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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된 그림작가’ 명성을 거꾸로 돌려라
‘거꾸로 된 그림작가’ 명성을 거꾸로 돌려라
  • 교수신문
  • 승인 2007.05.26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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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비평]게오르그 바젤리츠와 ‘러시안 페인팅’

1. 그림을 거꾸로 건 것은 익살일 뿐이다
주요 일간지를 비롯하여 다양한 매체가 바젤리츠를 ‘거꾸로 된 그림의 작가’로 소개하고 있다. 작품을 거꾸로 건 것이 사건이라도 되는 양 국립현대미술관의 보도자료에도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바젤리츠는 “거꾸로 된 이미지는 더 잘 보일 뿐 아니라 보는 이의 눈을 향하게 된다”면서 “거꾸로 그려진 대상은 오브제로는 부적합하기 때문에 오히려 회화에 적합하다”는 역설적인 말을 했다. 거꾸로 된 이미지는 제대로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회화에 적합하다는 건 억지주장이다. 작품을 90도 혹은 180도 돌려서 거는 건 주목받기 위한 수단이다. 비구상과 언어를 작품의 재료로 삼는 개념주의가 성행하던 시기인 1969년에 구상을 옹호하기 위해 이미지를 거꾸로 구성하는 것으로 구상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지만 그건 새로운 방법이랄 수 없다.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는 거꾸로 보인다. 시스티나 예배당을 방문한 사람은 경험하겠지만 목을 뒤로 오래 제쳐야 하기 때문에 작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것이다. 1940년대 후반 잭슨 폴록은 캔버스를 바닥에 놓고 주위를 돌아가면서 그렸다. 한지에 수묵화를 그리는 화가들도 유사한 경험을 할 것이다. 바젤리츠의 익살은 이런 경험에서 착안된 것이다. 회화에 적합하게 하기 위해 이미지의 좌우를 바꾸고 식물을 공중에 매단 것을 파울 클레의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거꾸로 된 그림의 작가’로서의 바젤리츠의 명성은 미술관과 언론이 만들어낸 것이며 우리의 관심 밖이어야 한다. 우리는 그의 작품을 다시 거꾸로 돌려놓고 회화의 적합성을 따져보아야 한다.

2. 신표현주의의 실상
바젤리츠는 독일 신표현주의의 선두주자들 중 하나다. 1970년대 말에 등장한 신표현주의를 신야수주의 혹은 격렬하고 폭력적인 회화라고도 하는데, 재료 처리방식이 매우 거칠며 짧은 기간에 제작하여 격렬함을 작가의 주관성으로 두드러지게 표현하는 회화다. 독일과 미국에서는 신표현주의Neo-Expressionism란 용어로, 프랑스에서는 자유구상Figuration Libre으로, 이탈리아에서는 트랜스아방가르드Transavantgarde로 성행했으며, 공통점은 추상에 대한 반발로 구상을 고집하며 폭력과 죽음을 테마로 한 것들이 많다. 갤러리스트와 미술품수집가들은 신표현주의를 반겼으나 일부 평론가들은 부와 명성을 얻기 위해 관습적 기법을 일부러 무시하여 형편없게 만드는 걸 두고 비난했다. 일부 신표현주의 작품을 ‘배드 페인팅 Bad Painting’, ‘어리석은 페인팅 Stupid Painting’이라고 불렀다.
신표현주의가 부상한 배경을 둘로 꼽으면 하나는 개념주의 이후 회화의 위기를 맞아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는 몸부림이며, 다른 하나는 미술품을 소장하는 것이 삶을 향상시킨다는 것과 투자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수요가 급격히 늘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에 들어서자 미술품의 가격이 앙등하기 시작했다. 1979년의 미술품 가격과 1980년의 가격을 비교하면 서너 배는 보통이고 어느 화가의 경우는 다섯, 여섯 배까지도 상승했다. 오일과 다이아몬드에 쏠렸던 투자가들이 미술품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추상표현주의 작품을 구입하지 못해 투자의 기회를 놓친 사람들의 구매수요가 급증한 것이 신표현주의가 성행하는 걸 용인했다. 신표현주의는 1980년대 들어서 회화가 위기를 맞았을 때, 다시 말하면 모더니즘이 종말을 고하고 모더니스트 회화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되었을 때, 아서 단토의 말로 하면 예술이 종말에 이르렀을 때 약간의 지엽적인 변화를 일으킨 사건에 불과한 것이다. 신표현주의들은 자신들의 주관적 표현의 한 수단으로 회화를 사용한 것이며 그것은 모더니즘의 종말 이후에 나아갈 바람직한 방향은 아니었더라도 그럴 수는 있었다고 이해되어진다. 1980년대에 신표현주의자들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화가들은 자신들이 나아갈 방향을 잃었다. 자신들이 무엇을 그려야할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양식과 주제에 있어서 고갈되었다. 미술계의 심층구조에는 예술의 종말을 특징짓는 구조적 다원주의가 자리 잡았다. 미술활동 전 영역에 매체들의 연접성이 두드러졌다. 회화뿐 아니라 퍼포먼스, 설치, 사진, 대지미술, 개념적 구조물, 섬유작품, 온갖 장식적 패턴의 작품 등이 회화의 동료가 되었다. 유행을 선도하는 개인이나 그룹이 존재할 수 없게 되었고 미술가들은 모더니즘의 억압에서 해방되어 다양한 길을 걷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건 한스 리히터가 반동이라고 말한 신표현주의들에 의해서 방대한 양의 대형화가 쏟아져 나왔으며, 그것들이 수요에 의해서 미술시장에서 소비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바젤리츠가 있었다.

