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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밀한 욕망, 은밀한 지배의 메커니즘
내밀한 욕망, 은밀한 지배의 메커니즘
  • 김주리 / 동덕여대·국문학
  • 승인 2007.06.18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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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한국 근대소설과 섹슈얼리티의 서사학> 이혜령 지음 | 소명출판 | 2007

민족과 계급, 지배와 저항, 도시와 농촌,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등의 경색된 틀을 넘어 식민지 시기 한국소설을 ‘일상’의 미시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시도가 최근 문학연구의 한 경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질병과 히스테리, 여성과 아동, 취미, 유행과 소비문화, 연애, 매춘, 여행 등 다양한 측면에서 소설을 다시 읽는 시도는 식민지의 일상과 식민지인의 육체를 면밀하게 검토하여 식민지 근대성의 정체를 재구하며, 이를 통해 정형화된 문학사적 틀을 깨뜨리고 새로이 텍스트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려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이혜령의 <한국 근대소설과 섹슈얼리티의 서사학>은 1920년대 동인지문학부터 1940년대 초 김동리 소설에 이르기까지 20여년의 문학사를 추적하면서, 섹슈얼리티라는 사적이고 내밀한 욕망의 측면에서 근대적 자아가 형성, 전개되는 과정을 밝히고 있다.
먼저 1920년대 동인지 문학(<마음이 여튼 자여>, <환희>)은 낭만적 사랑과 여성에 대한 이상화를 통해 예술의 절대화를 추구하고 도덕적 주체로서 근대적 자아를 확립하려는 시도로, 섹슈얼리티의 서사화라는 측면에서 볼 때 소설의 형식적 완성도는 미흡하다고 평가된다. 반면 동인지 문학 해체 이후 씌어지는, 하층민 요부형 여성이 등장하는 소설들(<감자>, <뽕>)은 성의 권력구조가 텍스트의 서사구조로 차용됨으로써 이전의 감상성과 관념성을 탈피하고 형식적 완성도를 보여준다고 본다. 애욕을 표출하는 하층민 여성을 타자의 표상으로 제시함으로써 도덕적 주체로 정립되는 근대적 자아는 1930년대 장편소설(<흙>, <제2의 운명>)에서 계몽과 사회운동에 매진하는 지식인상으로 구체화된다.
이들 소설에서는 여성을 처녀성과 모성으로 구속하고, 정신과 도덕의 우위에서 물질적 결핍에 따른 열패감과 소외를 보상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러한 도덕(정신)과 물질(육체)의 균열은 총체적인 자아상의 균열이기에, 1930년대 후반 소설(<지주회시>, <심문>)에서 성욕은 더 이상 근대적 자아의 도덕적 우월성을 확보하는 거점이 되지 못한다.
김유정과 이효석의 소설은 이러한 근대적 자아의 위기와 분열을 보상하는 미적 구성물로, 야성적인 하층민(토속적 인간형)의 제어되지 않은 성욕을 그리고 있다. 끝으로 필자는 한국 근대소설에 나타난 섹슈얼리티의 서사는 식민주의를 구조적으로 내면화하는 양상을 보여준다고 평가한다. 식민지배자가 규정한 피식민지인의 성격이 여성과 하층민에게 투영됨으로써, 한국근대소설 속 근대적 자아의 형성은 식민주의가 부과한 담론의 내면화와 연결된다는 것이다.
이상과 같은 필자의 논의는 식민지배와 계급적, 성적 지배를 등가에 놓으면서, 내밀한 욕망의 차원에까지 지배와 피지배의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가운데 근대적 자아가 형성되고 있음을 밝히고 있어 흥미롭다.
하지만 논의 과정에서 무엇을 근대적 자아라고 간주하는지가 분명치 않으며, 텍스트 해석에서 지나친 유형화, 단순화를 보여주기도 한다. 논의 과정에서 ‘근대적 자아’는 남성 지식인 작가 일반을 의미하는 듯한데, 말하고 쓰는 남성 주체만이 근대적 자아인가? 1920년대 동인지 소설, 하층민 요부형 소설, 1930년대 장편소설과 모더니즘 소설, 서정 소설 등을 통괄하면서 필자는 근대적 자아라는 용어를 사실 일관되게 사용하지 않는다. 어떤 경우는 작중 인물(주인공)을 근대적 자아라고 보는가 하면, 어떤 경우는 인물을 타자화해 그리는 작가를 근대적 자아라고 간주한다.
또한 섹슈얼리티의 서사를 몇 가지 범주로 유형화하면서 여러 소설들이 가진 의미차를 제시하지 못하고 논의에 맞는 몇몇 작품으로 당대의 다양한 흐름을 재단하는 모습도 보인다. 가령 필자가 1930년대 후반 이효석이나 김유정, 김동리의 소설을, 제어되지 않은 하층민의 욕망을 그림으로써 식민지배자의 ‘야만’ 논리를 답습한다고 평가하는 것은 그들 소설 속 하층민의 삶과 섹슈얼리티의 생산적인 의미를 오히려 해치는 것이 아닐까. 무엇보다 야취와 야성이 야만과 동일한 것인지 의문이다. (낭만적인) 야취로 그려지는 이효석 소설 속 성애와, 가부장적 지배 구도를 역전시키는 김유정 소설 속 성애(들병이)를 동일한 것으로 보아야 하며, 그들 소설 속 야취와 야성이 식민지배자의 시선이 투영된 야만으로 그려진 것이라고 보아야 하는가.
다소 거친 도식화의 한계를 내포하고는 있으나 이 책이 식민지 시대 근대 소설을 바라보는 새롭고 흥미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김주리 / 동덕여대·국문학

필자는  서울대에서 ‘한국근대소설에 나타난 신체담론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저서로 <모던걸, 여우 목도리를 버려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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