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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2_지역 ‘토박이’ 교수가 추천하는 여행지1]제주-경기-충청지역
[특집2_지역 ‘토박이’ 교수가 추천하는 여행지1]제주-경기-충청지역
  • 교수신문
  • 승인 2007.07.21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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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교육의 장, 알뜨르 비행장 / 제주도  알뜨르비행장

제주도 서남부의 끝자락, 멀리 마라도와 가파도가 한눈에 보이는 곳. 송악산 해안가 맞닿은 곳에 평화를 위한 교육의 장소로 요즘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알뜨르비행장’이 있다. ‘뜨르’ 혹은 ‘드르’는 넓은 들판을 의미한다.
일본군 해군항공기지였던 알뜨르비행장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중국 상하이 및 난징과 마주하고 있어 일본군이 처음 중일전쟁에 대비하여 중국 공격 기지로 활용하기 위한 장기적인 계획으로 1926년 구상되었다.
그 후 1차 공사(1931∼1935년)로 활주로 1천4백m×70m에 규모 약 18만 평으로 완성되었다.1937년 중일전쟁의 발발로 나가사키현의 오무라(大村) 항공기지를 알뜨르비행장으로 옮기면서 40만 평으로 2차(1937∼1938년) 확장되었다. 그 후, 태평양전쟁의 주범인 일본은 미국에 밀리면서 1944년 여름에 괌, 사이판에서 패전하였고, 10월에는 필리핀이 함락되었다. 알뜨르비행장이 66만 7천 평으로 3차 확장한 것은 1944년 10월로 미군의 북상에 대한 대비 차원이었다.
일본은 1945년 4~6월에 대대적인 오키나와전이 불리하게 되자, 일본 본토 사수가 중요한 과제였다.
최후의 방어선으로 제주가 주목되었고, 이를 위해 ‘결7호작전’이 수행되었다.
만주에 파견되었던 관동군 7만5천여 명이 제주로 급파되었고, 제주도민을 비롯한 국내외에서 강제 징용 및 징병된 사람들을 중심으로 전쟁준비가 진행되었다. 일본군은 모슬봉에 레이더기지를 설치하는 한편,
미군 공격으로부터 사람과 물자를 보호하기 위한 항공기지 지하 격납을 시작하였다.
즉, 섯알오름갱도진지, 송악산갱도진지, 격납고, 고사포진지, 참호, 전투사령실, 연료고, 통신실, 탄약고, 지하벙커 등의 지하시설을 마련하였는데, 그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어 평화의 소중함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김동전 / 제주대·사학과

 

술 역사의 현장에서 “한잔해~”/ 경기도 - 안성 술박물관

애주가들에게는 한번쯤 귀가 번쩍 띄게 될 술 박물관이 안성 시내에서 석남사(약 5km 우측) 가는 길옆에 있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안성시 금광면 개산리 개산초등학교 근처에 있는 술 박물관은 박영국(53세)이라는 개인이 30여년간 모은 술에 관한 다양한 물건들과 지금은 잊혀진 이름의 술들을 모아 3만5천여점을 전시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마당에서부터 옛 술통과 술독, 술병 등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1층과 2층을 합쳐 2백여평 건물 가득 지금은 찾으려 해도 구할 수도 없는 귀중한 물건들이 숨을 쉬고  기다린다. 각종 희귀한 술뿐 아니라 조선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각종 술 관련 주구(酒構)들까지 모두 갖췄다. 술 한 잔에 인생의 애환을 날려 버리고 희망과 절망을 함께 체험하며 인생을 논하던 옛 발자취를 고스란히 담은 술 역사의 현장이 바로 이곳에 있다. 가히 국내 최대의 민간 술 박물관이라 부를 만하다. 박 사장은 술을 좋아하는 만큼 엄청난 술고래란다. 작은 구멍가게에서 시작해서 삼간초옥까지 갖춰 정자(원두막)와
지금의 1천6백평 규모의 술 박물관을 건립하기까지는 주변의 손가락질 등 에피소드도 많았다. 미쳤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술과 관련된 물건은 무조건 사모았다. 애착이 가서 사고, 물물교환도 하고, 그냥 얻기도 했다. 닥치는 대로 모았는데 술 관련 자료 수 만점이 아직 정리되지 않은 채 수원에 있는 창고에 쌓여 있단다. 객지를 전전하며 살다가 2005년 고향인 안성으로 돌아와 술 박물관을 건립해 고향에 볼거리를 만들어준 박사장은 방송에도 가끔 출연해 술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조언해 주기도 하고 애주가를 만나면 며칠 밤도
함께 통음을 하며 밤을 지새우는 진짜 술 사나이다.                                                                          

홍완표 / 한경대·교양학부

“면목 없습니다, 정말” / 충청도 - 사면석불

살아갈수록 느는 것은 흰머리요 쌓이는 것은 부끄러움이다. 충남 예산군 봉산면 화전리 사면석불에 오는 날은, 그래서 나는 이렇게 고백하게 된다.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충남 서부 내포(內浦) 지역에 위치한 백제 3불 가운데 하나인 예산의 사면석불(보물 794호)은
거친 석질의 암괴 4면에 각각 석불을 조각한 것이다. 그것을 동서남북의 사방에 새긴 것은 아마
진리란 어디에나 편재(遍在)한다는 상징적 의미일 것이다. 1천4백 년 전 등신(等身) 크기의 백제 부처님을 직접 대면할 수 있다는 것은 이곳 내포에서만의 특권이다. 어떻게 내포에서만 백제 석불을
볼 수 있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이러저러한 해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많다.
예산의 사면불은 그 내포의 3불 가운데 가장 오랜 것일 뿐 아니라 가장 입체적인 작품이고, 부처님의 수에
있어서도 상대적 우위를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사면불은 국보 아닌 보물 지정에 그쳤다. 그 이유는 이 사면불의
훼손된 얼굴<面目> 때문이다. 국도에서 지척의 위치인데도 찾는 이가 적어 사면불에 올 때마다 나는 항상
독대(獨對)의 특권을 누린다. 그리고 1천4백년을 넘긴 그 기나긴 기다림과 시간의 무게를 음미하게 된다.
최근에 조성된 주차장에서 부처까지는 30미터 정도의 짧은 언덕길, 주변은 솔밭과 함께 들꽃 질펀한
사면초가(四面草街)의 풍광에 새소리까지 곁들여진다.
사면불과의 조우(遭遇) 이후 차로 15분이면 서산 마애삼존불의 백제 미소와 고려 탄문 스님의 보원사 절터에
너끈히 닿게 되고, 방향을 달리하면 풍수 찬란한 가야산의 남연군묘, 세워진지 꼭 7백년 된 수덕사 대웅전,
혹은 돌에 새긴 고암 이응로의 문자 추상을 지척의 거리에서 만날 수 있다. 또 한가지, 부근 덕산온천은 백제
옛 땅에서 최상의 수질로 평가되는데 이곳은 몸만 아니라 마음까지 씻을 수 있는 세심(洗心)의 온천이기도 하다. 그래서 면목 없는 사면불을 뵌 날에는 나는 으레 이곳 덕산에서 나의 면목을 닦는다. 그리고 마음까지.
윤용혁 / 공주대·역사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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