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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 : 제 1회 서울 타이포그라피 비엔날레
[흐름] : 제 1회 서울 타이포그라피 비엔날레
  • 전미영 기자
  • 승인 2001.11.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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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1-14 09:35:24
문자는 시각을 통한 대표적 의사소통 매체이자 그 자체가 완결된 아름다운 예술이다. 낯선 문자가 일으키는 호기심과 신선한 자극은 무한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서양인들의 눈에 비친 한자와 한글의 독특한 모양새, 아울러 동양문화 전반에까지 확장되는 호기심이 그렇고 우리 눈에 러시아어 글꼴이 낯설게 보이면서도 아름다운 것도 그 까닭이다. 문자는 이렇듯 자체로 하나의 완결된 디자인의 틀을 갖추고 있으며, 거기에 색채를 비롯한 디자인의 기술적인 부분이 첨가되면 시너지 효과를 나타낸다.
10월 16일부터 12월4일까지 서울 예술의 전당 디자인미술관에서 개최되는 ‘제1회 타이포잔치’는 세계 각국의 문자와 이를 이용한 디자인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자리이다.

타이포그라피는 소통이다
타이포잔치 조직위원회와 예술의 전당이 함께 주최한 이번 전시회의 특징은 오늘의 그래픽디자인, 그 중에서도 타이포그라피의 현황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세계최초의 행사라는 것. 그렇다면, ‘타이포그라피(typography)’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백과사전을 살펴보면 ①활자를 사용해서 조판하는 일, ②조판을 위한 식자의 배치, ③활판인쇄, ④인쇄된 것의 체재, 즉 활판인쇄술 등 본래 출판에 국한되었던 뜻이 최근 확대되어 ‘문자의 배열상태’를 말하는 데로 나아갔다.
이처럼 ‘문자가 관련된 디자인의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용어가 바로 타이포그라피이다. 우리 생활 주변에는 이미 타이포그라피가 널려있다. 매일 주고받는 명함, 신문 사이사이 끼워진 전단지, 지겹도록 뿌려지는 상품 광고물, 가슴을 내려앉게 만드는 청첩장과 부고장들, 거리를 가득 메운 포스터와 광고판 등이 타이포그라피의 범주 안에 들어가는 ‘작품’들인 셈이다. 뿐만 아니라 영화타이틀, 뮤직비디오, 컴퓨터 그래픽, 웹 디자인 등 타이포그라피의 영역은 영상매체를 만나면서 무한히 확장, 발전된다.
전세계 24개국에서 87명의 작가들이 참여한 ‘제1회 타이포잔치’의 기획의도는 ‘타이포그라피 디자인 분야의 전문성을 살리면서 디자인의 대중화를 모색하기 위한’ 데 있다. 타이포잔치 조직위원회는 초대글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직 타이포그라피를 상품에 부착된 심미적 외관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현실과, 라이프스타일과 일상의 세계에서 타이포그라피가 갖는 의의에 대한 관심은 증가하고 있지만 이는 아직 전문가들의 이야기에 머물러 있는 사실”을 직시하고 “타이포잔치를 통해 타이포그라피와 시각 문화에 대해 대중들과 이야기하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다.
타이포 잔치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는 ‘창립기념 특별전’으로, 20세기 디자인 역사를 새로 쓴 작가 5명을 불러모았다. 평생을 두고 한글꼴 변천사를 연구한 김진평 전 서울여대 교수(1949∼98), 동양의 모든 문자를 모아 작업의 원천으로 삼은 스기우라 코헤이 고베 디자인대학 교수(69), ‘움직이는 서체디자인’을 만들어낸 미국의 솔 바스(1920∼96), 디지털디자인을 예고했던 프랑스의 로베르 마쌩(76), 타이포그라피의 대표적 실험자인 영국의 그래픽 디자이너 네빌 브로디(44)의 작품을 모아 회고전 성격의 전시를 벌인다.
또 하나, ‘새로운 상상’을 주제로 펼쳐지는 본 전시에는 세계 24개 나라 1백여 명의 작가들이 포스터, 책, 웹 등 다양한 형태의 문자 디자인 향연을 벌인다. 한자의 획 하나, 영어 알파벳 하나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엿볼 수 있으며, 우리 생활 곳곳에 이미 타이포그라피가 숨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익숙한 영어, 일본어, 한자 뿐 아니라 이란, 인도, 체코 디자이너들도 참가해 우리가 접하기 힘들었던 문자들도 만날 수 있다.

일상의 예술이 어떻게 조직되는가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 조직위원으로 안상수 홍익대 교수(시각디자인과), 정병규 정 디자인 대표, 성완경 인하대 교수(미술교육과)가 참여하고 있다. 자신의 이름을 딴 글꼴 서체로 컴퓨터를 사용하는 이들에게 이미 낯익은 문자 디자이너이자 조직위원장인 안상수 교수는 “문자가 가지는 의사소통의 힘이 얼마나 크고 상상력이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가를 보여 줄 터”라고 말했다.
지자체들과 문화단체들이 실효성 없는 전시행사들을 벌이면서 예산을 낭비하고 있는 현실에 비추어볼 때 이번 비엔날레가 준비한 2억 5천 만원이라는 돈은 작은 예산일지 모른다. 쓸데없는 부대비용에 헛돈 쓰지 않고 내실 있게 치뤄내겠다는 것이 주최측의 의지이다. 작품 운송료와 보험료를 작가들이 스스로 부담한 것부터 남다른 잔치라는 것을 짐작케 한다. 조직위의 바람대로 2년만에 열리는 정기 비엔날레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문자디자인의 과거 뿐 아니라 미래까지도 예측할 수 있을지, 그리고 관객에게 ‘일상의 예술’인 타이포그라피의 개념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지가 이번 첫 번째 잔치의 관건이다.
전미영 기자 neruda73@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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