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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확대가 국가 안보 약화시키나…‘리버럴리즘’ 재조명
자유 확대가 국가 안보 약화시키나…‘리버럴리즘’ 재조명
  • 김동규 / 명지대 강사·정치학교수신문
  • 승인 2007.07.15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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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_<지유의 힘(Freedom’s Power)> Paul Starr 지음 | Basic Books | 2007

일반적으로 보수주의자는 개인의 자유가 확대되는 것을 못마땅해 한다. 무엇보다 자유가 너무 많이 주어지면 사회 기강과 국가 안보가 흔들릴 것 같다는 생각을 갖기 때문이다. 예컨대, 2005년 6월 전방 GP 총기난사 사건 이후 정부는 ‘병영문화개선’이라는 이름의 병영 자유화를 추진해왔는데, 보수주의자들은 역시 이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던지고 있다. 7월 3일자 <주간동아>의 커버스토리 ‘弱軍시대’는 전형적인 보수주의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일병과 상병이 반말로 대화하는가 하면, 장교와 병사가 형 동생처럼 지낸다. 같은 내무반 병사들이 서로를 ‘아저씨’라고 부르는 한 부대는 선진 병영문화의 모범이라면서 국방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각개전투 교장에 민간인이 찾아와 도끼와 칼로 위협하는가 하면, 신병에게서조차 군기를 찾아보기 어렵다. (중략) ‘에스콰어어’ ‘GQ’ 같은 남성잡지를 읽으면서 컴퓨터게임을 즐기는 신세대 병사들, 그들은 바야흐로 ’약군(弱軍)시대’를 만끽하고 있었다.

“자유의 확대가 강한 국가 만든다”
그런데, 자유의 확대는 사회의 기강과 국가의 안보를 진정 약화시키는가?
직관은 맞을 때도 많지만 틀릴 때도 많은 법. 보기와 달리 태양이 아니라 지구가 돈다는 것 아닌가? 프린스턴대학 사회학 교수인 저자는 직관과 달리 “자유의 확대가 오히려 강한 국가를 만든다”고 한다.
저자는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장관을 역임한 로버트 라이시(Robert Reich) 등과 함께 <미국의 전망>(American Prospect)을 편집해오고 있는 미국 민주당 계열의 대표적 지식인으로서, 미국 지성계에서 힘을 더해가고 있는 보수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맞서 리버럴리즘을 이론적으로 옹호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최근 출간된 이 저작은 찰스 틸리(Charles Tilly), 테다 스카치폴(Theda Skocpol) 등의 역사사회학적 접근과 스티븐 홈즈(Stephen Holmes) 등의 리버럴리즘 철학이 만나는 접점에 있다고 하겠다. 저자는 틸리와 스카치폴이 제기한 “국가는 전쟁을 낳고, 전쟁은 국가를 낳는다”는 관점에서 리버럴리즘을 재조명했다고 할 수 있다.
저자의 결론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국가안보-전쟁수행에서도 리버럴리즘이 가장 세다”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정치이념도 전쟁이라는 테스트를 패스하지 못하면 국가의 운영이념으로 부적격인데, 리버럴리즘은 다른 어떤 이념보다도 성적이 좋았다는 것이 저자의 이야기다.
일반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리버럴리즘은 우파 보수주의자들에 의해 국가의 전쟁수행 능력을 약화시킨다는 비판을 자주 들어왔다.(이러한 약한 이미지를 불식시키려고 미국 민주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힐러리 클린턴은 이라크 전쟁과 관련해서 강경노선을 택하기도 했다.) 하지만, 근대 이후 전쟁사를 살펴보면 리버럴리즘은 어떤 라이벌 이념보다 전쟁에서 강했고, 주요 전쟁이 끝나면 더욱 자유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다. 도대체 어떻게 자유의 확대가 국가의 생존력을 강화시켰을까?

