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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르 외젠 들라크루아 vs 에드가 드가
빅토르 외젠 들라크루아 vs 에드가 드가
  • 박희숙 / 서양화가·시인
  • 승인 2007.06.25 14: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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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미술 인물 ‘극과 극’] ‘여인에 대한 사랑’

끊임없는 여성편력 담은 ‘외설일기’집필

역사상 가장 야한 일기 <외설일기>를 남긴 낭만주의 화가 빅토르 외젠 들라크루아(1798~1863)는 뛰어난 문필가였다. 일기나 편지 쓰기를 즐겨한 들라크루아는 고전주의의 전통을 혐오하고 격렬한 필치로 그려진 루벤스의 그림을 좋아했다.
기성세대에 반항한 혁명가적 기질이 많았던 들라크루아는 여인을 사랑할 때도 도덕과 관습에 때문에 사랑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는 사랑할 때는 격정적으로, 사랑이 끝난 후에는 미련이 없었다.
들라크루아는 일찍이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었지만 많은 친척들의 도움으로 사교계의 진출은 쉽게 이루어진다. 우아하고 섬세하면서도 남성미가 흐르는 수려한 외모, 세련된 매너로 사교계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그의 외모에 반한 여인들은 부나비처럼 그를 향해 몰려들었다.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면 시인이 되고 싶어 했을 정도로 글 솜씨가 뛰어난 그는 여인들의 사랑을 목말라하는 젊은 날의 열정을 일기로 남기기 시작한다.
남동생의 하녀를 유혹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 <외설일기>는 여인들에 대한 기다림과 사랑에 대해 준비하는 자세 그리고 육체의 쾌락을 집필한다. 여인들처럼 들라크루아를 자극하고 감미로움을 주는 존재는 없었다.
이 지상에서 가장 행복해지를 바라는 그의 정렬은 직업여성들과 모델들과 그리고 하녀들로 끊임없이 이어진다. 그의 애정행각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친구의 정부였던 여인을 사랑하기도 했던 그는 어떤 관계가 되었든지 사랑을 우선시했다.
들루크루아의 여인에 대한 탐욕은 거기서 머물지 않는다. 친구였지만 유부녀인 폴린비요와 사랑은 단순한 육체적 쾌락의 차원을 넘어서 정신적 교류의 만남이었다. 그녀는 루브르 박물관의 직원으로서 미적 감각이 뛰어난 여자였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완벽했던 두 사람의 사랑이었지만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그의 육체적 쾌락을 넘어선 정신적인 욕구는 조르주 상드와의 사랑을 우정의 관계로까지 발전시키게 된다.
한편 들라크루아는 사랑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정신적 괴로움을 겪는다. 내부에서 솟아오르는 자연스러운 감정은 그에게 사랑의 기쁨과 고통을 심어 놓는다. 여인들에 대한 불만과 만족이 계속되면서 점점 사랑에 대해 냉소적으로 변하지만 그래도 들라크루아는 사랑에 빠져들곤 했다.
들라크루아는 ‘사랑을 이기려면 사랑을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라고 한 소크라테스의 격언을 자기 것을 받아들이고 싶었지만 실제로 그러지 못했다. 조르주 상드와의 관계가 끝나고 들라크루아는 남편과 헤어진 상태였던 여인 조세핀을 만난다.
그녀와는 오랫동안 관계가 지속된다. 그들의 연인 관계는 30여 년 동안 계속되어진다. 비록 두 사람은 같이 살지는 않았지만 부부처럼 살았다. 들라크루아는 조세핀과 부부처럼 지내면서도 다른 여인들과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한 사람에게 만족을 하지 못했다. 자신의 영혼의 갈증을 풀기 위해서는 여인들의 사랑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질투와 애증의 관계를 뛰어 넘어 우정의 관계까지 갔던 조세핀도 그의 곁은 지켰지만 들라크루아와 가장 가까웠던 여인은 가정부였던 제니 르 기유일 것이다. 모델로 그리고 정부로 들라크루아의 욕구에 의해 신분이 바뀐 그녀는 곁에서 그 사랑의 모든 것을 지켜보면서도 자신의 사랑에 순종할 수밖에 없었던 여인이다. 
여인들을 사랑했던 들라크루아는 죽기 오래 전부터 정렬의 허망함을 느껴 여인들을 멀리하면서 홀로 있는 시간을 즐긴다.

누드 그렸지만 유혹 멀리한 금욕주의자

사랑은 자신을 속박하는 굴레라고 생각했던 인상파 화가 에드가 드가<1834~1917>는 아이러니컬하게 발레리나를 비롯해 사창가의 여자들을 주제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누드화로 유명한 드가는 금욕주의자 독식주의자였다. 그렇다고 드가가 동성애자는 아니었다. 당시 오스카 와일드를 만났을 때에도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감을 대놓고 드러낼 정도로 극히 싫어했다.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던 드가는 어떤 여자의 유혹에도 자극을 받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당시 육감적인 몸매와 애교가 많아 화가들이 모델로 앞 다투어 기용했던 유명한 쉬잔 발라동조차 그를 유혹하지 못했다. 난잡한 파티를 즐겼던 그녀는 아름다운 외모만큼 성적 매력이 넘쳐 흘렀던 여자다. 그녀가 유일하게 성적으로 자극하지 못한 남자가 드가다. 마네는 드가에 대해 ‘여자를 사랑할 수도, 여자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도 없는 친구’라고 했다.
하지만 드가는 흑인 여자를 아주 좋아했다. 그는 1873년 뉴올리언즈를 방문했을 때 “검은 피부의 흑인여자처럼 좋은 것은 없다. 순수한 흑인이나 혼혈이나 흑인 여자 모두 다 아름답다”고 했을 정도다. 그러나 드가는 흑인 여자를 좋아했지만 그녀들과 섹스는 하지 않았다. 그는 좋아하는 여자의 취향과 섹스는 별개라고 생각했다.
드가가 22살에 여자와 성적인 접촉이 있었지만 그 경험이 그를 섹스 기피자로 만들었다. 1856년에 쓴 일기에 자신의 심정을 드러냈다.
“4월 7일 섹스를 하는 걸 거부할 수는 없었다. 그……무방비의 소녀라니 어찌나 수치스럽던지, 앞으로 난 가능한 한 그 짓은 안 할 거다.” 드가는 앞으로 섹스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썼다.
하지만 드가는 일기에만 그렇게 쓴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섹스를 하지 않았다. 그는 여자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외모의 소유자도 아니었다. 드가는 사창가 여자들을 즐겨 그렸기 때문에 여자들과 함께 있을 기회는 많았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사창가의 여자들은 물론 세탁부, 웨이트리스 등의 직업을 가진 하층 계급의 여자들은 모두 아르바이트로 매춘을 하고 있었던 상황이기 때문에 섹스 상대를 구하기는 쉬웠다.
드가도 카페나 식당에 가는 것처럼 사창가에 자주 들러 그녀들을 모델로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드가는 그녀들을 동물 다루듯이 다루었다.
드가는 목욕하는 여성들의 누드나 화장실에 걸터앉아 있는 여자들을 즐겨 그렸는데 그는 작품을 위해 전문 모델들도 놀랄 정도로 충격적인 포즈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드가가 여성들의 추악한 모습을 남긴 것은 아니다. 그의 그림 속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아름다운 모습이다. 한 번도 여자와 동거조차 한 적이 없는 드가는 여체의 관능적인 누드를 즐겨 그리면서도 관능성보다는 여체의 진실을 화폭에 담아냈다. 

박희숙 / 서양화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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