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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쇼쇼쇼’
[딸깍발이]‘쇼쇼쇼’
  • 김용희 / 편집기획위원·평택대
  • 승인 2007.09.03 14:4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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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내 딸을 고발한다’는 한 아버지의 글이 일간지에 실린 적이 있다. 아버지의 이야기인즉슨 이러했다. 어릴 때부터 영특하고 다재다능한 딸은 고등학교 때도 학교공부에 열심히 일뿐만 아니라 때때로 독서클럽, 음악회, 미술전시회도 다니며 과외 활동도 활발한 학생이었다. 그런데 딸이 한국에서 모든 이들이 염원하는 S대에 들어가자마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딸 아이는 공부와 교양 문화 활동을 뒷전으로 하고 온전히 음주가무와 놀이문화에 투신했다. 딸 아이는 거의 매일 몸에서 담배냄새를 풍기며 밤늦게 귀가했다. 아버지의 글은 이러했다. 한 번의 학벌취득으로 기득권을 획득하고 그 기득권으로 기득권적 태만에 빠진 딸 아이를 퇴출시켜 달라는 것.
하긴 청년실업이 급박한 현실로 다가오는 이즈음 이런 이야기도 한때 전설같은 이야기가 되었다. 1970,80년대 영화 ‘고래사냥’, ‘젊은 날의 초상’에서처럼 청춘이 가지는 진지한 배회의 특권마저 사라지고 있다. 오히려 취업을 위한 생존의 논리가 강화될수록 학벌주의는 더욱 맹위를 떨치는 것 같다. 최근 대기업에서 S대출신이 신입사원으로 들어간 비율이 다른 대학출신 대비 2배를 훨씬 넘었다. 고등학생들은 옛날보다 훨씬 더 경쟁적으로 대학 입시에 시달리고 있다. 대학생들은 옛날보다 훨씬 더 경쟁적으로 취업준비에 매달리고 있다. 학벌주의를 감당할 수 없자 대학생들은 일제히 공무원시험과 교원임용고시에 몰려들었다.
과거 신분사회를 철폐했지만 성골과 진골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학벌신분주의 사회에서 학벌은 노예의 문신처럼, 평생의 등급처럼 매겨져 있다. 최근 불거진 신정아씨 사건은 한국사회가 놀라운 ‘쇼쇼쇼’의 사회라는 것을 다시 한번 절감케 했다. ‘쇼를 하라! 쇼를!, 쇼를 하면 티켓이 공짜!” 작년에 교수들은 줄줄이 이어진 논문표절 시비로 그들의 숨겨진 위선과 허위의식과 대면해야 했다. 올해 불거진 학력 위조 사건은 한국사회에서 학력이라는 제도가 얼마나 큰 명패와 완장의 역할을 한 것인가를 보여주었다. 때로 교수들은 학력이라는 제도의 명패로, 그 명패의 힘으로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고 더 나아가 소위 대가라는 이름으로 힘없는 이들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그러니 어쩌면 신정아 씨는 한국사회의 천박한 서구사대주의 학벌의식을 이용하여 한국사회의 경직된 학벌주의를 조롱한 지도 모른다. 신정아씨 사건은 그녀의 ‘쇼쇼쇼’에 무임승차 기득권을 준 한국 학벌주의의 완벽한 만끽이었다. 사람들의 은폐된 허위욕망을 비웃으며 실제 학력이 없어도 얼마든지 가능할 수 있는 왕성한 활동을 보여준 것이니 그녀는 학벌주의의 희생자이면서 동시에 학벌주의에 대한 조롱꾼이다. 그녀의 쇼는 학력 제도와 관련된 교수사회의 경직성과 엄숙주의에 대한 발칙한 삿대질이라 할 만하다.
표절과 학력위조, 임용 때만 되면 난무하는 음해성 투서. 교수사회, 교수라는 이 근대적 제도는 무엇인가. 제도를 운용하는 통제적 장치는 무엇인가. 제도가 주는 권위와 권력의 힘은 그렇게 달콤한가. 쇼를 하면 티켓이 공짜! 그리하여 쇼(show)는 계속될 것인가. 한국의 지식인 사회, 교수라는 제도와 대학이라는 제도권에 대하여 생각한다.  

김용희 / 편집기획위원·평택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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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네 2007-09-07 15:46:45
신정아 옹호론은 아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