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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글 깊은 생각]70
[짧은 글 깊은 생각]70
  • 교수신문
  • 승인 2001.10.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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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0-30 10:39:44
계동준/ 대전대·노어노문

강단에 선지도 제법 세월이 흘렀다. 적지 않은 학생들이 내게서 러시아어 혹은 러시아문학을 배우고 멀어져갔다. 특히 기억에 남는 몇몇 학생들이 있다. 교수가 되겠다고 들어선 여정에서 쉽지만은 않았던 시절 내게 기쁨을 준 고마운 사람들이다.
전임이 되기 전 모교에서 교양 초급 러시아어를 가르칠 때의 일이다. 출석부에는 이름이 있는데 학기가 시작되고 한참이 지나서야 강의실에 얼굴을 들이민 학생이 있었다. 사정을 들어보니, 학교 영자신문 기자를 하고 있으며 러시아어를 부전공으로 택해서 열심히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 학생은 내가 대학시절 영자신문 기자였다는 것까지 알아내서 ‘선배님께서 좀 봐 달라’는 것이었다. 이런 학생은 백지 답안지를 내면서 밑에다가 “교수님 죄송합니다. XX고등학교 65횝니다.”라고 쓰는 부류에 속하기 때문에 냉정하게 거절하려다 러시아어를 부전공으로 선택한다는 말을 듣고 “지러파”를 한 명이라도 더 키운다는 생각으로 상당히 두꺼운 교과서의 내용을 5번 쓰고 해석하는 무식한 과제물과 D이상 줄 수 없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학기말에 이 학생은 약속을 지켰고 나는 학점을 주었다. 그리고 2년인가 지났다. 강의실로 어슬렁어슬렁 걸어가고 있는데 운동장 저쪽에서 한 학생이 “교수님 안녕하세요”하고 반갑게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처음엔 얼굴이 낯설었으나 “교수님, 저 러시아어 부전공으로 택해서 지난 학기 A학점 받았습니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것을 듣고야 기억이 났다.
또 다른 학생은 모 회사에서 러시아어를 가르칠 때 만난 분이다. 당시 선생인 내 나이보다 대 여섯 살 위인 부담스런 학생이었다. 강의 첫날, 러시아어에 관심이 많은 사장이 수업을 듣는다는 소문이 돌아 부장, 과장 등 백 여명 정도가 앉아 나를 초긴장 시켰다. 그러더니 날이 갈수록 숫자가 줄어들고 결국 12명만이 그 큰 강당에 달랑 남았다. 이유는 사장이 바빠서 수업을 듣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남은 사람중 대부분이 신입사원들이었고 나이 많은 학생의 직급이 계장이었다. 고시의 꿈을 접고 생활고를 해결하기 위해 힘든 직장생활을 하고 있던 이 학생은 역시 명문 법대 출신답게 복잡한 러시아어 문법의 이해력이 가장 뛰어났다. 고시공부 시절 중고서점에서 호기심으로 구입한 영어로 된 러시아어 문법책을 읽어 본 경험이 있기는 했지만, 역시 어떤 공부든 해 본 사람이 잘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해 준 학생이었다. 회사에서 요구한 교육 평가서에 당연히 최고 점수를 주고 그 회사 뒷골목에서 소주 한 잔 나누고 헤어진지 한 달쯤 지나서였다. 우연히 눈길이 간 신문 인사 동정 난에 실린 이 분의 소식은 나를 정말 기쁘게 했다. 두 직급이나 승진하여 이 회사의 초대 모스크바 지점장으로 발령이 난 것이었다.
전임이 되고 또 시간이 꽤 지난 오늘날 이런 나의 기쁨은 계속되고 있다. 특히 학부제 이후 러시아어를 택한 소수의 학생들이 졸업 후 전공관련 직장에 취업했다는 소식을 전할 때 기쁨은 배가된다. 이럴 때마다 나는 고등학교 때 평범했던 선수들을 대학에서 일류로 키워냈던 미국 대학의 전설적인 농구감독 바비 나이트의 기쁨을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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