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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비평가도 빠져든 ‘피카소 예술의 위대함’
뛰어난 비평가도 빠져든 ‘피카소 예술의 위대함’
  • 교수신문
  • 승인 2007.06.18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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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_<앙드레 말로, 피카소를 말하다> 앙드레 말로 지음 | 박정자 옮김 | 기파랑 | 2007

프랑스 문화정책을 말하자면 앙드레 말로(Andr Malraux, 1901~1976)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프랑스 제5공화국이 창설한 문화부의 초대 장관으로 10년간 재직한 말로는 ‘문화지구보존법’, ‘문화의 집’과 같은 사업들을 통해 현대 프랑스 문화의 기틀을 닦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하지만 그는 문화행정가로만 불리지는 않는다. 그는 혁명가이자 참여지식인이었으며 소설가였다. 1920년대 인도차이나의 민족주의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중국의 국민당 정부에도 깊이 관여했다. 또한 그는 공화주의의 열렬한 지지자로서 1930년대 스페인의 내전에도 참여하고 당대의 지식인들과 함께 반파시즘 전선을 형성하기도 했다.

앙드레 말로, 현대 프랑스 문화적 기틀 마련
그의 그러한 경험들은 <인간조건>(1933), <희망>(1937)과 같은 소설들을 통해 극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런 그에게 프랑스 정부는 지난 1996년에 프랑스의 위대한 인물이라는 호칭을 부여하고 그를 국립묘지 ‘빵떼옹’(Panthon)에 안장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말로의 진면목의 전체적 윤곽이 모두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뛰어난 예술사가이자 미술 비평가였음을 밝혀야 하겠다. 1974년에 출간된 <앙드레 말로, 피카소를 말하다>(원제: La Tte d’obsidienne[흑요석의 머리])는 미술 비평에 대한  말로의 탁월한 재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저술이다.
책의 제목이 말해주고 있듯이 말로는 자신의 입을 통해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의 예술적 위대함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책을 읽다보면 피카소의 미술을 매개로 동서양의 미술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고 있는 말로의 예술적 지식의 넓이와 깊이가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
역자가 토로하고 있듯이 말로는 그런 만큼, 결코 평이한 단어와 문장을 통해 피카소를 보여주고 있지 않다. 번역 과정에서 역자가 겪었을 고통이 여기저기에서 느껴진다.
20세기 회화를 대표하는 인물로서 피카소에 대해 역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전 세계의 남녀노소, 미술에 대한 소양 유무를 가릴 것 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피카소는 완전히 화가의 대명사이다. 6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대중적인 명성과 미학적인 성취를 동시에 이룬 화가는 역사상 전무후무 할 것이다”(25쪽). 물론, 에프라힘 키숀(Ephraim Kishon)과 같은 예술비평가들이 피카소에 대한 그러한 평가에 반기를 들겠지만 키숀과 같은 생각은 오히려 주변적인 위치로 밀려날 듯 싶다(<피카소의 달콤한 복수>(마음산책)를 참조하라).

