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10:45 (금)
“그저 자신이 사랑하는 형식을 나누는…”
“그저 자신이 사랑하는 형식을 나누는…”
  • 박상주 기자
  • 승인 2007.06.04 13: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초점]데보라 조윗 뉴욕대 교수의 ‘무용 비평론’

실시간으로 움직이고 변화하며 다양한 감정의 기복을 지닌 춤을 말로 기록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처럼 보이고 싶은 허망한 욕망이다. 표현을 글로 할 필요가 없듯 비평도 글로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우리의 짧은 말솜씨가 춤의 심연에 얼핏이나마 다가갈 수 있다면, 덧없는 말잔치도 그리 쓸모없지만은 않겠다.
한국무용예술학회(회장 김말복)는 지난달 19일 이화여대에서 11차 학술발표회를 가졌다. 학회의 이번 주제는 ‘춤과 비평’이다. 춤을 어떻게 비평할 수 있는지, 어떻게 말할 수 있는지를 논하는 자리.
학술발표대회는 데보라 조윗(Deborah Jowitt, 사진) 美 뉴욕대 교수의 무용에 대한 에세이 ‘Dancing on the paper’로부터 시작됐다. 이어 문애령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는 ‘한국 무용비평의 역사와 현황’을 살폈다. 이지선 이화여대 박사과정생은 ‘한국 무용비평계 연구 - 등단과정과 활동을 중심으로’를 통해 한국에서 비평가가 만들어 지는 과정을 해설했다. 이지원 무용과 강사는 무용비평을 푸코의 몸철학 개념을 빌어 ‘컨템포러리 댄스에 나타난 몸의 정치적 재현방식 연구’를 발표했다.
데보라 조윗 교수는 ‘Dancing on the paper’라는 제목과 같이 “종이 위에서 춤추다”는 말로 무용비평을 논했다.
조윗은 미국사회에서의 춤의 지위를 언급하면서 “강한 청교도주의의 영향과 무용에 대한 천박한 인식으로 무용비평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다”고 전했다.
그는 20세기 초부터 시작한 무용비평사를 △사진가·예술비평가 칼 반 베첸의 비평은 행위에 대한 시선의 움직임으로 사진을 찍듯 한 묘사 △H. T. 파커는 행위에 대한 감성을 은유 등의 방법으로 표현 △존 마틴은 변호적 비평으로 몰지각으로부터 현대무용을 옹호 △에드윈 덴비는 언어로 옮길 수 없는 감정을 발레를 통해 어떻게 전달하는지 쉽게 설명해 작품을 바라보는 방식 제공 △질 존스턴은 현대 춤의 근간이 되는 예술의 본질에 대한 아이디어와 형식적 구조, 그리고 의문점들을 이해하도록 도움이라고 정리했다.
조윗은 미국 무용비평사를 통해 △변호적 비평이 항상 필요한 것은 아님 △평론가가 개인적인 이유로 특정 예술가를 광고하는 것은 비윤리적 △글이 개인의 감성에 따라 여과되어도 대중들로 하여금 작품을 심도 있게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것은 평론가의 과제 △설교·강의가 아닌 춤이 생생하고 흥미롭게 들리게 할 때 가장 효과적인 비평이 되어 왔다고 말했다.
조윗은 또 <당신의 손끝으로: 춤 비평 쓰기>를 적은 샐리 베인즈의 말을 빌어, 주관에 따라 춤 평문을 구성하는 네 가지 주요 요소는 △묘사 △해석 △평가 △맥락이며, 이 요소가 여러 가지 다양한 방식으로 대부분의 비평적 글쓰기에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20세기 초 비평이 평가와 해석을 강조하고 1960년대 이후 비평에 환기적 묘사의 필요성이 떠올라 왔다는 조윗. 그는 춤비평이 묘사를 강조하는 것은 △춤의 덧없음 △움직임과 형태에 있어 음악과의 관계 강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조윗에게 ‘묘사’는 “독자와 글 사이에 위치한 평론가가 ‘사물 그 자체’가 아닌‘내가 본 대로의 사물’을 제공하는 것”이며 “주관적인 편견과 문화적 조건을 고려할 수 있는 영혼의 렌즈로 보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조윗은 개인적으로 최근의 비평 중 ‘단어를 통해, 문장의 리듬과 형태를 통해 글쓴이가 보고 느낀 바를 환기시키는 경우’가 좋았다고 평했다. “비평가들은 겉보기에 제각각인 텍스트들 사이의 유의미한 관계, 혹은 그 관계의 의도적인 부재를 찾기 위해 부단히도 애써야만 한다”고도 조언했다.
마지막으로 조윗이 말하는 ‘좋은 비평가’는 “그저 자신이 사랑하는 예술형식에 대한 인식과 의견을 나누고 싶어 하고, 독자들로 하여금 그들 역시 보았거나 볼 수 있는 사건에 대해 생각하도록 자극하길 바라는 識者로서의 관점에서 글을 쓰는 자”라고 말한다.
박상주 기자 sjpark@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