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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성이론 - 양자역학 둘러싼 ‘생생한 역사’
상대성이론 - 양자역학 둘러싼 ‘생생한 역사’
  • 교수신문
  • 승인 2007.06.04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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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아인슈타인-보른 서한집> 구스타프 보른 외 엮음 | 박인순 옮김 | 범양사 | 2007

1997년 과학사학계에 작은 파문이 일어난 적이 있다. 막스 플랑크 과학사 연구팀이 그동안 정설로 받아들여졌던 힐버트의 중력 방정식 발견을 반박하고 나선 것이었다. 연구팀은 힐버트의 편지와 관련 논문들을 엄밀하게 분석한 결과 아이디어를 도용한 이는 아인슈타인이 아니라 힐버트 자신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했다. 아인슈타인에게 씌워졌던 표절 시비가 일단락된 것 같았다. 하지만, 2005년 3월 물리학자이자 과학사학자인 다니엘라 뷘쉬(Daniela Wuensch)가 다시 이를 반박하면서, 힐버트에게 우선권을 돌려주었다. 막스 플랑크 연구팀이 힐버트 논문 작성 과정에서 보여지는 오류 정정 등을 토대로 아인슈타인의 우선권을 주장할 수 있었는데, 뷘쉬의 경우는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131통의 편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괴팅헨 다락방에서 발견된, 아인슈타인, 막스 플랑크, 막스 보른이 힐버트에게 보낸 편지들은 중력방정식을 발견한 이는 힐버트임을 입증해주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뷘쉬는 일반상대성이론이 방정식과 동일한 것이 아님을 들어, 일반상대성이론을 발견한 이는 아인슈타인임이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우선권을 둘러싼 이 논박은 과학사에서 편지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것이었다. 근대 과학의 성립 이후로 많은 과학자들이 연구 과정에서 부딪게 되는 여러 문제들을 다른 동료와의 편지 왕래를 통해 해결을 하기도 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도 하였다. 때문에 과학자들의 편지는 과학 이론이 탄생하는 복잡한 과정을 추적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이밖에 과학 이론과 사회 배경과의 연관을 밝히고자 하는 과학사회학자들에게도 편지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편지를 통해 드러나는 연구자 개인을 둘러싼 사회적 맥락이나 개인의 심리 상황 등을 통해 과학 이론의 사회적 맥락을 짚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보른 서한집』은 위의 예에서처럼 어떤 결정적인 단서로 작용할 수 있는 편지들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서한집은 현대 과학의 양대 이론인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을 둘러싼 생생한 역사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사료로서 높은 가치를 지닌다고 하겠다. 양자역학의 창시자이기는 하지만, 막스 플랑크나 하이젠베르그에 맞먹는 명성을 누리지 못한 막스 보른과 아인슈타인은 1916년부터 1955년까지 서신을 교환하면서, 당시 물리 이론을 두고 첨예한 의견 대립을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기도 한다. 이들 서신은 우리에게는 생소한 인물인 막스 보른이 양자역학의 기초인 행렬공식을 완성한 사람이면서, 파동 함수의 통계적 해석을 이룩한 사람이었음을 알려준다. 또한, 현대과학의 완성자이면서도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에 왜 그렇게 완고한 태도를 갖게 되었는가를 추적할 수 있다. 양자역학의 통계적 무작위성을 “신은 주사위 게임을 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거부한 아인슈타인은 1930년대가 되면,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양자역학의 개연성은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현대 물리학의 토대를 닦은 두 사람이기에 대부분의 서신 내용들이 이런 물리학 문제를 다루기도 하지만, 이밖에도 국제 연맹, 유태인 문제, 원자폭탄에 대한 문제 등 정치 사회적 상황을 담고 있기도 하다. 1944년 편지에서 보른은 “국제적인 조직을 만들어야만 하고, 더욱 중요하게는 국제적인 행동 혹은 윤리 강령을 만들어 우리 과학자 공동체가 현재와 같이 산업체와 정부의 도구로서가 아닌 세계의 권력을 제어하고 안정화시킬 수 있는 힘으로 활동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이 서한집에서 두 과학자의 인간적 모습을 읽을 수 있게 하는 것은 두 과학자만이 아니라 막스 보른의 아내인 헤드비히 보른도 서신 왕래에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헤드비히와의 서신에서 아인슈타인은 연구소 자리에 누구를 앉힐까를 고민하고 있으며, 상대성 이론에 대한 악의적인 선전에 감정적으로 대한 것을 후회하기도 하고, 보른 아내의 희곡을 비평하기도 하고 건강 조언을 하기도 하는 평범한 인간으로 등장한다. 일반인과 마찬가지로 과학자 역시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임을 서한집은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막스-보른 서한집』은 이런 점에서 일반인들이 과학자, 과학을 접하는 또 다른 통로이기도 하다.

박진희 / 동국대 교양교육원 과학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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