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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정신의 힘으로 탐색한 ‘행복의 초상’
예술정신의 힘으로 탐색한 ‘행복의 초상’
  • 손주경/고려대 레토릭 연구소 연구교수
  • 승인 2007.07.09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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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행복의 역사> 미셀 포쉐 지음 | 조재룡 옮김 | 열린터 | 2007

나는 행복한가? 나는 행복을 추구하는가? 아니 행복이란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러면 당신의 행복은? 인간이라면 모두가 얻고자 하는 행복은 그러나 <행복의 역사>를 쓴 미셀 포쉐에 의하면 개인적인 것이 아니다.
개인이란 시대정신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다는 전제하에 이 리옹 대학의 역사학과 교수는 굳이 ‘행복’과 ‘역사’라는 두 명사를 결합시킨다. 이것은 단지 죽음의 역사, 사생활의 역사 등과 같은 미시적 관점의 역사 기술에 합류하기 위해서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가 행복의 여러 양상들을 시대 속에서 탐색하고자 한 것은 오히려 개인의 삶의 조건이 역사와 사회의 입김을 받고 있다고 파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와 사회가 고정된 것이 아니듯, 문학과 예술, 사회와 정치 그리고 역사가 서로 얼굴을 마주하면서 자유롭게 교차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는 <행복의 역사>가 소개하는 인간의 행복에 대한 접근방식과 실현방식은 시간의 다양한 흐름만큼이나 상이한 모습을 띠고 있다. 여기에서 저자는 바로 그 상이함이 변화하기 쉽고 추상적인 행복이라는 개념을 넉넉하게 채워왔음을 조목조목 보여주고 있다.
미셀 포쉐는 이 책에서 창세기부터 자본이 그 맹위를 떨치고 있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행복을 어떻게 구상하였으며,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살펴본다. 신으로부터 선택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왕국을 소유하며 얻게 되는 ‘완벽한 행복’의 시대, ‘철학’이라는 지적 활동을 가능케 하는 지혜의 결과로 행복을 인식한 폴리스의 고대, 신의 도움이 없다면 지상에 행복이 정착될 수 없다고 인식한 중세인들의 세계, 종교적 믿음에서 벗어나 지식과 감성의 힘에 의지하여 자아의 은밀한 기쁨을 쾌활하고도 당당하게 외쳐댈 수 있었던 인문주의자들의 행복이 그려진다. 그리고 개인성을 발견한 그들이 다가올 시대에 마련해 준 또 다른 모험으로서의 행복이 뒤따르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저자는 행복의 범주에서 신을 떠나보낸 인간이 그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예술정신으로 무장하여 치열하게 탐색하였다는 점을 놓치지 않는다.
존재와 사물 사이의 근본적인 불안정성 혹은 시간과 죽음 사이의 놀이 속에 위태롭게 걸쳐있는 행복을 추구하였던 바로크의 시대가 있었는가하면, 개인의 이성에 의존하기도 하고 때로는 삶의 개성적인 도정을 추구하면서 자신에 대한 끝없는 추구와 실험을 시도한 시대가 뒤따르기도 했고, 개인과 세계의 이 영원한 결별 속에서 자신을 타자화하면서까지 행복을 엿보려는 초월적 시도를 감행한 예술가들의 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그런데 이들이 예술의 이름으로 그려 보인 행복에 대한 추구는 예술이라는 것의 속성이 그러하듯, 개인을 넘어선 보편적 개인들의 모임으로 확대되어간 것이기도 했다. 그것을 저자는 행복과 정치를 관련지으며 강조한다. 행복에 대한 인간의 진보한 이성과 감성은 결국 정치적 혁명을 통한 행복의 단계로 나아가게 되었고, 거기에서 새로운 모습을 띠고 행복을 찾아 나선 또 다른 얼굴의 인간, 예전에 보들레르와 랭보가 미리 그려보였던 현대인간의 자화상이 있다는 것을 이 역사학자는 흥분된 어조에 담아 고백하기도 한다.
여기서 우리가 그의 목소리가 흥분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예술가들의 시대에 뒤따른 새로운 시대가 행복의 추구를 언제나 관대한 미소로 허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목도하고야 마는 저자를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가 바라본 현대의 행복은 개인에게서 개인성을 박탈하는 자본주의의 행복이었고, 개인의 행복을 위해 고안된 기술에게 무한한 능력을 봉헌할 수밖에 없었던 인간의 초라한 초상이었으며, 기계와의 대화 속에서 그리고 물질과의 조우 속에서 위태로운 행복을 경험하는 현대인의 허름한 행복일 뿐이었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의 끝에서 개인의 만족과 물질적 쾌락을 벗어나 인간성을 찾아나서는 행복한 여행을 감수할 것을 우리에게 간곡히 부탁하고 있다. 행복을 위한 여정의 끝이 보이지 않을지라도 그 여행의 마지막 한계를 향해 항해하기 위해 희망으로 무장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그런데 미셀 포쉐가 권유하는 희망은 이데올로기적인 모토도 아니고 만남을 보장하지 못하는 공허한 외침도 아니다. 오히려 그는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이 만들어낸 예술 작품이 행복에 대한 우리의 시선을 변화시킬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예술정신이 생명의 빛을 발하는 해안가 근처로 언제나 우리를 인도할 것이라는 믿음에 근거하여 행복의 역사가 진행되어 왔음을 자신의 책에서 증명한 저자는 이 소중한 증거가 영원할 것임을 또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가 인용하는 문인들, 철학자들, 화가들의 글을 통해 예술정신의 힘으로 행복이 탐색되어 왔다는 ‘행복’한 역사적 사실을 이 책에서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체계적이고 도식적인 글쓰기의 통제를 받고 있지 않는 미셀 포쉐의 저술 방식 그 자체가 행복을 얻기 위한 예술적 시도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님을 마침내 깨닫게 된다. <행복의 역사>는 역사의 영역이 아니라 문화에 대한 글쓰기 공간에서 그 본연의 자리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을 독자는 분명 다가올 시간의 또 다른 <행복의 역사>를 쓸 저자가 그려 보일 미래의 행복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 할 것이다.

손주경/고려대 레토릭 연구소 연구교수


 

필자는 프랑스 투르대학에서 ‘롱사르의 궁정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르네상스 궁정의 시인 롱사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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