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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확충보다 운영시스템·전문인력 보완 급하다
‘무조건’ 확충보다 운영시스템·전문인력 보완 급하다
  • 박준헌 / Art Management Union 대표
  • 승인 2007.07.22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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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공간비평 ]상업 전시공간의 증가와 문제점

현대의 미술작품은 더 이상 깨끗한 흰 벽 위에 우아한 할로겐 조명을 받으며, 품위 있고 얌전한 ‘트로피 와이프(trophy wife)’의 역할에만 머물지 않는다. 여전히 소수 상류층의 사교와 성공의 대표적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남아 있음을 부정할 순 없지만, 지금 이 시대의 미술은 특수한 대상만을 위한 향유물이 아님은 자명해진 것 같다. 이제 누구나 미술을 감상할 수 있고, 즐길 수 있으며, 심지어 소유할 수도 있다. 아울러 최근 들어 급격하게 붐을 이루고 있는 미술시장에 힘입어 이제는 단순한 소유가 아닌 투자의 대상으로까지 미술은 상품화되었고, 대중화되었다. 현대미술이 이처럼 상품화·대중화 될 수 있는 이면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내적으로는 교양의 시대를 사는 대중들의 미술(예술)에 대한 자기만족과 과시, 그리고 외적으로는 그 요구와 맞물린 상업화와 전시 공간의 증가를 주목할 수 있을 것 같다.

각양각색, 천차만별 전시 공간

국내의 미술관련 전시 공간의 규모를 정확히 추산하기는 어렵다. 그 이유로는 관련 전시 공간들의 유형도 다양하지만, 제도권 밖에 있는 미등록 전시 공간들이 많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최근의 미술 전시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규정된 전시 공간인 갤러리나 화랑에서 탈피하여 다양한 일반 상업시설(서점, 카페, 병원, 은행, 백화점 등)에서 전시를 병행하고 있으며, 이러한 상업시설 또한 그 홍보와 마케팅의 일환으로 전시 공간을 적극적으로 늘려가고 있다. 여기에 대학은 물론, 지자체, 대규모 전시를 유치하기 위한 컨벤션 시설까지 가세해 서로의 이해타산에 맞춰 경쟁적으로 전시공간을 늘려가고 있어 더더욱 그 실태를 파악하기에는 어려움이 많다. 조금 더 범위를 넓혀 문화기반시설로서의 전시 공간들 까지 포함한다면 그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유형 또한 박물관 및 미술관 뿐만 아니라 도서관, 문예회관, 문화의 집, 자료관, 사료관, 유물관, 향토관, 공연장, 문서관, 기념관, 기록보존소, 민속촌, 문화관 등 국내의 미술 관련 전시 공간은 정말 각양각색, 천차만별이다.

현재 국내에서 미술 작품을 전시의 주요 테마로 삼는 관련 공간은 등록 시설이 약 6백여 곳. 미등록 시설까지 포함한다면 1천여 곳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러한 공간들은 그 운영 주체에 따라 국가가 직접 운영하는 국립, 지자체가 운영하고 있는 공립, 개인이 운영하는 사립으로 분류할 수 있으며, 국내의 미술 전시 공간 가운데 약 60%는 개인의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갤러리(화랑)가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김달진미술연구소가 조사한 지난 3년간 미술 전시 공간의 증가 추이를 살펴보면 2004년 49곳, 2005년 51곳, 2006년 63곳, 2007년 상반기만 37곳으로 총 200곳이 새롭게 개관을 하였고, 이러한 전시 공간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시 공간의 증가, 무엇이 문제인가?

전시 공간이 증가하고 보다 많은 대중들에게 문호가 개방되고 있음은 분명 반가운 일이나 모든 일에는 공과가 동시에 따르는 법. 일각에서는 무분별한 전시 공간의 확장과 증가에 대해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 것도 사실이다. 최근 몇 년 사이 부쩍 증가하고 있는 전시 공간 가운데 각 자치단체들이 앞 다투어 미술관이나 문예회관 같은 문화기반시설용 전시 공간 확충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2003년을 기점으로 급격한 증가 양상을 보이는데, 이는 박물관 미술관 등록 및 설립계획 승인업무를 중앙정부에서 시도로 이양(법률 제6904호, 2003. 5. 29. 공포)된 것과 국가균형 발전이라는 미명아래 총사업비의 약 30% 범위 내에서 공립박물관 미술관 같은 문화기반시설의 건립비를 중앙 정부가 지원하고 있는 것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렇듯 국공립 전시 공간 건립은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국가 균형 발전과 지방분권’, 지자체는 ‘지역민들의 문화향수 증진과 욕구충족’이라는 두 수레바퀴가 서로의 적절한 정치적 협력과 이해 속에서 비약적인 증가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전시 공간의 건립과 개관만이 최우선적인 과제인지는 심사숙고 해봐야 할 문제이다. 유네스코의 권장기준이나 선진 G7 국가의 평균 문화기반시설 수에 비하면 아직도 그 시설이나 수적인 면에서는 1/3 정도의 수준에 불과하지만, 짧은 기간에 급속도로 많은 전시 공간의 개관이 가져오는 폐해 또한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마스터플랜 없이 우선 건립하고 보자는 현재의 분위기는 종종 지역민들에게 생색내기용 전시 행정의 대표적 사례들로 악용되기도 하며, 아울러 전시를 위한 기초적인 콘텐츠는 고려하지 않은채 건물 같은 외적인 하드웨어 부분이나 포장에 대부분의 예산이 편중되고 있는 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막대한 건축비 뒤에는 그에 따른 운영 및 유지비용이 증가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고, 특히 재정자립도가 열악한 지방 시, 군들의 경우는 이러한 전시 공간은 애물단지로 남을 수밖에 없다.

