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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엔 무관심, 토플은 중시 … 시계제로? 과도기?
공동체엔 무관심, 토플은 중시 … 시계제로? 과도기?
  • 강연희 기자
  • 승인 2001.10.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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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문화의 현주소
 
10월 19일 서울대 기숙사 운동장에서는 2001년 대동제의 마지막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여느 대학가에서 볼 수 있듯이 상품을 내건 노래부르기와 초청 가수의 공연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삼삼오오 모여 술을 마시던 학생들은 초청가수의 노래가 시작되자 모두 무대 앞으로 모여들어 함께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대학의 이런 문화 현상에 대해 언론 매체들은 대학문화가 위기의 시대에 처했다는 진단을 내려왔다. 더이상 대학문화는 희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암울한 전망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대학문화는 어디에 서 있는가.

70년대 대학문화를 돌이켜보면 청바지와 통기타, 쇼펜하우어 등의 단어와 함께 낭만의 시대가 연상된다. 이와 달리 80년대 ‘광주’라는 역사를 거치면서 대학문화는 당대 현실의 모순에 대해 수많은 고민과 실천의 장으로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학생회라는 구심체를 중심으로 지배이데올로기에 대한 강한 비판과 저항의 정신은 대학문화를 주체적으로 선도하며 정치, 사회적 변혁을 위한 대안 문화를 모색했다. 그러나 90년대에 들어오면서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지자 이념적 방향을 상실하고, 한국에서 절차적 민주화가 이루어지자 학생들은 더 이상 정치적 지향점을 찾기가 애매해졌다. 또한 생활방식과 사고 방식이 급격히 자본주의화되었다. 그 결과 대학문화는 새로운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그 표출 방식도 영화, 성, 스타크래프트, 하드락 카페등으로 다양하다.

급격히 변해가는 사회구조만큼이나 대학 문화의 정체성도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시대가 오늘의 대학현실이다. 다양한 학생들의 문화적 담론에 많은 교수들은 당황하고 그 내용에 낯설어한다. 개인주의가 지나치게 만연되있다는 우려속에서 그로 인한 부정적 결과들이 종종 지적되곤 한다. 강내희 중앙대 교수(영문학)는 “현 대학생은 대학의 역할과 목적을 묻지 않고 학점 관리와 토플, 취업 등의 현실적 문제에만 노력하고 공동체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와 같은 현상의 원인 중 하나가 “더 이상 자본주의의 대안이 없는 것처럼 대학안에서 학생들이 사회, 정치적 변혁 운동을 포기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강교수에 의하면 80년대 학생들은 교수들을 의식화하려는 도전을 했으나 2천년대 학생들은 교수들에게 무관심하며 더군다나 교수들도 교수평가제 등으로 통제와 감시의 대상이 되고 있어 따로 시간을 내어 학생들과 함께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은 다른 교수들도 안고 있는 문제이다.

따로 또같이 문화

그렇다면 학생들은 대학문화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정인(연세대 기계전자공학부 98학번 문화기획국장)양은 현 대학문화를 ‘끼리끼리’문화라고 설명했다. 학부제가 시행된 이후 공동체를 지향하는 과전통이 살아있긴 하지만 끼리끼리 모임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들은 정박처를 찾아 공동체나 집단에 묶이고 싶은 마음과 자유롭게 개인적 의사를 실현하는 끼리끼리 형태 둘 다를 추구한다. 또한 다양한 취미활동을 하는 동아리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의 이슈가 전체 관심을 끌지는 않는다. 그러나 “자신들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고민하고 있으며 고민의 표출 방식이 기존과 다를 뿐”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학 문화가 탈정치화되고 그로 인해 현실의 문제를 진지하게 성찰하는 시간들이 없다는 지적에 대해 실재 학생들의 의식을 살펴 보자. 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대학생 54.6%가 자기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대해 ‘진보적’이라고 생각하고 현실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불어 학생 운동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다는 의견이 62.7%로 나타났다. 또한 탈정치를 표방하고 당선된 총학생회에 대해서도 51.4%가 동의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 두 상반된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목화회 동아리 회원인 양지훈(연세대 상경계열 97학번)군은 “오늘날 대학문화는 80년대 대학 문화가 한국 사회에서 차지했던 비중과 중요성에 비교해보면 수위가 낮아졌다. 그러나 대학문화가 저항과 비판의 정신을 잃고 보수화되면 장기적으로 볼 때 결국 한국사회가 보수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속에서 작은 단위라도 조직적으로 비판과 저항의 정신을 지니고 대안문화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하나의 대상만을 한가지의 목소리로 내던 예전과 달리 야당 총수를 비판하는 대자보가 대학가에 붙고 안티조선일보운동을 벌이고 성담론을 공론화 하는등 다양한 방식으로 구체적 실천을 모색하고 있다.

이와 다른 성격을 추구하는 MAY동아리 회원 김병준(연세대 공학계열 00학번)군은 평소 관심이 많았던 컴퓨터 음악을 하고자 동아리에 가입했다. 동아리 MAY의 뜻은 ‘media association of yonsei’의 줄임말로 5월 투쟁을 상징하던 시대와 많은 차이가 있음을 시사했다. 개인주의와 자본주의의 산물이라는 비난에 대해 “시대는 변하니까 유념하지 않는다”고 밝게 웃었다. 특히 같은 회원인 최진아(연세대 피아노과 00학번)양은 “여학생이기 때문에 겪는 차별이나 부당함이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교수가 먼저 손을 내밀면 익숙치 않아 부담스러울 것 같다고 의사를 밝혔다. 이처럼 현 대학생들의 문화는 개인의 자유로움을 지향하면서도 함께 구체적 장에서 실천을 추구하는 따로 또같이 문화라 할 수 있다.

학생과 교수의 열린 소통을 위하여

지금도 대학 문화는 살아 움직이고 학생들은 삶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라는 고민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는 너무나 안이하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안경으로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대학 사회가 지식인으로서 고민과 책임을 져야한다는 당위적 명제는 학생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교수들에게도 돌려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승종 연세대 교수(철학) 의 생각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교수는 오늘날 대학문화가 탈정치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탈정치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첫째 강도나 양상면에서 80년대 극렬한 정치 투쟁의 자로만 오늘의 학생들의 정치의식을 재단하는 것과 둘째 자본과 상품의 논리에 노출되어 대학의 안과 밖의 경계선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더 많은 경우 사회 과학책을 읽지 않고 영화와 같은 영상매체를 선호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느 하나를 평가절하해서는 안된다. 교수와 학생간의 단절감에 대해서 질문을 하자 가르친다는 마음이 아니라 서로 배운다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귀를 열면 들린다고 겸허하게 웃었다.
이제는 새로운 방식으로 대학문화를 받아들이고 긍정하는 여유가 필요한 시간이다.
강연희 기자 allesk@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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