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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日최고 ‘고전’·저자에 대한 해설서
근대 日최고 ‘고전’·저자에 대한 해설서
  • 교수신문
  • 승인 2007.07.22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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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 1 _<「문명론의 개략좩을 읽는다> 마루야마 마사오 지음 | 김석근 옮김 | 문학동네 | 804쪽 | 2007

 

1853년 미국의 동인도함대 사령관 페리가 네 척의 흑선을 이끌고 일본에 내항했다. 이때 후쿠자와 유키치는 20세였다. 1860년 2월 26일 후쿠자와 유키치는 난생 처음 샌프란시스코를 방문한다. 20대 초반의 후쿠자와에게 서구는 동경의 대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경계의 대상이었다. 20대에 낯선 세계를 처음으로 유람한 후쿠자와는 42세 때 <문명론의 개략>(1875년)을 출간한다. 서구의 풍경을 마주한 후쿠자와는 “갑자기 귀가 트이고 눈이 뜨이는 느낌”이 들었다. 이는 “어둡고 고요한 심야로부터 떠들썩한 백주의 세계로 나온 것”과 같았다. 서구의 실상은 “사람의 정신에 파탄을 일으킬 뿐 아니라 그 밑바닥까지 뒤집어” 놓을 만큼 거세게 후쿠자와를 흔들었다.

한 몸으로 두 삶을 살아가다
“한 몸으로 두 삶을 사는 것 같고, 한 사람에게 두 몸이 있는 것 같다”는 후쿠자와의 고백은 철학적인 개념이나 논리의 문제보다는 실감과 실천의 차원이었다. 이는 일본의 개국(開國)이후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만 하는 과제에 봉착한 일본 지식인들의 내면을 잘 드러낸 말이자, 격동의 시대를 살아내는 과정 속에서 나온 후쿠자와의 외침이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문명론의 개략>을 출간하면서 일본인들에게 당부의 말을 남겼다. 서세동점(西勢東漸)의 “다급한 형편” 때문에 책의 내용이 “영원하고 심오한 내용”을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마치 벌에게 쏘이듯이 심신에 날카로운 반응”을 보여 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세찬 비바람을 견뎌내는 가옥과 같이” 이 시대를 살아내고 지력을 키워 문명화를 달성해주었으면 한다. <문명론의 개략>은 일본의 문명화를 위한 일종의 숙주가 되었다.
마루야마 마사오의 <문명론의 개략을 읽는다>는 일본근대정치사상사의 요체로 자리 잡은 <문명론의 개략>에 대한 해설서이자 주석서이다. 이 책은 어느 면에서 마루야마 마사오‘의’ 후쿠자와 유키치인 셈이다. 마루야마는 <문명론의 개략>을 근대 일본의 최고 ‘고전’으로 치부하며, 이를 통해 고전의 독해 방식을 제기한다. 마루야마에게 고전 읽기는 “자신을 현대로부터 격리시키는” 방법이다. 여기서 격리란 도피가 아니라 적극적인 노력에 의한, 현대의 전체상을 관찰하기 위한 일종의 거리두기이다.
고전과의 만남을 위해 마루야마는 두 가지 방법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는 선입견이다. 다른 하나는 지레짐작이다. 우리 또한 후쿠자와 유키치라고 하면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이자, 저 악명 높은 탈아론(脫亞論)과 탈아입구(脫亞入歐)의 주범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후쿠자와는 탈아론을 썼지만, 탈아입구라는 성어(成語)를 쓴 적은 없다. 또한 그가 국체(國體)를 말했지만 이는 ‘국체=천황=만세일계(萬世一系)’를 뜻하는 것으로 지레짐작해서는 안 된다. 후쿠자와에게서 국체란 “자기 국가의 인민들이 자기 국가의 정치를 장악하는 것”이다. 마루야마는 한 편의 고전을 읽기 위해 문장 하나하나의 유기적인 구조와 행간 사이에 잠복하고 있는 미세한 의미의 균열들을 추적하고 있다.

