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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학사에 가려진 정뇌경의 순절
삼학사에 가려진 정뇌경의 순절
  • 교수신문
  • 승인 2007.07.09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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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충정공 정뇌경 전기> 박광운 지음 | 광주문화원 | 2007

이른바 삼학사, 즉 홍익한·윤집·오달제는 1636년 병자호란 시 척화를 주장하다 청국 심양에 잡혀가 처형당한 순절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삼학사 외에 다른 순절 인물은 없었던가? 바로 운계(雲溪) 정뇌경(鄭雷卿·1608~1639)을 들 수 있다. 정뇌경은 남한산성이 함락된 뒤 청국과 강화가 성립되자, 1637년 2월 자청하여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심양으로 호종하고, 2년 동안 심양 관소에서 두 왕자를 모시고 고락을 같이한 시강원(侍講院) 문학(文學)이었다. 조국을 등지고 행패를 일삼던 조선인 출신 청국 역관 정명수와 김돌시를 제거하려다 일이 잘못되어 1639년 4월 심양에서 청국 정부에 의하여 처형되었다.
정뇌경의 순절에 대한 내용은 <조선왕조실록>·<승정원일기>·<심양일기> 등에서 이미 언급되고 있으나, 지금까지 주목받지 못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은 정뇌경의 순절을 핵심으로 일대기를 그린 전기로써 정뇌경을 대상으로는 처음 쓰여진 글이 아닐까 생각된다. 심양에서의 순국 과정에 초점을 맞춰 쓰는데 주력하였다. 저자 박광운 선생은 현재 경기도 광주 향토문화연구소장으로서 오랫동안 광주 지역의 역사인물을 발굴하고, 광주 실학을 발현하는데 헌신해온 향토사학자이다. 고향 광주의 문화와 역사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인사로써 다년간 정뇌경과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여 한 권의 책으로 발간한 노고를 치하드린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뇌경의 일대기를 그린 본문, 정뇌경의 행장과 비문 등을 수록한 부록, 그리고 정뇌경의 문집 <운계선생문집>을 영인하여 뒤에 부쳤다. 책의 머리 부분에는 정뇌경과 관련된 유품 사진과 연보도 수록하였다. 본문 서술 방법은 학술적인 틀을 완전히 벗어나 자유롭게 썼고, 소제목도 쉽게 풀어 서술형으로 붙여 누구나 재미있게 읽도록 배려하였다.
이 책을 읽고,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주목되는 사실을 찾아볼 수 있었다. 첫째, 병자호란 직후 조선과 청의 정치관계가 심양 관소에서 적지 않게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특히 <심양일기>는 그러한 기사를 많이 담고 있기 때문에 인조와 효종대의 정치외교 관계를 파악하는데 세심한 분석이 요구된다 하겠다. 둘째, 가능한 저자의 설명을 피하고 많은 원문 자료를 제시하여 저자의 주관적 판단보다는 자료를 통한 독자의 판단에 맡기면서 객관성을 유지하려 노력하였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셋째, 병자호란 직후 심양 관소를 중심으로 펼쳐진 사건 전개와 상황설명은 조선의 외교활동과 청의 조선에 대한 정책을 이해하는데 유익하였다. 끝으로 병자호란이 낳은 충절 인물에 대한 재검토가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삼학사는 끝까지 척화를 굽히지 않다가 순절하였으나 정뇌경의 경우는 좀 다르다. 삼학사와 같이 대명의리(大明義理)로 척화를 주장하였다는 점은 같지만, 정뇌경의 순절은 척화에 직접적인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고, 호란 이후 나라에 해독을 끼치는 인물을 제거하려다 적지에서 정의롭게 순절한 경우이다. 정조도 삼학사와 정뇌경이 충절의 계기는 다르지만, 충절에 있어 누가 낫고 누가 못하지 않다고 하였다.
이 책은 표제에 나타나 있듯이 전기집으로 순수 학술 서적은 아니다. 그러나 읽는이로 하여금 학문적 지식이나 감동을 적지 않게 전해 주리라 확신한다. 조선 후기 많은 선현들이 왕실이나 당색을 떠나 이구동성으로 정뇌경의 순절을 칭찬한 까닭이 근본적으로 어디에 있었던가를 곰곰이 생각해 봄직하다.
그러나 당대의 기록인 <심양일기>나 정조대 정뇌경에 대한 충절을 높이 평가하여 기록한 <홍재전서> 등의 기사도 상세하게 분석해 보았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이 책을 읽다보면, 자기 하나의 희생으로 세자와 동료들을 구하고 떳떳하게 죽음에 임하는 정뇌경의 모습을 그린 <심양일기>의 1639년 4월 18일 기록(147-152쪽, 〈정뇌경 최후의 날〉)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강세구/ 사학


 

필자는 서강대에서 ‘동사강목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주요저서로 <순암 안정복의 학문과 사상연구>, <성호학통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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