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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한 기획력과 깊은 고민 반영되었다
탄탄한 기획력과 깊은 고민 반영되었다
  • 류병학/ 미술평론가· <아트레이드> 주간
  • 승인 2007.09.03 16: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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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비평]_이제는 지역미술 시대

흔히 ‘지역미술’하면 부정적인 선입견부터 앞선다. 미술관 진흥정책에 따라 각 지역에 미술관이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나고 있지만,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운영시스템과 전문인력 부재 때문에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각 지역의 미술관이 개관할 때마다 주요 미술관 정책으로 “지역 작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해 지역 문화발달에 기여하겠다”고 했는데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 대전시립미술관에서 오는 10월 7일까지 열리는‘대전FAST : Mosaic City 모자이크 시티’展의 전시실 모습.
최근 국내 미술시장은 활기를 띠고 있다. 서울은 두말할 것도 없고 지역미술도 활황을 맞이한 듯 보인다. 부산 해운대 노보텔 앰베서더 호텔에서 지난 7월 오픈한 가나아트 부산지점 사석원의 개인전은 개막과 동시에 작품이 모두 매진됐다. 지난달 11일 개관한 ‘아트 쇼핑몰’ 아르바자르도 첫날 약 9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또, 지난달 28일 대구에서는 M옥션의 첫 경매가 열렸다. M옥션은 경매된 작품들 중 93%가 낙찰됐는데 우려했던 대구작가들의 작품은 100% 낙찰되는 쾌거를 이뤘다.

애정과 이해의 안목 필요

물론 국내 평론계는 지역 미술관의 증대나 화랑의 상업화에 대해 적잖은 비판적 시각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그런 비판적 시각의 문제점은 구체적인 사례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만약 누군가 지역미술을 진단하고자 한다면, 적어도 지역 미술계를 진단할 수 있는 축적된 지식과 안목이 필요할 것이다. 지역 미술계에 대한 이해 없이 지적만 앞세우는 진단은 무책임한 발언일 뿐이다.

필자는 최근 (사)미술인회의 ‘오픈 스튜디오 페스티벌’ 관계로 몇 지역을 방문해 지역 시립미술관의 전시들을 돌아볼 기회를 가졌다. 부산시립미술관의 ‘도큐멘타 부산 3 : 일상의 역사’와 대전시립미술관의 ‘대전FAST : 모자이크 시티’ 그리고 대구문화예술회관의 ‘2007 올해의 청년작가 초대전’이 그것이다. 그 전시들은 적어도 필자가 보기에  탄탄한 기획력으로 지역미술을 활성화시키고 있었다.

부산시립미술관의 ‘젊은 시각 새로운 시선’展은 1999년부터 부산과 경남의 신인작가 발굴을 목적으로 매년 꾸준히 개최해온 전시다. 부산 젊은 작가들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이들의 성장가능성과 현대미술의 흐름을 짐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기획됐다. ‘부산의 미술가들’展은 부산의 근·현대미술을 일으키고 발전시켰던 대표적 미술가들의 작품을 작가별 독립공간으로 마련한 기획전이다.

부산시립미술관의 야심작이라고 할 수 있는 ‘도큐멘타 부산’展은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중장기 기획으로 진행하고 있는 시리즈 전시로 부산미술의 태동기에서 현재까지 부산미술의 역사를 다루는 전시다. 당시 관련 자료를 발굴하고 재해석하며 미술작품과 미술가들의 삶을 당대의 사회적, 문화적 맥락 속에서 재조명하는 것이 전시의 주요 목적이다. 단순히 반짝이는 아이디어만으로는 결코 현실화시킬 수 없는, 충분한 고민이 반영된 전시라고 평가할 수 있다.

또,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지난 2001년‘도시와 미술’展에서 최연소 작가로 주목받았던 최소영의 ‘광안교’는 홍콩 크리스티경매에서 추정가의 5배를 뛰어넘는 156만 홍콩달러(1억9500만원)에 팔려 화제가 됐다. 그는 당시 부산 동의대 서양학과 2학년 재학생에 불과했다.

홍콩 미술시장이 놀란 동의대 2학년

대전시립미술관의 사정은 어떨까. 대전시립미술관의 ‘전환의 봄’展은 2000년 중반까지 대전과 충청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젊은 작가들을 발굴, 지원해 지역미술의 미래를 전망하며 발전적 전환의 계기로 삼고자 기획됐다. 이 전시는 2005년부터 현재까지 열리고 있는‘대전미술의 지평展’으로 전이됐다. 이 기획전은 대전 화단을 조명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국미술계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올린 작가를 선정해 대전미술의 현주소를 찾으면서 미래지향적인 방향을 모색하는 전시로 발전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대전시립미술관은 대전 출신 거장들을 초대하는‘한국현대미술의 거장전’을 격년제로 개최하고 있다. 

일간지 기사들을 통해 잘 알려진 서울시립미술관의 일명 ‘블록버스터’ 전시들은 대부분 기획사를 통한 것이었다. 그러나 대전시립미술관에서 작년 개최되었던 ‘루오’展 경우 기획사를 통하지 않고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사들이 직접 루오재단과 공동기획했다는 점에서도 주목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편적이나마 필자가 사례로 들었던 지방의 부산시립미술관과 대전시립미술관의 기획전들은 체계적인 운영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았다면, 또 그러한 운영시스템을 운용할만한 전문 인력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전시였다. 지역 미술관에서 개최되는 전시회들이 “일부 스타급 화가들에게만 문이 열려있다”는 지적도 사실이 아니란 것을 반증한다. 더 나아가 각 지역의 미술관들이 개관할 때마다 주요 미술관 정책 중 하나로 “지역 화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 지역 문화발달에 기여하겠다”는 말도 실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역미술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신중해야만 한다. 지역미술의 전시들은 각고의 노력이 스며든 탄탄한 기획력으로 지역미술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고군분투 하고 있다. 따라서 지역미술의 전망은 밝다. 흔히 중앙언론지는 지역미술이 침체에 빠진 것으로 보도하면서 ‘지역미술의 대안’을 어디서 찾아야 할지 묻곤 한다. 하지만 지역미술의 대안은 지역 미술인들이 스스로 만들어 나가고 있다.

현장에서 바라보고, 느껴보라

지역미술의 활성화를 원한다면 무엇보다 지역미술에 대한 ‘애정’이 필요하다. 지역에서 개최되고 있는 전시를 직접 방문조차 하지 않고 지역미술 침체 운운하는 것은 지역미술을 무시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지방자치제’와 마찬가지로 지역미술의 시대는 시작되고 있다.

류병학/ 미술평론가· <아트레이드>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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