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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으로부터 ‘편집권 독립’ 이정표 될 것”
“자본으로부터 ‘편집권 독립’ 이정표 될 것”
  • 김창룡 / 인제대·언론정치학
  • 승인 2007.05.26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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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비평]장기화하는 ‘시사저널’ 사태, 어떻게 볼 것인가

해를 넘긴 시사저널 사태는 파업 중 기자가 방송사 퀴즈대회에 출전, 퀴즈왕에 선발되는가하면 KBS 등 동료 언론인들로부터 후원금을 받는 등 숱한 화제를 몰고 왔지만 그 타결의 실마리는 찾기 힘든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지난 1월부터 파업 중인 전국언론노조 시사저널분회(위원장 정희상)가 최근 회사에 최종안을 제시했다고 한다. 시사저널분회는 회사에 총 7가지의 세부 요구조건을 담은 최종안을 전달하고, 회사 쪽 입장을 밝혀줄 것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노조가 제시한 최종안에는 △새로운 리더십 필요 △시사저널 사태 이후 단행된 모든 징계 철회 △편집권 보장 약속 등의 요구조건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노조는 이 안을 회사가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힐 경우에만 협상 재개와 파업 철회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회사 측에서는 이를 수용할 의사가 현실적으로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파업 이어 직장폐쇄 … ‘해결 실마리’ 찾기 힘든 상황
김은남 시사저널분회 사무국장은 “이번 사태가 시사저널의 위기라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노사 양쪽에 상호 책임이 있다는 것을 통감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어정쩡한 합의로는 독자들의 신뢰를 얻을 수 없고, ‘제2의 창간’이라는 큰 틀에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뜻을 전달한 것”이라고 언론전문신문 ‘미디어 오늘’은 전했다.
시사저널 기자들은 지난해 6월 금창태 사장이 ‘삼성 이학수 부회장의 인사권 남용이 도를 넘어섰다’는 내용의 기사를 인쇄 직전 삭제한 것에 반발해 왔다. 지난 1월부터는 회사와의 단협 결렬로 파업 중이다. 편집권 침해 주장에 대한 사측의 기자 및 국장 징계와 이에 대한 반발과 파업, 다시 사측의 직장폐쇄 등 시사저널 사태는 해를 넘기며 숨 가쁘게 진행되고 있지만 그 해결책이 쉽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서로가 양보하고 타협점을 모색하기에는 양측의 주장과 요구의 간극이 너무 벌어져버렸다. 그렇다고 제3자가 나서서 개입, 중재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 해결의 실마리조차 찾기 힘들다는 점이 사태를 더욱 어렵게 만들어가고 있다. 기자들만으로 새로운 시사저널을 만든다는 것도 지난한 어려움이 예상되고 사측에서 외부 인사들로 급조하여 현재의 상처를 간직한 채 같은 제호의 잡지를 지속적으로 발행한다는 것은 더 큰 어려움에 봉착될 전망이다.
시사저널 사태는 몇 가지 관점에서 향후 언론과 자본, 사주와 기자들 간의 편집권 논의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시사저널 사태는 우선 편집권을 둘러싼 사장과 편집국이 대립했다는 차원에서 언론계에 흔하게 볼 수 있는 사건의 하나일 뿐이다. 논란이 된 기사처리를 둘러싸고 편집국장에게 통고조차 않은 채 사장이 개입하여 일방적으로 기사를 누락시키고 이에 반발한다고 징계와 소송이라는 수단을 동원한 점, 기자들은 파업을 결행하고 이어 사측은 다시 직장폐쇄를 들고 나오는 등 초강경 대응으로 일관해서 서로가 타협의 여지조차 없애버렸다는 점이 더욱 사건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
한국 언론의 경우 1987년 6월 항쟁이 있기 전까지는 사실상 편집권에 대한 제대로 된 개념조차 정립되지 않은 채 권언유착의 틀 속에 언론카르텔이라는 안이한 제도권 언론으로 존재해왔다. 편집권 확보를 위한 언론인들의 부분적인 저항과 투쟁이 없지 않았지만 전반적으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렸던 보도지침, 국정홍보조정실 등이 너무 강력했다.
신문과 방송은 있었지만 저널리즘은 없었다. 시민과 대학생들이 주도한 20년 전, 6월 민주화 항쟁의 결과물에는 ‘모든 자유를 자유롭게 한다’는 언론의 자유 조항이 들어 있었다.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의원의 직선제 개헌 등 9개항을 발표하는 과정에 언론자유가 들어간 것이고 이는 국민의 눈물과 피, 땀으로 얻어낸 귀중한 민주주의의 초석이 된 셈이다. 그러나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언론은 무임승차했다. 언론은 개혁의 주체가 되지못한 채 오히려 개혁대상으로 전락해 취재거부, 시청자 거부운동을 당했을 정도였다.
1988년 노태우 정부의 출범과 함께 언론자유를 제한했던 ‘언론기본법’은 ‘정기간행물 등록 등에 관한 법’으로 대체됐고 비로소 자유경쟁, 언론출판의 자유가 주어졌다. 한겨레신문 등 새로운 매체가 선을 보이게 된 것. 편집권 독립에 대한 논의도 이 무렵에 와서야 진정으로 한 단계 발전할 수 있었다.

