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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소통하려면 사유와 실천규범 이해 선행돼야
중국과 소통하려면 사유와 실천규범 이해 선행돼야
  • 윤대식 / 충남대·동양정치사상
  • 승인 2007.07.02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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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고대 중국의 사상문화와 법치철학> 김예호 지음 | 한국학술정보 | 2007

먼저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하려고 한다. ‘동양’ 또는 ‘동아시아’, ‘전통’, ‘인문학’과 같은 단어에 대한 일반의 무관심과 경멸에도 불구하고, 유독 중국과 관련된 일은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왜 이렇게 한 목소리로 강조하는 것일까? 특히 중국의 경제적 역동성과 발전은 이미 무시할 수 없는 정도를 넘어서 국제질서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도로 성장했으며, 이로 인해서 정치적·군사적 위상도 커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그런데 모두가 세계 및 동아시아 질서에서 중국의 패권을 걱정한다면, 중국을 이해하고 상대할 수 있는 방어와 공격의 수단을 개발하는 일은 ‘동양’이나 ‘전통’ 혹은 ‘인문학’적 성찰과 전혀 무관한 것일까? 만약 무관하다고 판단한다면, 어떻게 중국과 관계를 맺어 소통할 수 있는 것일까? 더욱이 중국과의 긴밀한 협력과 소통이 우리의 생존에 도움이 된다면, 그럴수록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는 원형적인 사유와 실천규범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고대 중국의 사상문화와 법치철학〉의 일독을 권한다.

필자는 이 책에서 선진법가의 철학체계를 범주별로 분류하고, 고대동양의 ‘사상문화’를 구성하는 한 부분으로서 법가를 상기시킨다. 필자의 문제의식은 동양사상 이해에서 관성적으로 유가와 도가만을 떠올리거나, 지배적인 교의로서 유가에 의해 폄하되거나 재단되었던 법가로만 받아들이는 편견에 대한 충고이기도 하다. 이로 인해 필자는 법가철학이 단순히 법 만능주의로 경도된 편협한 논리가 아닌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의 다양한 논리와 교합착종한 완정된 사유로 그 이해를 바로잡으려고 시도한다. 필자는 그 작업을 위해서 법가철학에 내재한 우주론으로부터 윤리론을 거쳐 정치철학으로 귀결되는 일관된 흐름을 밝히고 있다.

필자는 한비자의 자연론으로부터 논의를 출발한다(1장 자연론). 그것은 한비자의 법치철학, 더 나아가 선진법가의 법치주의를 위한 인식론적 기반이다. 즉 한비자에게 명료하게 드러나듯이, 법가는 도가의 ‘도’(道) 개념을 수용하여 자연의 원리로서 ‘도’ 개념을 사회변화와 발전을 담보하는 법칙으로 전환(因道全法)시켰다(17-18쪽, 65쪽). 그것은 ‘세계질서의 보편성’에 대한 확신과 변법의 당위성을 보장하는 전제이기도 하다(15쪽). 자연질서의 ‘도’를 사회질서의 ‘법’으로 전환함으로써 선진법가의 ‘법’ 개념에서 악법은 존재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한비자는 총체적 본질로서 ‘도’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무위’를 제기한다(31~33쪽). 그것은 한비자가 기대한 법치의 최종상태야말로 ‘객관적 원리로서 법에 순응’한 결과 ‘지배 없는 질서’와 마찬가지의 정치적 효율성을 지향하는 것(78~80쪽)이었음을 예단하게 한다.

