통일적 지배원리로 유지되던
폐쇄적 사회체제는 점차 그 힘을 잃어 가고 있다. 
폐쇄적인 자기충족적 학문구조에서 공급되는 지식은 이제 제한된 영역과 제한된 시간 안에서만 유용할 수밖에 없다.
개방적 사회체제에서 제기되는 현실적 과제들은 다양한 영역이 교차돼 융합된 성격을 지닌다. 이러한 과제들에 유연하게 접근하고 적절하게 해결하는 능력은, 기존의 폐쇄적 학문체제에서 협소하게 교육된 전문가들이 아니라 폭넓고 개방적인 인문적 소양을 가진 인재만이 가질 수 있다. 경성적인 산업자산 보다는 연성적인 문화자산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이 시대의 추세가 이를 증명하고 있다.

근자에 이른바 ‘인문학의 위기’에 몰리고 있다는 대학에서는, 인문학관련 전공이 구조조정의 압력을 받으면서 그 대응책이라는 것이 최소 전공인원을 보장하라든가 인문학의 진흥을 위한 국가적 투자가 모자라다든가 하며 소극적이고 수세적인 방어성 주장만을 되풀이하고 있는 듯해 유감이다.
인문학 교육자들은 이제 연성권력 시대의 새로운 추세를 인지하고, 적극적으로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으로서 인문학의 가치창출적 효용성을 강조해야 하며, 한편으로는 환골탈태의 자세로 그에 따른 교육 과정과
교육 내용을 혁신해야 할 것이다.
개방화와 다원화 시대에 있어서 인문학의 실천적 기능, 즉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을 수용하여 기획되고 교육된 인문적 소양이야말로 다가오는 연성권력 시대의 도전에 응전할 수 있는 인재가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자질이기 때문이다.
이를 인문학 교육이 제공하지 못한다면 누가 제공하겠는가.새로운 시대에 있어서는 가장 인문적인 것이
가장 실용적인 것이다.

임상우/서강대·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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