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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획일성이라는 질병
[원로칼럼]획일성이라는 질병
  • 교수신문
  • 승인 2001.11.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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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1-13 09:58:23
요사이 보도매체에 실리는 교육에 관한 기사를 읽다보면 ‘교육 붕괴’니, ‘교육정책 부재’니 하는 보도 일색으로, 교육계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커지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필자가 교육계에 몸 담아온 지 근 40년 가까이 되지만 오늘날과 같이 교육에 대해 위기 의식을 느껴 본 일은 일찍이 없었던 것 같다.

지난날에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해도 열심히 공부해 훌륭한 교육을 받으면 응분의 직책에서 국가에 공헌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그것을 바탕으로 보람있는 삶을 누릴 수 있었기에 우리 부모들은 만사를 제치고 자식들 교육에 열을 올렸다.

이 지구상에 집과 논을 팔아 교육비를 조달하는 부모들이 우리나라말고 또 어디 있겠는가. 믿기지 않았던 그러한 과거가 있었기에 우리는 많은 우수인력을 일찍이 양성했고 그 저력을 바탕으로 경제기적을 이룩하지 않았는가. 비록 부존자원은 없어도 우수인력이 큰 자산임을 우리는 자부해왔다. 과거와 달리 경제여건이 호전됐다고 해서 학부모들의 교육열이 식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과거보다 더 큰 가계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아이들을 교육시키고자 하지만 이와 같은 교육열에 부응할만한 교육계의 환경이 마련돼 있지못하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공교육이 제자리를 잃고있어 학생들은 학원가로 몰리고, 학원을 전전하면서 대학입시 능력만을 전수받아 대학에 입학한다. 그렇게 입학한 학생들에게 깊이 있는 실력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학생 학력저하로 인한 대학교육의 질 또한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더구나 ‘광역 학부제’ 실시로 신입생들은 자기의 진로를 탐색하느라 우왕좌왕하며 허송세월하는 경우도 있으니 이 또한 대학교육의 부실을 낳는 큰 원인 중 하나이다.

특히 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은 편하고 쉬운 분야를 선호하면서 보람과 장래성은 안중에 없으니 학문후속세대가 어떻게 이어질지 걱정이 앞선다. 이와 같은 추세로 가면 기초학문에 대한 기피현상이 두드러져 특정분야는 쇠퇴하게 되는 경우가 생길 것이니 우리의 앞날이 캄캄하기만 하다. 이러한 대학교육제도의 병폐는 대학이 자율권을 갖지 못하고 정부의 지나친 통제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특정대학이 학부제로 대학특성을 살릴 수 있다고 판단됐다고 해서그 대학만이 학부제를 실시한다면 그 누가 그 대학을 탓할 것인가. 그러나 현실에서 대학붕괴의 많은 책임은 정부에게 물을 수 있다. 정부가 모든 대학에 학부제 도입을 유도하며 획일적 제도를 강요했기때문에 많은 대학들은 학부제로 인한 교육붕괴(?)를 실감하고 있는 것이다. 일선 교수들은 이 제도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잘 알고 있기때문에 대학에 자율권이 주어지면 대학은 나름대로의 다양한 학부제를 활용하는 지혜를 짜내 대학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대학운영의 가장 큰 병폐는 획일성이다. 정부는 획일적 대학정책을 지양하고 대학의 자율권을 최대한 신장시켜 대학 나름의 특성에 따라 학문의 특수성을 살릴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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