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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승·극복론 팽팽 … 실증적 탐색 노력도
계승·극복론 팽팽 … 실증적 탐색 노력도
  • 김혜진 기자
  • 승인 2007.10.01 10:1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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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과 분석]_ ‘박정희 시대’ 연구서, 어디에 서있나

대선을 앞두고 박정희 체제를 둘러싼 논쟁이 또다시 점화됐다. 민주화 대 산업화라는 정치지형을 뒷받침하는 이론들이 각기 현재의 시대정신을 규명하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번 대선국면에서 박정희에 대한 논쟁은 각 학자들의 연구서들을 통해서도 부각되고 있다. 박세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정치학) 등의 보수의 합리화를 주창하는 목소리와,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사회학), 이병천 강원대 교수(경제학) 등 비판 세력의 박정희 평가와 새로운 모색, 전통적인 계급 관점의 해석 등은 ‘과거의 박정희’를 현재로 불러들여 현재와 미래를 둘러싼 헤게모니 투쟁을 벌이는 전선이 돼버렸다.

박정희 체제의 부활에 선 ‘선진화 담론’
“대한민국 선진화를 향해 힘차게 전진하고자 하는 세력의 관심과 지지를 호소한다(이명박)”, “노대통령은 민주화 정치시대의 마지막이 될 것이고 나는 선진화 시대를 여는 첫 대통령이 되겠다(손학규).” 여야를 막론하고 예비 대선주자들이 내세우는 미래비전의 키워드는 ‘선진화’다.

현재의 대선정국을 점령하고 있는 선진화 담론은 지난 2004년 보수주의의 개혁을 표방하면서 뉴라이트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자유주의 연대에 의해 처음 제시된 것으로, 한국사회는 이제 선진화의 길에 접어들어야 한다는 시대진단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선진화 담론의 체계화는 박세일 교수(정치학)가 지난 해 출간한 『대한민국 선진화 전략』(21세기북스, 2006)을 통해서다. 여기서 박 교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 선진화의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자유주의를 보수주의의 기본가치로 보고 공동체자유주의의 실현을 강조하는 면에서 박정희 체제와는 다른 합리주의적 면모를 과시한다. 그러나 박승호 경상대 연구교수(정치경제학)가 “선진화 프로젝트는 박정희식 경제성장 논리와 동일한 유형”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의 자유주의는 여전히 개인의 자유와 사유재산의 소유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구조조정의 강화, 국제 경쟁력 제고, 적극적인 세계화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박정희 체제 부활의 선두에 서 있다.

진보진영, 선진화담론 ‘맞불’ 지펴
보수 세력이 다양한 선진화 전략을 통해 자기 정당화를 시도하고, 또 그것이 박정희 향수를 갖는 대중들의 지지를 받는 가운데, 진보학자들도 박정희에 대한 연구서들을 쏟아내고 있다. 장문석 한양대 연구교수(정치학)는 이러한 경향이 “절차적 민주화와 함께 민주화 세력이 집권한 지 10년이 된 시점에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한 평가의 의미”를 갖는다고 말한다. 이렇듯 대부분의 진보학자들은 사회양극화와 신빈곤이라는 현실에 대해 적극적 대안을 도출하지 못하고 있음을 자성하고 선진화담론에 맞불을 놓는 차원에서 박정희를 불러들인다.

최근 『다시 대한민국을 묻는다』(한울, 2007)를 공동 출간한 이병천 교수는 “진보의 낡은 것은 무너졌으나 아직 새로운 것은 세워지지 않았다. 이 혼돈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것이 바로 신우파의 담론”이라며, 박정희 체제를 포함한 한국 현대사 60년을 조명하는 의미를 진보 담론의 재구성에서 찾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 교수가 “역사적 현상의 양면성을 돌아보지 않으면 그 현상이 갖는 역사적 의미의 총체성을 포착할 수 없다”며 산업화의 성과를 인정한다는 점이다. 그는 재벌, 국가의 지원과 보호, 근로대중의 헌신의 결과로 한국의 산업화가 가능할 수 있었다는 점을 긍정, 근대 국가 성립이라는 성과와 독재체제의 모순성을 별개로 봐야한다고 본다. 그리고 지금의 대안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후분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생태적 복지사회와 공공의 국가’ 건설에 있음을 제안하고 있다.

조희연 교수 역시 근대화를 사실로 인정하는 관점에서 박정희 체제에 대한 이해를 시도하는 『박정희와 개발독재시대』(역사비평사, 2007)를 내놓았다. 조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진보-보수 도식에 입각해 박정희 체제를 일면적으로 이해하던 관성을 비판하고 총체적 조망 속에 과오를 짚고 있다. 박정희 체제는 진보와 보수가 각기 주목하는 독재나 근대화를 비롯해, 미국의 원조와 대중의 강렬한 동의 등 다양한 얼굴을 동시에 가진 복합적이고 모순적인 메커니즘으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복합성과 모순성이 박정희 체제를 10·26의 종국으로 몰아가고 있음을 밝힌다.