“통제된 힘이무절제한 힘보다 세다”
우선 저자는 제어되고 통제된 힘이 무절제한 힘보다 세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리버럴리즘의 근대적 형태인 입헌적 리버럴리즘은 국가권력이 헌법과 법의 지배에 기속(羈束)되어 자의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지 못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반대로 권력을 가진 개인이 국가권력을 농단하지 않도록 막아 국가권력을 보호했다.
또 입헌적 리버럴리즘은 이러한 규율을 통해 권력행사를 더욱 예측가능하고 신뢰할 수 있도록 만듦으로써 장기적으로 국부의 원천이 되는 상공업을 발전시켰다. 한마디로 리버럴한 국가의 힘은 “통제되기 때문에 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20세기 들어 리버럴리즘이 국가권력에 대한 견제라는 기존 입장에서 벗어나 오히려 국가권력을 강화하는 방향(큰 국가!)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 왔는데, 이것은 어떻게 설명되는가? 우선 저자는 ‘군사참여비율’(military participation ratio) 즉 ‘전체 인구 중 국방참여 인구 비율’이 증가한 데서 시민권의 확대·심화, 그리고 이에 따른 국가 역할 확대의 원인을 찾는다. 즉, 현대 전쟁이 더 많은 병력을 요구함에 따라 국가는 더 많은 인구를 전쟁노력에 동원해야 했고, 그 반대급부로 시민권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로 확대하고 시민권의 내용도 정치적 권리를 넘어 사회경제적 권리로까지 심화시켰다는 것이다.
또,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자본의 집적과 집중을 통해 거대기업이 등장하게 되자 이것이 개인들의 자유를 침해하게 되는 또 하나의 권력이 되었다. 이제 국가권력 뿐만 아니라 거대기업이라는 경제권력도 통제될 필요가 발생한 것이다. 이에 따라 리버럴리즘은 거대기업 권력에 대한 공적 통제를 강화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국가의 역할이 늘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국가의 역할과 권한이 이렇게 확대되자 이를 통제할 필요성 역시 커졌다. 그리하여 양차대전 이후 리버럴리즘은 소수자의 권리 등 개인의 자유 확대에 더욱 매진하게 되었고, 이러한 권리 확대를 통해 국가권력을 더욱 통제하고 규율하게 되었다. 이러한 통제를 통해 현대 리버럴리즘은 최후의 승자가 되었는데, 역시 힘은 통제되어야 강해진다.

“자유분방해 보이는 군대가 강한 군대”
 누군가에게 권리가 발생하면 다른 누군가에겐 이에 상응하는 의무가 발생하는 법이다. 즉 내가 돈을 받을 권리를 가지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누군가가 나에게 돈을 줄 의무가 있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개인의 권리가 강해진다는 이야기는 국가든 거대기업이든 또는 타인이든 그 만큼 의무가 무거워진다는 이야기다. 자유가 강한 나라는 자유방임 국가가 아니라 의무가 무거운 나라다.
즉,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자유를 누리는 국가일수록 사실 규율이 강한 국가이기도 하다. 그리고 국가권력은 통제되고 규율될 때 더욱 강한 힘이 된다는 사실을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앞에서 본 <주간동아>의 걱정과 달리 어쩌면 그렇게 자유분방해 보이는 군대가 결국에는 강한 군대가 될 것 같다는 것이 폴 스타 교수의 생각이다. 2005년 전방 GP 총기난사 사건이 진정 강한 군대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태양이 아니라 지구가 돈다.

* 리버럴리즘 : 미국적 맥락에서 liberalism 또는 liberal은 우리의 ‘자유주의 진보’, ‘자유주의 진보주의자’에 해당하므로, 단지 ‘자유주의’, ‘자유주의자’로만 번역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자유주의가 (진보적 의미의 ‘정치적 자유주의’가 빠진) ‘경제적 자유주의’(신자유주의)만을 의미하는 경향이 강하므로 서평자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리버럴리즘, 리버럴로 표현했다.

김동규 / 명지대 강사·정치학


 

필자는 美  럿거스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했다. 1995년 외무고시로 외교통상부에서 근무, 남북관계, 6자회담 등을 담당했다. 역서로 <공화주의> <서양정치철학사> (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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