피카소 부인 자클린과의 대화
피카소의 어떠한 예술적 능력이 그러한 성취를 가능케 했을까? 말로가 말하는 피카소의 이야기 속에 그 답이 있다. 말로는 피카소가 사망한 뒤 그의 부인 자클린으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피카소가 말년을 보낸 프랑스의 무쟁이란 도시로부터이다.
이야기는 말로가 자클린을 만나 피카소의 그림들을 넘겨가면서 피카소의 삶과 미술에 관해 대화하는 상황에서 시작된다. 말로는 피카소와 나눈 대화들을 통해 그리고 마그 재단에서 열린 ‘상상미술관’ 기획전 연설을 통해 피카소의 예술세계를 흥미진진하게 보여주고 있다.
말로에게서 피카소는 바로크 시대 화가 렘브란트(Rembrant, 1606~1669)에 비견된다. 렘브란트가 누구인가? 예술 속에서 근대성을 탐구하고자 했던 독일의 사회학자 짐멜은 렘브란트를 근대적 인간을 가장 적확하게 표현하는 예술형식을 구사한 인물로 평하고 있다.
근대적 인간? 렘브란트의 회화 속에서는 ‘주체성’과 ‘개별성’을 동시에 끌어안아야 하는 근대인의 긴장과 슬픔이 그려져 있다. 말로는 렘브란트의 그림을 일종의 모험으로 평가했다. 빛과 그림자의 강렬한 대비와 세밀한 인물 표정의 묘사를 바탕으로 하는 렘브란트의 회화형식이 모험인 이유는 그것이 기존의 회화에 대한 근본적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그림 속에서 인물과 사건은 재현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들은 오히려 그림 속에서 해체와 소멸의 운명에 처해 있다. 이 운명은 그림을 그린 렘브란트도 집어 삼키려 한다. 그런 점에서 렘브란트의 그림은 당대의 회화에 대한 부정인 것이다.
그렇다면 피카소의 경우는? 말로는 말한다. 렘브란트가 그러했듯이 피카소 역시 “우리의 회화에서 빠져나가고 있다”고.(137쪽) 말로는 하나의 에피소드를 끌어들인다. ‘새와 고양이’ 그림 앞에 선 피카소.
“고양이는 새를 먹고, 피카소는 고양이를 먹고, 그림은 피카소를 먹는 것이오…, 그림은 다빈치를 갉아먹었고, 흑인 조각은 흑인들을 먹었소. 똑같은 것이오. 다만 그들은 그 사실을 몰랐을 뿐이지. 결국에 가서 이기는 것은 그림이오.”(147쪽) 말로는 이를 그림에 대한 “반정의”(反定義)로 불렀다.
그림이란 무엇인가? 전통적인 관념 속에서 그림은 대상의 시각적 재현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라면 대상과 그림 중에 우위에 서는 것은 대상이다. 그림은 오로지 대상의 외양 또는 본질을 화폭에 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미술이 제공하는 미와 예술성은 바로 시각적 재현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피카소, 미와 예술성의 개념 부정
하지만 피카소는 이러한 예술관과 미의 관념을 철저히 부정했다. 그런 연유로 피카소는 예술과 미라는 개념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또한 선사시대의 조각가들을 언급하면서 그들을 “예술적 미술가”의 범주에 포함시키려 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 생각대로 미술의 욕구를 표출한 존재들이었다. “미가 수세기 동안 예술가들에게 비슷한 역할을 했다”(147쪽)는 말로의 말에 피카소의 기분이 상했던 상황 역시 그것과 무관하지 않았던 것이다.
전통적인 재현의 방식과 철저히 거리를 두는 그의 회화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위치를 바꾸는 거요. 다리에다 눈을 붙이고. 말도 안 되게 하기도 하고. 하나는 정면의, 하나는 프로필의 눈을 만드는 것…그러나 화가들은 사람들을 즐겁게 만드는 그림만 그리려 하죠! 좋은 그림, 그건 무엇일까? 그림은 면도날이 삐쭉삐쭉 서 있어야 해.”(197쪽) 마네의 ‘올랭피아’가 위대한 것은 회화는 사물을 정확하게 재현해야 한다는 당대의 생각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었기 때문이지만 그러한 흔들기는 피카소에서 한층 더 급진적으로 실천되었다.
사물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면 화가는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반 고흐에 관한 대화 속에서 피카소는 예술가의 창조하는 힘을 역설했다. 신이 없어도 살 수 있다는 반 고흐에게서 박탈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창조의 욕구였던 것이다. “화가는 자기가 느끼는 것을 창조해야 해. 쿠이다도. 느낀다, 느낀다, 말은 흔히들 하지.
그러나 그것은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이 아니야. 해석을 한다는 것은 더더욱 아니고.”(195쪽) 그리하여 그는 화가에게 사물들을 그림 속으로 끌어들여 그것들을 파괴할 것을 주문한다. 사물의 새로운 삶은 그러한 파괴를 통해 출현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피카소 미술이 갖는 또 하나의 힘은 변신이다. 이 때 말하는 변신이란 양식의 거부다. 피카소는 화가 최대의 적을 양식에서 찾았다.
많은 사람들이 피카소의 대표적인 그림으로 ‘아비뇽의 처녀들’을 들곤 한다.
그것은 현대 회화의 시금석으로 또는 새로운 시각문법을 구축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모니카 봄 두첸. <세계명화 비밀> 생각의 나무(2002)를 참조하라).

대표작 ‘아비뇽의 처녀들’의 의미
하지만 말로에 따르면 ‘아비뇽의 처녀들’이 갖는 중요성은 피카소가 그 그림을 기점으로 특정한 회화양식을 거부하고 이른바 “유랑민적 예술의 편력”(346쪽)을 끊임없이 실천했다는 데 있다. 즉, ‘아비뇽의 처녀들’은 피카소의 예술적 변신을 위한 에너지의 원천이었던 것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 책의 원제목은 <흑요석의 머리>다. 말로는 멕시코 국립박물관에서 흑요석에 조각된 머리를 발견했다. 그는 사유한다. 흑요석의 머리는 죽음을 상징한다. 따라서 그 머리는 신에 의해 창조된 모든 것들은 무로 돌아갈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바로, 그 지점에서 흑요석의 머리가 변신을 요구하고 있다. 예술적 변신을 통해 죽음과 무로부터 벗어날 것을 요청하고 있지 않는가. “죽음의 어둠침침한 빛이 창조적 작업의 주술을 비춰주고, 그 양식을 방자의 바늘과 같아지게 한다. 무와 경쟁하기 위해 예술은 운명과 어떻게 경쟁하는지를 우선 보여준다. 인간에게 의존성의 가장 깊은 감정을 안겨주는 상징인 죽음의 기호는 그 상징을 새길 수 있는 발톱이 동시에 얼마만큼 우주와 미지자를 또한 새겨주는지를 우리에게 가르쳐준다.”(353쪽)

하상복 / 목포대·정치외교학


필자는 파리9대에서 ‘한국의 정치변동과 문제의 동학(1979-1992)’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부르디외&기든스(세계화의 두 얼굴)>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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