그렇다면 법치실행의 관건은 인간에게 달려 있다(4장 윤리론). 선진법가의 인성론은 현실인간에 대한 경험과 관찰에 기초한다. 한비자 역시 현실인간의 행태로부터 인성을 이기적 인 것으로 규정하고 가치판단을 유보한다(227쪽). 따라서 한비자는 통치란 인간의 이기성을 충족시키고 기대하는 이익을 교환해주는 사회정치적 조건의 마련으로 인식한다(229쪽). 한비자의 과제는 ‘과연 이기적인 인간을 법치에 순응하도록 어떻게 유도할 것인가’이다. 그 해답은 인간의 이기성을 합리성으로 전환시킬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한비자는 인간관계의 핵심을 이익의 상호보장에 있으며(233쪽), 공정 무사한 법이야말로 이익을 상호 보장하는 윤리적 규준이라고 판단한다(236쪽). 이로부터 한비자는 법치를 이익의 상호보장을 의무로 인지시키고 이행토록 유도하는 통치기제로 파악하며, 이기적인 현실인간을 합리적 선택의 주체로 상정할 수 있었다(248~249쪽).

가장 주목할 부분은 정치철학으로서 법가철학을 웅변하는〈5장 변법론〉,〈6장 농전론〉,〈7장 법치론〉이다. 왜냐하면 이 책의 구성상 2/5에 불과하지만, 변법(變法)에 의한 개혁의 역사적 당위성과 부국강병을 위한 농전(農戰)의 정책에서 법가철학의 실천양상이 구체화되며, 궁극적으로 그들의 정치적 이상상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선〈5장 변법론〉에서 필자는 변법과 복례(復禮)의 사상적 대립구도를 통해 춘추전국에 이르러 심화된 정치적·경제적·군사적 갈등을 설명한다(269~270쪽). 그것은 춘추전국을 무질서와 혼란으로 전제할 경우, 어떻게 이것을 돌파할 것인지에 대한 방법론의 차이이며 동시에 유법논쟁으로 대표되는 선진사상의 특징이기도 하다. 이로부터 필자는 ‘변화’의 개념이 법가철학의 핵심이고(277쪽), 그 정치 실천력으로 법치의 구현을 지적한다(283쪽). 또한 필자는 상앙으로부터 한비자로 계승된 법가의 변법론이 사회상황의 변화를 반영한 제도의 개혁뿐 아니라 인간의식 및 사회질서 전반에 대한 개혁을 포괄하는 정치교의라고 평가한다(286쪽). 그렇기 때문에 상앙과 한비자는 역사란 항상 변화하고, 변화에 상응하는 방법론을 채택해야 하기에 법치야말로 새로운 역사단계에 진입하기 위한 필연적인 것이라고 규정한다. 선진법가에게 법은 보편적 질서원리로서 도(道)일 수밖에 없으며, 새로운 역사단계로 변화하는 내용과 형식인 셈이다(297쪽).

그렇다면 법치의 이상상을 구현하는 구체적인 정책은 무엇일까? 그것은 농전이다(6장 농전론). 필자는 유가의 의전론, 도가의 부쟁론, 묵가의 비공론, 병가의 주전론 등 제자의 전쟁론을 소개하고 법가의 전쟁관을 강국을 위한 농전론으로 구별한다. 특히 필자는 춘추전국의 급격한 경제적·사회적 변화에 따라 신·구세력의 갈등이 분출된 정치적 실천형식으로 전쟁을 파악하기에 법가의 농전론 역시 시대적 요구에 대한 합리적 선택이었음을 지적한다. 즉 법을 확립해서 국가내부의 문제를 해결하고 이를 기초로 물적 토대를 구축함으로써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최선이다(347쪽). 이로 인해 ‘전쟁으로 전쟁을 제거’하려는 정치 실천원칙으로서 상앙의 농전론은 종법적 질서의 토대인 정전제를 와해시키고 정치적·군사적 영역에서 법치철학을 확대하는 결정적 계기로 작동했기에 치국의 강령으로 인식되었다는 것이다(351~352쪽). 한비자의 전쟁관 역시 상앙을 계승한다. 즉 이기적인 현실인간과 정치적 혼란이라는 상황에서 부국강병이라는 과제를 성취하기 위해서 법치를 선택하는 것은 ‘이익의 상호보장’이라는 합리적 선택이다. 이 점에서 필자는 한비자에 이르러 상앙의 농전론이 갖는 이론적 절대성이 확증되었다고 분석한다(359쪽). 그것은 ‘법으로 전쟁상태를 제어’하는 것이다(364쪽).