공익적 목적을 갖는 각종 문화기반시설의 전시 공간은 설립도 힘들지만 운영은 더 어렵다. 정부나 지자체가 박물관, 미술관 혹은 여타의 문화기반시설 확충에 열을 올리고 많은 예산을 쏟아 붓고 있지만 역시 문화는 전시공간과 시설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닐 것 같다. 오히려 현재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전시 공간이기 보다는 그것을 운영하고 유지하는 시스템일지도 모르며, 아울러 이를 운용할만한 전문 인력이 부재하다는 것에서 원인을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연일 논란이 되고 있는 ‘미술계의 황우석 사건’이라 불리는 신정아 전 광주비엔날레 감독의 학력 위조 사건은 바로 미술계의 전문 인력풀이 얼마나 허약하고 이를 검증할만한 제도적 장치가 미약한 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 사례라 할 것이다.

증가하고 있는 상업 전시 공간들의 문제점 또한 여기서 비켜갈 수는 없을 것 같다. 이 전시 공간들은 상업적 이윤과 영리가 목적인 공간들이다. 이런 사정 속에서 이 공간들이 주로 수용하는 혹은 하고 싶은 작가나 작품들은 이미 시장성이 검증되거나, 시장에서 인기가 높은 작가이거나 작품들이다. 결국 아무리 전시 공간이 증가해도 전시되고 있는 작품들 혹은 작가들의 스펙트럼에는 별반 변함이 없다. 속된말로 ‘그 나물에 그 밥’인 것이다. 아니 오히려 자본과 시장은 훨씬 더 이러한 현상을 심화시키고 있으며, 이미 그런 조짐은 나타나고 있다.

일반 상업 갤러리나 화랑이 대표적인 이러한 전시 공간들의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몇몇 메이저 전시 공간을 제외하고 대다수의 신규 공간들은 재정적으로 열악한 구조를 갖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작가를 발굴하거나 검증해 시장에 진입시키는 역할을 제대로 해줄 수가 없고, 그만큼 작가나 작품층은 얇아질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최근 새롭게 나타나고 있는 전시 공간 가운데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기 위한 대형 마켓 형태의 전시 공간이 속속 선보일 예정인데, 이러한 전시 공간은 급속한 시장화 과정에서 기존과는 다른 대규모의 자본과 냉정한 시장 논리 속에서 등장하고 있는 전시 공간들이다. 이 공간들의 성패에 따라서 미술 공간의 지형도가 변화될 수도 있겠지만 이 공간들의 공과 또한 아직은 미지수다.

이외에도 증가 추이를 보이고 있는 전시 공간의 80~90%가 서울이나 인근 지역에 편중되어 있는 점이나 자본화, 대형화 되는 전시 공간의 속출, 그리고 일상 공간을 기반으로 하는 전시 공간 등이 증가하고 있는 최근의 전시 공간의 변화와 경향은 무어라 정확히 규정지을 수는 없지만 미술 시장의 호황과 함께 다변화된 형태로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

제도나 공간, 혹은 그것을 둘러싼 자본을 뛰어 넘기

미술사적으로 20세기에 들어선 많은 미술가들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제도적 공간을 벗어날 것인가, 혹은 그 제도적 공간을 감싸고 있는 자본과 권력을 뛰어넘을 것인가였다. 부르조아의 품에서 그들의 자본을 과시하는 수단으로서의 예술을 포기하고, 그 대가로 제공받았던 안락함을 반납하면서부터 현대미술은 스스로를 기록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제도적 공간이나 권력을 벗어나려 하면 할수록 그것을 제어하려고 하는, 통제하려고 하는 힘 또한 비례한다.

어쩌면 현대미술은 자본의 회유 속에서 예술을 제도 내에 잡아 놓으려고 하는 힘과 그것을 부정하고 벗어나려고 하는 힘 사이의 긴장과 충돌에서 튕겨져 나온 개념 혹은 그 결과물들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미 100여 년 전, 아니 그 이전부터 미술은 공간과 그 공간을 주도하는 권력 혹은 자본과 적절한 수용과 대립을 반복하면서 발전해왔다. 자본으로부터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이 시대에, 예술 혹은 미술마저도 자본의 최첨단 머니 게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 시대에 다시 제도나 공간, 혹은 그것을 둘러싼 자본을 뛰어 넘으려는 많은 예술가를 기대한다는 명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박준헌 / Art Management Union 대표


 

중앙대 예술대학원 박물관·미술관 학과에서 미술이론을 전공했다. 월간 <미술세계> 수석기자, 편집장을 거쳐 목인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을 역임했다. 현재 계간 <emotion> 편집위원, 한국미술경영연구소 선임연구원, Art Management Union 대표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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