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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비평 기획시리즈]식민지 시기를 어떻게 볼 것인가
[역사비평 기획시리즈]식민지 시기를 어떻게 볼 것인가
  • 교수신문
  • 승인 2007.07.02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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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년대 문화운동에서 연원한 자아개조 민족주의

일제강점기 한국사회를 살았던 독립주의자들은 외부에서 볼 수 없는 삼엄한 문화적 상황을 겪었다. 역사적 자존에 대한 전방위적인 파괴공작이 사회 전반에 걸쳐 일어나고 있던 시기다. 이들은 사회단체, 교육기관이나 종교단체 등을 외피로 삼아 조선 내부에 대한 비판과 잠재력의 발양에 힘써왔다. 윤정란은 케네스 웰스가 주목한 1920~30년대 조선인의 문화운동을 중심으로 개신교 민족주의자들의 운동을 분석, 그들이 국가주의가 아닌 철저한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가능한 최대한의 역할들을 모색했다고 봤다.

웰즈
최근 일제강점기 이해를 둘러싸고 다양한 견해들이 제시되고 있다. 다양성을 요구하는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근현대 역사의 흐름을 지배와 피지배, 억압과 저항이라는 단선적이 아닌 중층적인 이해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현상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영미학자 케네스 M. 웰스의 일제강점기 민족주의자들에 대한 이해는 신선한 충격을 준다. 그는 뉴질랜드 출생으로 인디애나 주립대학에서 동 아시사를 가르쳤으며 한국사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1920, 1930년대 문화운동을 전개했던 민족주의자들에 대한 국내 연구는 다양하지 못했다. 이들 대부분은 일제 말기 친일을 했다는 이유로 1920, 1930년대의 활동조차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웰스는 <New God, New Nation: Protestants and Self Reconstruction Nationalism in Korea(1896-1937)>(1991, Allen & Unwin Pty Ltd, 김인수 역)에서 19세기말부터 형성된 이들의 민족주의 이념이 1920, 1930년대까지 계승 발전되었으며, 해방 이후에는 남북한의 자주, 자족, 자립 등의 형태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가 바라보는 민족주의란 ‘자아개조 민족주의(Self Reconstuction Nationalism)’를 가리킨다. 곧 그가 주장하는 민족주의는 사상적으로는 윤리적 민족주의, 물질적으로는 경제적 민족주의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자아개조 민족주의
웰즈는 1920, 1930년대 개신교 민족주의자들의 민족주의 이념을 자아개조 민족주의라고 하면서 이것은 윤리적인 자아개조와 경제적인 자아개조로 이루어져 있다고 설명한다.
첫째, 윤리적 자아개조란 자아개조 민족주의의 사상적인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뿌리를 19세기말 개화지식층의 개신교 수용에서 찾았다. 곧 당시 민족주의자들이 한국 민족 변혁에 대한 본보기를 내한한 선교사들의 개신교 윤리에서 발견했으며, 윤리적인 수양은 성리학의 도덕적인 훈련을 계승했다는 것이다.
그가 분석대상으로 삼은 인물과 조직은 19세기말부터 1937년까지 활동했던 대표적인 개신교 민족주의자들인 윤치호, 안창호, 이승만, 주요한, 조만식, 신흥우 등과 독립협회, 신민회, 청년학우회,  조선물산장려회, 민립대학설립기성회, 동우회, 흥업구락부 등이다.
이들의 윤리적 자아개조 민족주의는 개신교 윤리에 그 토대를 두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자아개조 민족주의자들의 연원과 이념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들이 개신교를 받아들이게 된 동기는 힘이 강한 국가, 민족을 염원했기 때문이었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등으로 그동안 문명의 상징으로 사고했던 유교적인 이념을 폐기처분하고 대신에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1907년 신앙대부흥운동은 개신교 민족주의자들이 일반 대중들과 더욱 가깝게 갈 수 있도록 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이들은 기독교 기관을 통해서 일반 대중들에게 윤리적 자아개조 민족주의 운동을 전개해 나갔다.
대표적인 개신교 민족주의자들인 윤치호, 안창호, 조만식 등의 윤리적 자아개조 민족주의에 대해 웰즈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문화와 문명의 윤리적인 기초는 개신교이며, 행복과 참 문명의 근원은 기독교적인 사랑에 있다. 종교와 도덕은 민족의 영혼이며, 지식은 그 두뇌이자 그 몸이며 정치 상황은 단지 의복일 뿐이다. 따라서 생활방식을 개혁하고 개신교 윤리로 회개하는 것이야 말로 사회변혁의 유일한 기초라는 것이다. 그리고 복음의 선포는 민족부흥의 시작과 끝이라는 것이다.
일본 제국의 식민지적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윤리적 자아개조가 필수적이며, 만일 이를 수행하지 못하면 일본 제국에서 벗어나더라도 다시 외세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이라고 웰즈는 설명한다.
개신교 민족주의자들은 한국인들이 일제의 식민지가 된 것은 도덕과 정신의 타락 때문이라고 여기면서 현재 식민지적 상황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고 이해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시적인 정치적인 저항보다는 장기적으로 윤리적 자아개조에 힘을 기울이는 것만이 독립 국가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이러한 윤리적 자아개조를 실천하기 위해 개신교 민족주의자들은 1920, 1930년대 흥업구락부, 동우회 등을 통해 문화운동을 전개하였다.