“공과론적 논리, 진보의 자기 함정”
조 교수는 이러한 접근 경향이 보여주는 현재적 의미를  ‘오인’의 자기 교정에 있다고 지적한다. 즉 “지금 교착하고 있는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 민주화 세력이 박정희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거나, 혹은 반대세력이 상대방의 민주화 공로를 인정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로 오인함으로써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데, 최근의 연구들은 이 갈등을 상당수준‘교정’해준다는 데 의미를 매길 수 있다는 입장이다. 

선진화담론과 박정희 체제에 대한 정면 비판은 마르크스 정치경제학자 김수행 교수와 박승호 경상대 연구교수의 『박정희 체제의 성립과 전개 및 몰락』(서울대학교출판부, 2007)에서 이뤄졌다. 이 책은 보수뿐만 아니라, ‘한국 근대화의 성과는 있으되 독재는 잘못’이라는 공과론적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진보까지 표적으로 삼았다.

이들은 일부 진보학계의 재평가가 박정희 체제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넓힌 것은 사실이지만, “부르주아 민족주의를 정당화함으로써 자본과 정권의 불황극복전략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공과론적 논의는 결국 보수주의 헤게모니를 공고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데올로기적 위험성에 대한 강력한 경고와 함께 이 책은 박정희 체제에 대한 평가들, 즉 민족경제론, 발전국가론, 개발독재론 등이 갖는 문제를 비판하고 철저하게 계급적 관점에서 재평가를 진행한다. 이른바 ‘한강의 기적’의 실체는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하기 위해 서민들의 입과 눈과 귀를 막고 묵묵히 노예처럼 자본가들·기업가들·권력자들을 위해 희생하라고 총칼로 위협하는 것을 사명으로 삼았으며, 그 결과로 지금과 같은 ‘불평등한 자본주의적 계급사회’가 확립된 것”으로 규명된다. 그들에게 박정희 체제는 넘어야할 신화가 아니라 허상에 불과할 뿐이다. 

진보-보수,‘성장’ 패러다임 극복 가능한가
박정희 체제에 대한 연구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이 논쟁에 대한 학자들의 평은 일단 긍정적인 것으로 보인다.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정치학)는 “박정희 시대에 대한 재조명은 진보-보수라는 관점만 살아있던 담론 지형을 넘어 실증적 탐색을 시도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문석 연구교수 역시 “극우담론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보수담론의 태동은 논쟁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학문적 자극으로 작용할 것이다”라고 평하고 있다. 실증의 차원에서도, 이념적 스펙트럼 분석의 차원에서도 진일보의 가능성을 갖는다는 기대다. 그러나 진일보한 지적 탐색들은 현실에 착근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선진화 담론 측에서도 ‘구체적인 대안’보다는 자칫 구호로 여겨질 수 있는 추상의 깃발이 휘날린다. 이러한 사정은 진보진영 연구자들도 마찬가지다. 뚜렷한 대안점을 쉬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런 가운데 진보정치연구소가 제시한 ‘사회연대국가론’이나, 조희연·신영복·김호기 교수 등이 말하는 ‘생태·평화·사회민주주의론’, 이외에도 ‘노동중심 통일 경제연방론’ 등에 학계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박정희 체제를 정직하게 판단했을 때, 고민의 시작점은 ‘성장’이라는 패러다임을 새롭게 사유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들 논의들이 학계의 궁핍한 대안을 타계하기 위한 방책들로 공론화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김혜진 기자 khj@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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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현 2007-10-09 08:09:59
내가 어떤 점에서 이병천, 백낙청, 조희연 교수 등이랑 같은/비슷한 입장에 속한다는 것입니까? 사실관계로서의 '발전'을 인정하면 다 같은 입장인가요? 제발 최소한의 공부라도 좀 하고 글을 써요. 쓰려거든. 저런 식이라면 탈근대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다 졸지에 이병천 교수 등과 같이 민족주의자, 근대화론자, 자본주의적 민주주의론자가 되는 거 아닙니까? 근데 김수행/박승호 두 교수들은 왜 또 거기에 포함 안 됩니까? 역시 사실관계로서의 '발전'을 긍정하였는데. 게다가 김혜진 기자는 약 한달 전에 이 지면에 실린 내 서평조차 안 읽어봤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나를 저기 저렇게 끼워넣었다는 것은. 내가 책에서 무슨 발언들을 했는지는 하나도 언급하지 않은 채 (읽지 않았으니 그리 할 수 없겠지만) 저리 해도 되는 것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