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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생적 학문’의 열망 또는 현실과의 만남
‘자생적 학문’의 열망 또는 현실과의 만남
  • 강연희 기자
  • 승인 2001.11.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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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1-13 09:53:09
앎과 실천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학문하는 자의 사명이며 고민거리이다. 올바른 이치를 밝혀서 인식의 폭을 확장시키는 일이 앎이라면 그 앎을 자신의 몸에 실천하는 일도 앎의 연장선에 있다.

실천이 유리된 앎이란 공허한 이론에 불과하며 혼자만의 메아리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 앎과 실천의 간극이 깊어져 앎 따로, 실천 따로 분리돼 연결고리가 없다는 반성과 함께 이론과 실천의 합일점을 찾기 위한 모임과 학회가 이어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10월 27일 발족한 ‘우리말로 학문하기모임’(회장 이기상 한국외국어대, 철학)과 ‘문학과 환경학회’(회장 정정호 중앙대, 영어영문학)가 바로 그것이다. 이들 학회의 공통분모는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의 역사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학문의 결과물을 우리가 숨을 내쉬는 방식으로 체화하는 것이다.

우리말로 삶과 앎의 괴리를 벗어나기

먼저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을 살펴보자. 이 모임을 중심에서 이끌고 있는 이기상 교수는 “우리의 앎의 세계, 학문의 세계는 외국이론의 대리전쟁터를 방불케한다. 이렇게 된 데에는 외국의 이론을 반성없이 수용해 책임없이 전달한 지식인의 책임이 가장 크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오늘날 지식인은 우리의 문화와 역사, 우리의 사상과 종교를 이루고 있는 골격들을 재구성해 이론으로 발전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에 이교수는 지식인의 역할이 계몽을 책임져야하는 전문인에 있을뿐만아니라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 앎이 삶의 문지도리(돌쩌귀)의 구실을 해야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6월 우리사상연구소에서 주요 철학적 개념들을 우리말로 풀이한 ‘우리말 철학사전’1집을 내고 우리말로 철학하기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던 중 문학, 사회학, 역사, 예술, 종교 등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공감대를 형성해 이 모임을 만들었다.

이 교수는 “오늘날 인문학의 위기를 논하는 일이 유행처럼 퍼지고 있지만 위기라는 담론만 있고 그 누구도 대안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인문학자들의 직무유기”라며 “우리의 생활 세계와 삶의 문법에 바탕한 우리 나름의 학문 세계와 묻고 배우는 방법을 우리말로 재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허웅 한글학회 이사장, 김용준 한국학술협의회 이사장, 박이문 전 포항공대 교수, 이동식 한국정신치료학회 명예회장, 김기령 연세대 의대 명예교수 등이 자문위원이며 김상봉 문예아카데미 교수, 김영민 연세대 교수(국어국문학), 노동은 중앙대 교수(한국음악), 박찬국 서울대 교수(철학), 이승환 고려대 교수(철학), 장회익 서울대 교수(물리학), 최상진 중앙대 교수(심리학), 최준식 이화여대 교수(한국학)등 1백70여명의 학자와 예술가 등이 발기인으로 참석했다.

모임측은 우리의 것으로 된 읽을거리와 생각할 거리를 우리의 문화와 접목시켜 1년에 두 차례 학술 대회와 강독회를 갖고 그 결과물을 모아 인문학 교양 학술지 ‘사이’를 발간할 예정이다. ‘사이’의 발간 취지는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문화 사이, 사람과 자연 사이, 삶과 앎 사이를 복원하는 데” 있으며 여러 학제간의 교류와 연대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공유하는 잡지를 만드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 날 모임의 의의와 성과에 대해 신승환 카톨릭대 교수(철학)는 “우리말로 학문한다는 것이 실제로 가능한가에 대한 회의와 아직 체계를 잡지 못한 것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다양한 분야의 학문들을 한 자리로 불러 모아 자생적 학문을 하자는 통일된 의견을 규합한데는 긍정적 시각을 보내야한다”고 지적했다.

인간과 자연, 환경을 화두로

 
한편 같은 날 성균관대 퇴계인문관 첨단 강의실에는 영문학자들을 주축으로 자연, 환경, 생태를 함께 아우르는 ‘문학과 환경학회’가 첫발을 디뎠다. 환경에 대한 위기의식이 현재 전세계적 공통 문제이며 환경에 대한 담론이 나날이 삶의 화두로 심화되고 있다. 환경생태 위기가 초래된 원인은 인간이 자연과 조화로움을 깨고 인간의 이기적 목적에 자연을 이용한데 있다.

정정호 회장(중앙대,영어영문학)은 “문학이 환경생태 문제와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장을 마련한다”고 학회창립의 배경을 설명했다. 이미 1992년 미국에서 생태문학을 연구하는 ‘문학과 환경학회’가 설립됐고 이후 일본, 영국이 학회를 조직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정회장은 “생태문학을 전공한 영문학자들로 시작했지만 국문학, 철학, 환경운동단체 등 여러 학제간의 연대와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며 이론으로만 국한된 학문이 아니라 시민운동, 환경운동 단체와도 연합해 실천의 장을 마련할 계획이다.
더불어 미국, 일본, 호주, 영국 등 국제적 학회와 연관을 맺고 서구의 생태문학이론을 소개하면서 동시에 우리의 대표 생태사상을 번역, 소개하는 전진기지로 학회를 활용할 예정이다.

현재 김동윤 건국대 교수(불어불문학), 김원중 성균관대 교수(영어영문학), 고갑회 한신대 교수(영어영문학), 우찬제 서강대 교수(국어국문학), 우한용 서울대 교수(국어교육학), 이남호 고려대 교수(국어교육학) 등을 주축으로 활동의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다.
이 학회는 매달 한 번씩 진행하고 있는 독회를 심화시켜 올 겨울 영문학회 전체학술대회에서 성과물을 공유하고 방학기간 동안 학교에 강좌를 열어 환경에 관심있는 대학생과 일반인에게도 참여를 유도할 예정이다.

자신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현실의 역사를 디딤돌로 삼아 특정 분야의 학문에만 고립되지않고 대화와 참여의 폭을 확장시키는 일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시급한 현안이다. 인문학의 위기라고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개인적 관심과 필요에 의해 학회를 마련하는데 그치지 않고 학제간의 연대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이들 학회에 격려와 관심이 필요한 때다.
강연희 기자 allesk@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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