만약 법가의 농전론이 경제와 전쟁간 관계를 연계시킨 것이고 실천방법으로 제시되었다면, 그 최종적인 이상상을 보여주는 것은 법치론일 것이다(7장 법치론). 필자는 고대 중국에서 법치론의 대두를 자산·관중·이회에 이르는 경로로 설명하고, 상앙에 의해서 체계화되었음을 지적한다. 이로부터 필자는 상앙 법치론이 ‘백성에 대한 사랑’에 기인하며, 법에 의해 일원화된 정치라고 규정한다(381~382쪽). 따라서 필자는 상앙 법치론에 대한 엄형주의 또는 군주의 권력 강화를 위한 독재적인 정치론이라는 기존 비판을 거부하고, 군주조차 법에 구속됨으로써 백성의 신뢰를 근거로 하는 정치라고 평가한다(387~388쪽). 한편 곽말약(郭沫若)이 지적하듯이 상앙을 순수법가로 규정할 수 있다면, 한비자의 법치론은 필자의 평가대로 상앙의 법치론에서 간과된 통치술까지 통일적으로 결합했다는 특징을 지닌다. 법치는 공정무사한 법에 의해 시행되기에 군주를 구속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법치로 인해서 무능한 군주일지라도 자신의 정치권위를 보존할 수도 있다(391쪽). 왜냐하면 법치는 군주의 주관적 의지나 사적이익의 개입을 최대한 억제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한비자의 군주관이 존군(尊君)을 넘어 독존으로 전개된 이유를 설명한다(396~398쪽). 즉 법에 의한 지배는 어떻게 법에 의해 형성된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며, 이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과 위협을 제거하려는 군주의 통치술로서 한비자의 술·세론(術·勢論)이 제기되었던 것이다(404쪽, 412쪽). 한비자는 술치와 세치를 부가함으로써 법치를 위협하는 기득권층을 억제하고, 법·세·술의 통일에 의한 통치야말로 ‘무위의 정치’라는 최종목표를 성취한다고 예단했던 것이다(425~426쪽).

평자는 필자와 마찬가지로 동아시아의 원형적 사유체계에서 합리주의의 완성을 찾을 수 있다는 자부심과 함께 그 합리성의 계승과 발견이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는 아쉬움을 공유한다. 더 나아가 필자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다. 그것은 정치철학으로서 선진 법가철학을 부각시켜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즉 필자는 법가의 등장과 법가철학의 핵심인 변법론, 농전론, 법치론의 배경으로 계급간 대립과 갈등의 심화를 거론하고, 법가출현을 경제적 토대의 변화에 따른 정치적·법률적 상부구조의 대응으로 설명했다. 평자가 보기에 이러한 접근방식은 유물변증법적 시각과 분석 틀에 기초한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법가철학에 내재한 ‘변화’의 개념은 이미 필자도 거론했듯이, 중국철학의 원형적인 사유체계에 내재한 것이며, 더욱이 춘추전국시대를 생산양식의 변화로 볼 수는 없다고 판단된다. 사실상 법가철학에 대한 재조명이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이르러 중국의 지식인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고, 그들의 문제의식이 외부충격에 따른 자기반성과 대항논리 계발에 기인했다는 점, 이후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정치권위의 성화(聖化)와 복종을 요구했던 국가주의의 폐해야말로 법가철학의 본지를 왜곡시켰던 대표적인 사례이다. 따라서 필자도 지적하듯이 춘추전국시대는 다양하고 풍부했던 사유의 시대였기에 이를 조망하고 설명하는 방식 역시 유연성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윤대식 / 충남대·동양정치사상
필자는 한국외대에서 ‘맹자의 정치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민세 안재홍 심층 연구>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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