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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아내’가 된 한국 여성들의 삶과 정체성
‘미군 아내’가 된 한국 여성들의 삶과 정체성
  • 교수신문
  • 승인 2007.06.04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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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기지촌의 그늘을 넘어> 여지연 지음 | 임옥희 옮김 | 삼인 | 2007

한국전쟁 직후, 미군과 결혼한 한국여성들은 남편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감으로써 본격적인 미국 이민의 시대를 열었다고 할 수 있다. 『기지촌의 그늘을 넘어』는 이 시기 미국으로 간 결혼 이민자 여성들의 삶과 정체성에 대한 연구서이다. 여지연이 특별히 이 시기의 ‘군인아내(military bride)’들에게 주목하는 이유는 이들이 미군 병사와 결혼했다는 이유만으로 기지촌과 매춘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미군 병사와 결혼해서 군인아내가 된 한국여성들은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일단 ‘기지촌의 그늘’을 드리운 여자가 되어야 했다. 따라서 이들은 한국 가족들에게는 ‘가문의 수치’로 여겨졌고, 미국인들에게는 미국의 부를 얻기 위해 ‘미국 여성으로부터 미국 남자를 “훔쳐 간”’ 아시아 여성으로 적대적인 시선을 견뎌야 했다.
이 여성들이 기지촌 여성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미군과 결혼했다는 사실만으로 한국과 미국에서 비가시적으로 존재하게 된 이유를 저자는 기지촌을 둘러싼 양 국가 간의 관계 형성에서 찾는다. 1장에서 저자는 기지촌의 형성 과정과 기지촌의 존재가 양국의 우호적인 관계 협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설명한다. 기지촌은 ‘예속된 나라가 지배하는 국가에게 여자를 조달하는’ 전형적인 방식으로 한국과 미국뿐 아니라 세계 어느 곳에서나 통용되는 방식이다. 저자는 양국 정부가 기지촌을 필요악으로 간주하는 태도를 보였다는 점을 지적한다. 즉 한국의 입장에서 기지촌은 ‘정숙한’ 여성들을 미군들로부터 보호하며 경제발전의 초기 단계에서 외화벌이를 할 수도 있는 것으로 여겼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 정부는 70년대까지 한 달에 한 번씩 기지촌 여성들을 모아놓고 그들이 국가 방위에 일조하고 있으며 국가경제발전에 이바지한다는 식으로 애국심을 주입시키는 강연을 했다고 한다.
저자는 군대에 의한 성적인 착취, 특히 정복한 나라의 남성들이 정복당한 나라의 여성들을 착취하는 형태라는 점에서 기지촌 여성들이나 일제 강점기의 군위안부들의 문제에는 동일한 메커니즘이 작동한다고 본다. 그러나 군위안부의 문제는 제국주의에 희생당한 ‘민족의 누이’라고 주장되는 반면, 기지촌 여성들은 한국의 상황과 미국과의 관계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도덕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기지촌에 들어가게 된 것이라고 여겨진다. 외국 군대에게 성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지촌 여성들이 생겨난 원인을 미국과 한국의 관계로 보기 시작하면 주권국가로서의 정체성이 위협받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군과 결혼한 한국 여성들의 삶에 ‘기지촌의 그늘’이 따라다니는 것은 그들의 삶을 여러 모로 제한하는 장벽으로 작용하게 된다는 점을 저자는 지적한다.
저자는 150여명의 군인아내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미군과 결혼한 여성은 곧 기지촌 여성이라는 편견이 얼마나 강하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다양한 배경과 계기로 군인아내가 된 여성들이 미국에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고 미국의 건강한 시민으로 대우받기 위해 어떻게 노력했는지 묘사하는 데에 중점을 둔다.
저자가 군인아내들에 대한 편견을 넘어 이 여성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얼마나 주체적이고 저항적인 지점을 보여주는지 드러내고자 한 부분은 책의 3장, 4장이라고 할 수 있다. 3,4장은 저자가 개별적으로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만났던 여성들이 미국으로 건너온 초기에 맞닥뜨린 식생활, 미국가족들과 관계 형성, 자녀 교육 등을 통해 겪었던 문화적, 인종적 차별을 서술하는 데에 많은 부분이 할애되어 있다. 그러나 1950년대를 전후해서 미국으로 이민 간 군인아내들이 겪어야 했던 어려움들은 그들이 반드시 군인아내이기 때문에 겪어야했던 일들은 아니다. 군인아내들이 남편의 식구들과 겪었던 갈등이나 남편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했던 일들이나 친정식구들에 대한 그리움 등은 보편적인 결혼 구조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이고 군인아내들의 경우는 지리적인 위치나 인종적인 문제들이 보태져서 그 문제들이 확장되어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3,4장의 내용은 당시 군인아내들이 겪었던 문제들이기도 하면서 지금 여기 한국으로 아시아 전역에서 결혼이민을 온 여성들이 겪고 있는 문제와 동일하기도 하다.
그러므로 과거 그리고 현재에도 군인아내들에게 들씌워진 편견을 비판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한국에 온 결혼이민자여성들에게 현재 우리 사회가 가하는 배타적인 시선, 차별적인 태도 등을 돌아볼 수 있을 때에 『기지촌의 그늘을 넘어』는 현재적인 맥락에서의 의미까지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구번일 /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연구원


 

필자는 연세대 비교문학협동과정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저서로는 <다락방에서 타자를 만나다>(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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