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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학문과 신앙 사이
[學而思]학문과 신앙 사이
  • 교수
  • 승인 2001.11.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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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1-13 09:42:37
나는 학교에서 ‘과학과 종교’라는 교양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이 과목을 맡게 된 연유는 꽤 복잡하지만 그 가운데는 나의 개인적인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생물학을 전공하는 나는 기독교인이다. 어쩌다 다른 기독교인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도중에 내가 기독교인이지만 생물학자로서 진화론의 옹호자라는 사실을 밝히면 대개의 경우 논쟁이 시작된다. 왜냐하면 기독교인의 경우 대개는 진화론에 대해 이유 없는 거부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화론을 신봉하면서 기독교를 믿는다는 것이 불가능함을 지적한다. 그러나 나는 이 문제에 휘말리고 싶지 않기 때문에 토론하기를 달가워 하지 않는다.

주지하듯 현대생물학은 진화론을 제외하고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생물체는 진화의 산물이기 때문에 우리들은 계통을 논하고 생리를 비교할 수 있으며 역사를 추적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생물체는 진화 때문에 체제와 기능적 일관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다른 과학과 마찬가지로 생물학도 혹독한 반증 테스트를 거쳐야만 살아남는 과학의 한 분야이다. 오류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턱대고 학설 전체가 부정될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에 반해 과학적 창조론이라고도 하는 창조과학은 지구의 연령이 6천년에 불과하다든지 또는 전지구적인 홍수설을 주장한다는 점 등에서 근본주의적인 성서 해석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검증 가능성은 애초에 차단하고 있다. 그렇기때문에 그것은 신앙에 가깝다. 다만 과학적 증거들을 끌어다 자신을 포장하고 있으며 진화론의 약점을 공격하는 것에 불과하다. 현재의 과학으로 불가해한 현상에 대하여 쉽게 신의 영역에 귀속시키는 것은 불성실하며, 주어진 증거들을 조작하거나 고의로 누락하는 등의 의도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과학 윤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딜 슈텍은 그의 책 ‘세계와 환경’ 서두에서 현대인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세계와 환경이라는 주제가 성서가 씌어지기 이전에 생겨난 것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성서 본문들에는 이 개념들이 명시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므로 성서의 문맥으로 세계와 환경이라는 주제를 다루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성서가 아직 알지 못하는 문제들의 지평에서 성서에게 질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단 오딜 슈텍의 환경문제가 아니더라도 우리들은 성서가 씌어지던 시대보다 복잡한 상황에서 살고 있다. 변화무쌍한 컨텍스트를 다루기 위해서는 텍스트를 개방적으로 해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나의 고전 텍스트를 해석할 때 중요한 것은 그것에 의미를 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말하고자 하는 복수적 다의미를 찾아주는 것이다. 텍스트를 굳어져 버린 방식으로만 읽으려고 할 때 그것은 더 이상 생명력을 갖지 못한다. 누군가 지적했듯이 한 독법만 고집하는 경우 그 폐쇄성 속에서 비판적인 성찰이나 창조적인 적용에 실패하는 안이하고 독선적인 신도가 되기 십상이다.
내가 보건대 여기에서 현존하는 우리의 상황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창조과학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텍스트의 고수보다는 개방성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헬무트 틸리케와 같은 신학자는 ‘인간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라는 저서에서 생물학과 신학을 혼동하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 인간이 동물세계로부터 진화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인간의 본질, 인간의 운명, 인생의 의미 등을 인간 이전의 것으로부터 도입하려고 하는 것이 죄라고 다소 용감무쌍하게 그는 지적했다.

그러나 나는 생물학자이면서 기독교인인 까닭에 여전히 양자를 조화시키느라 괴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회의적인 과학세계와 설득력 있는 신앙세계 사이에서 어느 한 영역도 건너뛰지 않으면서 그 사이로 걸어가려는 쓸데없는 노력을 하는 과학자들도 역시 이런 일을 하고 있다. 물론 이 두 세계 사이의 틈이 넓으면 넓을수록 양심의 가책이 없이는 이 둘 사이에서 편안히 있기가 더욱 어렵다”고 칼 세이건은 이야기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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