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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히 통제된 반성적 사유를 개진한다”
“대단히 통제된 반성적 사유를 개진한다”
  • 김혜진 기자
  • 승인 2007.10.01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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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갈피 _ 라피에르의 부르디외 비판

라피에르는 지식인의 자세와 지적 내용 모두에 있어 부르디외를 ‘제한된 비판적 지식인’으로 평가한다.
라피에르에게 있어 비판적 지식인은 자신이 속한 질서를 뛰어넘어 ‘다른 곳’을 온전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녀가 보기에 부르디외의 지적 결실은 ‘이동’을 통해 다름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세계를 위해 다름을 선별적으로 취한 것에 불과했다. 부르디외는 사회경제적으로 비참한 유년시절에서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로의 신분 이동 경험을 토대로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문화적 위계질서를 설명한다. 그러나 라피에르는 베르나르 라히르의 입을 빌어 “부르디외의 문화적 위계질서의 사회학이 문화적 통로에 관한 실제적 사회불평등을 분석한다는 구실로 취향과 실천을 지나치게 단순화”했다고 말하고, “반례들이나 해석 장치에 의심을 불러일으키거나 미묘한 뉘앙스를 가져올 수 있는 모든 것을 조심스레 제쳐놓는다”며 ‘이동’의 도구적 사용에 반발한다.
또한 그녀는 지식인의 현실 참여는 “소속감과 유착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함으로써 지식의 장과 비판의 문턱을 없앤다”는 점을 강조하는 바, 이는 대안세계화 운동을 주도했던 부르디외에 대한 비판을 포함하고 있다.
라피에르는 지적 내용에 있어서도 부르디외에게 회의적이다. 부르디외는 ‘상징적 지배’라는 개념에서 지배층의 물리적인 착취뿐만 아니라 이 과정에서 생산되는 피지배층의 내면적 순응 기제에 관심을 갖는다. 여기서 라피에르는 그가 지배관계를 분석하면서 피지배층의 ‘자기에 대한 수치심’을 강조하고, 결과적으로 “그들(피지배층)의 자율성과 저항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피지배층 스스로가 지배관계를 재생산하는 주체”로서 상정하는 지적 착오를 범하고 있음을 짚고 있다. 부르디외 비판 대목을 몇가지 골랐다.     김혜진 기자 khj@kyosu.net

“콜레쥬 드 프랑스 교수로서 취임 강의에 대한 강의를 하고, 그가 인정받고 있던 위치에서 그 위치를 ‘본래 자리에서’ 분석하면서 그는 상대적 자율성을 주장하고 요구했다. 요컨대 그는 검토하는 사람이었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배할 수 있었다. 그 점이 그의 모든 것을 결정지었다. 그는 결국 주체가 아니라 재능이 뛰어난 당사자, 의미를 창출해내는 비범한 결정권자로서 비판에 미리 대비하고 결론을 양보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서 대단히 통제된 반성적 사유를 개진한다.”(155쪽)
“하지만 그가 콜레주 드 프랑스 취임 강의에서 자신이 얼마나 극적으로 모순을 경험했는지, 자신의 의도나 생각에 맞지 않는 역할을 얼마나 망설이면서 떠맡았는지 설명하는 대목을 보면 그가 그 자리에 오르기를 간절히 바랐으며 좋은 성과를 거두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해야만 했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눈치 챌 수 있다.”(158쪽)
“부르디외의 자기 분석은 엄정하게 선별한 논리로 짜인 일종의 고백이다. 지나친 폭로나 에둘러 하는 말들처럼 ‘기분에 치우친 몇몇 행동을 제외하고는 모든 심리적 요인을 배제하고’ 유의미한 것들만 취하겠다는 구실로 그는 자기 이론과 맞아떨어지는 사실과 자신에게 부여하고 싶은 이미지만을 골라 담았다.”(159쪽)
“부르디외는 자신이 그 둘(사회학자로서 분석과 시민으로서의 투쟁)을 연결시켰다고 착각했다. 자신의 이론과 행동의 이유가 일관적이며 자신이 명성 높은 지식인이면서도 피지배층의 직접적인 지지자라고 생각했던 것이다.”(1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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