3. ‘러시안 페인팅’(1998-2002)
바젤리츠의 명성은 1968년까지의 작품으로 족하다. 1957년 동베를린에서 서베를린으로 이주한 뒤 마르크스주의 예술과 미학을 공식적으로 후원하기 위해 수용한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반발하여 그린 그림들은 민속까지도 이데올로기에 이용되는 철저한 미술 말살에 반기를 든 것으로 높이 평가되었다. 1969년 잭슨 폴록의 추상표현주의의 영향을 받고부터 그의 회화는 독창성을 잃기 시작했다. 그는 사람의 얼굴을 거꾸로 그려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려고 했으며, 그런 작품들이 1995년 미국의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을 시작으로 하여 대대적으로 소개되었다. 거꾸로 그려진 초상은 에밀 놀데를 상기하게 하는 감성적 표현이었다. 추상표현주의 양식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양식에 있어서 ‘러시안 페인팅’은 바젤리츠의 새로운 시도이지만 주제에 있어서는 과거 그가 집착했던 것들에 대한 변형일 뿐이다.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회화와 정치선전용 사진을 소재로 삼아 그것들을 매우 거칠게 신표현주의 특유의 배드 페인팅으로 만들면서 해학을 곁들였다. 사회주의의 우수성을 선전했던 이미지들의 허구성을 새삼스럽게 드러내려고 한 것으로 개인적 향수가 벤 작품들

이다. 또한 그의 창작의 한계를 보여주는 시리즈이기도 하다. 69세로 그가 명성을 되찾기에는 너무 늙었다.

김광우 / 미술평론가


필자는 뉴욕 시티칼리지와 포담대 대학원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주요저서로 <뭉크, 쉴레, 클림트의 표현주의>,  <프랑스미술 500년>, <백남준 VS 앤디 워홀>, <칸딘스키와 클레의 추상미술> 외 다수가 있다.

 

 


/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작품들

 

스몰니의 레닌(1998)
1.스몰니의 레닌(1998)
레닌을 누드로 그리면서 평범한 노인으로 묘사한 것이다. 일개 필부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주는 이 작품에서 레닌은 편지를 쓰는지 연설문을 작성하는지 열심히 적고 있다.

2. 전쟁의 나날들 I(1998)
화가가 빈 캔버스 앞에 앉아 있다. 사회주의가 붕괴된 사회에서 화가는 자신이 무엇을 그려야할지 알지 못한다. 과거에는 레닌이나 스탈린의 초상화를 그렸겠지만 이제는 그려할 대상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젤 앞에 앉아 있는 화가는 바젤리츠 자신이다.

3. 베를린의 승전일(1998)
피아노를 치고 있는 군인의 모습이다. 소련군이 무식하고 좌변기도 쓸 줄 모르는 야만인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선전용으로 그려진 이미지를 변형한 것이다.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화가는 소련군이 피아노도 연주할 수 있는 음악을 사랑하는 감성적인 남자라는 걸 선전하기 위해 그렸다. 그것을 바젤리츠가 기억 속의 희미한 이미지로 재생산했다. .

연단 위의 레닌(1999)
4. 연단 위의 레닌(1999)
이것은 연단 위에서 연설하는 유명한 사진을 새로운 이미지로 변형시킨 것이다. 험상궂은 작은 얼굴에 몸집만 크게 부각시킨 작품이다 

5. 멕시코 혁명 II(2001)
이것은 다섯 명의 공산주의자 초상이다. 왼편부터 ‘공산당선언’을 발표하여 각국에 혁명의 불을 지핀 마르크스, 마르크스의 이론적, 실천적 활동을 경제적으로 지원한 엥겔스, 스탈린과 대립하여 국외로 추방된 뒤 멕시코에서 암살된 트로츠키, 러시아에 마르크스주의를 발전시킨 혁명이론가, 사상가 레닌, 레닌의 후계자로 소련공산당 서기장, 수상, 대원수를 지낸 스탈린의 초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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