IMF 이후 편집권도 자본예속 심해져
그로부터 10년 세월이 흐른 1997년 IMF구제금융이라는 경제위기는 한국 언론에도 치명타를 가했다. 언론이 권력으로부터 독립을 이뤄가던 무렵, 경제위기를 당한 한국 언론의 편집권은 다시 자본으로 예속되는 전환점이 됐다. 편집권 독립보다는 당장 먹고사는 생존 그 자체가 최우선 과제가 됐다. 신문의 긴축재정과 광고확보는 편집권 독립 논의 자체를 한가한 논의로 치부되도록 했다.
사주는 경영권을 통해 편집권을 통제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인사권을 통해 편집권을 좌지우지하는 행태로 바뀌었다. 인사권은 경영권의 일부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신생매체들, 경제적 어려움이 컸던 매체일수록 편집권 독립의 문제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언론의 자유를 찾아준 시민항쟁에 대한 배반이었다.
이런 과정에서 태어난 시사저널은 편집권 독립을 통해 사회주요 이슈를 선도하며 잡지계의 참신한 바람을 일으켰다. 기존언론사들이 장악하고 있던 주간잡지 시장에 혜성처럼 등장해 깊이 있는 해설과 기획력으로 고정 독자들을 착실하게 확보해나갔다. 사장은 외압을 행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외부압력을 막고 편집권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IMF 경제위기속에 시사저널 역시 사주가 바뀌는 운명을 거치며 그 본래의 모습이 바뀌어갔다.

언론자유, ‘자본 독립’은 숙제로 남아
매체시장이 다변화되고 그 매체 수가 늘어나면서 경쟁은 더욱 격화됐다. 어느 언론사치고 대광고주의 눈치를 보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자본의 편집권 잠식 우려는 현실로 다가왔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국내 주요 방송, 신문사의 총 수익 중 4대 재벌의 광고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1/5에 이른다는 통계적 수치를 인용하면서 “이런 구조를 벗어나지 않으면 자본으로부터 언론의 독립은 요원하다”고 했다. 언론자유도가 선진국 수준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자본으로부터 독립은 한국 언론이 풀기 어려운 영원한 숙제처럼 다가왔다.
그 숙제는 대부분 언론사가 안고 있지만 시사저널처럼 이렇게 극적으로 사건의 과정, 과정을 장기간에 걸쳐 보여주는 경우는 드물었다. 향후 시사저널 사태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알 수 없다. 논의는 단절됐고 양측의 주장은 추호의 물러섬이 없다.
전규찬 교수는 한 토론회에서 ‘삼성엑스파일’ 사건에 대해 “삼성이라는 거대 재벌이 얼마나 집요하게 자신에게 이롭지 않은 기자를 관리, 훈육할 수 있는지, 자신에게 도전적인 기자를 효과적으로 저지, 처리할 수 있는지 여지없이 보여준 데 커다란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시사저널> 사태도 삼성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를 발행인이 자의로 삭제한 것이 발단이 된 점을 인용해 이같이 말했다.

공멸 피할 수 있는 노사 ‘양보와 타협’ 필요
전 교수는 “<시사저널> 사태도 미디어를 관리 대상으로 간주하는 자본권력의 의지가 빚은 산물로 보는 것이 맞다”면서 “재벌이 언론을 완전히 제압할 수 있을지, 거꾸로 언론이 자본을 견제할 힘을 보유할 수 있을지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의 재민주화’ 가능성을 좌우할 숙명의 승부”로 <시사저널> 사태를 규정했다.
<시사저널> 사태를 취재해 보도한 강지웅 MBC ‘PD수첩’ PD는 “방관할 싸움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취재를 하면서 나도 의식화됐다”고 했다. 문정우 <시사저널> 대기자는 MBC에 재직하다 삼성의 홍보담당 이사로 전직한 이인용 전무에 대해 “70~80년대에 기자가 군부에 결합한 것과 똑같다. 그런 것을 바탕으로 보도지침도 나오고 살생부도 나왔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결자해지.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들 사이의 한발 물러선 양보와 타협 외에 방법은 없다. 서로가 윈윈하는 절충점을 찾지못한다면 서로가 공멸하는 길을 걷게 될 가능성이 높다. 시사저널 사태는 ‘신종 괴물’ 자본으로부터 편집권 독립 논의의 한 이정표를 세우게 될 전망이다.

김창룡 / 인제대·언론정치학


 

필자는 영국 카디프대 언론대학원에서 ‘영국의 전문기자제도와 한국현대언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AP통신 서울특파원과 국민일보 기자, 한국언론재단 연구위원 등을 지냈다. 저서로 <매스컴과 미디어 비평>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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