가로쓰기를 의식적으로 ‘의역’하다
이 책은 서(序)를 제외하고 총 20강의 강의록이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문명론의 개략>의 각 장을 거시적이고 통시적이며 또한 동적인 맥락에서 분석한다. 저자는 후쿠자와의 생기발랄하고 두터운 사유의 깊이를 천착하며 “르네상스적 보편인”이자 근대 지식인으로서의 후쿠자와 유키치를 복원해 낸다.
마루야마가 후쿠자와 유키치의 사상을 고구함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가로쓰기’의 문화와 ‘세로쓰기’ 문화와의 거리이다. 여기서 가로쓰기는 서구를 뜻하고, 세로쓰기는 일본을 의미한다. 메이지 유신 이후의 일본 근대 지식인들은 서구의 가로쓰기를 세로쓰기로 바꾸는 데 골몰한 사람들이었다. 특히 후쿠자와는 “가로로 된 것을 세로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분투했던 선구적인 사상가”였다. 가로를 세로로 만든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전통 속에서 자라난 문화를 이식하는 작업”이다. 이 작업의 대가가 바로 후쿠자와 유키치였던 것이다.
새로운 사상이나 문화는 이질적인 것과 접촉하면서 형성되기 마련이다. 가로쓰기로 상징되는 서구의 문화와 사상을 세로쓰기로 번역해야만 하는 후쿠자와는 이질적인 문화와 사상을 의식적으로 ‘의역’한다. “의식적 의역이란 일본의 풍토에 부응해서 원래의 뜻을 살리고” “의식적으로 어떤 의미에서 원전을 ‘왜곡’”하는 방법이다. 이는 후쿠자와뿐만 아니라 메이지 초기 일본 지식인들의 동일한 고민이었다.
서구의 문화나 사상을 일본식으로 번역한다는 것은 기표의 번역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기의까지 동시에 번역해야 하는 일이다. 또한 그것은 당시 일본의 문화와 사상의 맥락 속에서 ‘의역’되는 것이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의식적인 의역을 통해 근대일본사상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후쿠자와의 <문명론의 개략>은 프랑수아 기조의 <유럽문명사>, 토머스 버클의 <영국문명사>, 존 스튜어트 밀의 <공리주의>·<자유론>·<부인론> 등을 저본으로 한다. 그렇지만 후쿠자와는 앞의 책들을 단순하게 번역하거나 ‘표절’한 것이 아니라 일본적 상황의 특수성에 입각하여 ‘변용’하였다.
마루야마 마사오의 <문명론의 개략을 읽는다>는 한 사람의 문명사가(文明史家)와 그가 일본인들에게 남긴 “유일한 체계적인 원론”인 <문명론의 개략>에 대한 친절하고 치밀한 독해의 산물이다. 그렇다고 이 책이 후쿠자와 유키치에 대한 유일한 주석서는 아니다.
이 책은 <문명론의 개략>에 대한 다양한 주석서 중의 하나일 뿐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주목해야할 부분은 후쿠자와 유키치가 “다원적 권력론자”이거나, 탈아론을 주장하여 일본의 대륙침탈을 정당화했던 사상가였다는 의혹이 아니다. 한 권의 책과 한 사람의 인식의 깊이를 당대의 맥락에서 치밀하게 파헤쳐 들어가는 마루야마의 텍스트 독해의 방법론일 것이다.

선입견 없이 개화사상가 분석 필요
이 책의 말미에서 마루야마 마사오는 “과연 우리 일본은 파탄에 직면해 있는 현재의 세계질서에 대해 새로운 구상을 ‘시조(始造)’하는 실험을 견뎌내고 또 그에 걸맞은 상상력을 구사할 수 있을까”라고 질문한다. 한 권의 책이 고전이 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선점한 사상 때문도 오래되었기 때문도 아닐 터이다. 그것은 끊임없이 재해석의 여지를 남겨두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여기의 맥락에서 새롭게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창구가 되기 때문일 것이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한국의 근대계몽기 사상사에도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김옥균, 윤치호, 유길준 등이 모두 후쿠자와와 깊은 유대 관계를 맺고 있었다. 갑신정변에 실패한 김옥균을 보호한 것도, 윤치호를 학문적으로 후원해 준 것도, 유길준의 <서유견문>을 출판해 준 것도 모두 그였다.
마루야마 마사오의 후쿠자와 유키치 독해를 거울로 삼아 이제 우리 또한 선입견과 지레짐작을 떨쳐버리고 선구적인 개화사상가들의 텍스트를 꼼꼼하게 분석하여 현대의 전체상을 파악해야 하지 않을까. “일본국의 역사는 없고 일본 정부의 역사가 있을 뿐이다”나 “일본에는 그저 정부가 있을 뿐 아직 국민은 없다”는 말은 현재 한국의 입장에서도 아주 유의미한 말이 아닐까.

이승원 / 한양대·국어국문학


 필자는 인천대에서 ‘근대전환기 기행문에 나타난 세계인식의 변화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연구조교수이다. <소리가 만들어낸 근대의 풍경>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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