정치적인 저항을 하기 위해 신간회에 참여하기도 하였으나, 역시 중요한 것은 한민족이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한 윤리적인 자아개조를 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외세의 식민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곧 민족과 국가를 분리해서 사고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전개했던 윤리적인 자아개조 민족주의는 해방 이후 남북한에서 자급, 자족, 자립의 형태로 계승 발전했다는 것이 웰즈의 주장이다.         
둘째, 경제적 자아개조 민족주의는 윤리적 자아개조 민족주의를 가시적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주장한다. 1890년대 이래로 서재필과 윤치호에 의해 제의된 청지기직의 경제학이 1920년대 조선물산장려회의 조직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청지기는 경제적인 용어로 자족을 의미하는 것이며 가까운 미래에 일본을 전복하거나 자본주의를 파괴하려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들은 한국의 상황에서 불가능한 것은 경제적인 활동이 아니라 정치적인 활동이라고 주장하며 산업의 기술정보와 물질적인 기반 획득 없이는 정치란 소득도 없으며 모리배들의 집합소라는 것이다.
웰즈는 1920, 1930년대 개신교 민족주의자들이 전개했던 운동은 국가보다는 민족을 우선시한 운동이었던 것으로, 해방 이후 북한과 남한 민족주의의 모태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결국 웰즈의 주장은 현재 남한사회의 민족주의를 개신교 수용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웰즈의 민족주의 논쟁에 대한 기여와 한계
오늘날 일제말기 친일파로 지목된 인물들은 대부분 개신교 민족주의자들이다. 이러한 까닭에 이들의 실력양성을 위한 민족주의는 일제 당국과 타협할 수밖에 없었으며, 결국 일제말기에는 친일로 갈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더 이상 논의가 진전되고 있지 않다. 따라서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한 실패한 역사이므로 민족주의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그동안의 지배적인 시각이었다.
그런데 앞서 살펴본 대로 웰즈의 주장은 이러한 견해들을 모두 비판하고 있다. 이들은 정치적인 활동이 불가능한 국내라는 상황에서 가능한 일을 모색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국가주의의 아닌 철저한 민족주의자였다는 것이 웰즈의 설명이다.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한국인들이 철저한 자기 개조 민족주의자가 되지 않는 한 일본에서 벗어나더라도 또 다시 다른 외세의 억압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실천했던 개신교 민족주의자들에 대해 제대로 평가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또한 개신교 민족주의자들이 전개했던 경제적 민족주의는 1960년대 이후 북한에서 주장했던 자족, 남한에서는 새마을운동 등으로 계승 발전되었다고 웰즈는 설명한다. 그는 1960년대 이후 경제적인 발전은 일제강점기 공업화 정책에서 그 기원을 설명하고 있는 식민지근대화론에 대해서도 이와 같이 비판하고 있다. 일제의 공업화정책이 아니라 자아개조민족주의자들이 전개했던 경제적 민족주의에서 그 연원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동안 경제사적인 관점에서 식민지수탈론, 식민지근대화론 등이 지배적인 시각이었다. 식민지 수탈론에서 근대화론을 비판하는 것은 주체, 민족, 국가 등이 빠져 있다는 것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에서는 일제의 전시공업화정책으로 일정 정도 한국 경제에 근대화를 가져왔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이 두 관점 모두 당시의 민족주의자들이 전개했던 운동에 대해서는 간과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웰즈의 주장은 일제강점기 민족주의자들의 이념, 활동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심층적인 평가를 유도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웰즈의 주장에 대해 아쉬운 점은 시기적인 문제, 일제말기 친일행위를 하지 않았던 개신교 민족주의자들에 대한 철저한 분석, 해외에서 활동한 개신교 민족주의자들과의 비교 등이다.
왜 그가 1937년까지만 분석 대상으로 삼았을까 하는 부분이 제대로 설명되어 있지 않다. 또 한 가지는 일제말기 친일행위를 하지 않았던 개신교 민족주의자들도 존재하였다. 이들에 대해서도 좀 더 조사, 분석을 했더라면 그의 주장이 보다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해외에서 활동했던 개신교 민족주의자들도 함께 고려되었더라면 그의 주장은 보다 더 풍성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윤정란 / 숭실대·한국근대사


   
필자는 숭실대에서 ‘일제시대 한국 기독교 여성운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전쟁과 기억 - 마을공동체의 생애사-> <19세기말 서양선교사와 한국사회> <한국 기독교 여성운동의 역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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