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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칼럼] 무소속 30년
[원로칼럼] 무소속 30년
  • 교수신문
  • 승인 2001.10.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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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0-17 11:5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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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진곤 / 전북대 명예교수·과학학

대학을 졸업했던 그 해 4월에 군에 입대했다. 배치받은 부대는 안양 부근에 자리잡고 있는
탄약관리 부대였다. 겨울이 오기 전에 새로운 내무반 막사가 완공됐다. 이제 막사 실내벽을 도배해야 하는 일이 남아 있었다. 우선 초벌 도배를 해야 하는데 나와 또 한 병사가 맡았다. 신문지에 풀칠을 하고 벽에 붙여 가던 도중, 신문지의 문화면 기사 제목에 시선이 멈췄다. 기사 제목이 지금도 생생하다. ‘한국의 과학사 연구와 교육 현황’이라는 제목이다.
필자는 박익수 선생이었다. 벽에 붙였던 신문지를 조심스럽게 떼어서 난로에 말려 그 기사를 상세히 읽었다. 이때 비로소 ‘과학사’라는 학문이 있음을 처음 알았다. 곧 박 선생의 저서 ‘신과학사 강론’을 어렵게 구입하여 한가한 틈을 놓치지 않고 대강 읽어 내렸다. 이해하는 데 별지장이 없었다. 모처럼 휴가를 얻어 모교 도서관을 찾았다. 도서관 직원의 도움을 얻어 겨우 찾아낸 책은 독일의 유명한 과학사가인 ‘단네망’의 저서 ‘대자연 과학사’의 일본어 번역판 14권이었다. 또한 미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친구로부터 영국의 과학사가 ‘버널’의 저서 ‘과학사’를 선물로 받았다. 이 책들을 꼼꼼히 읽고, 과학사가 어떤 학문인지 대강 이해했다.
말 그대로 ‘독학’이었다. 이처럼 과학사를 연구하게 된 것은 그저 우연 때문이었다. 이 벽지 도배사건(?)은 내게 있어서 인생의 갈림길이 되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처음으로 역사라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 1960년대 초기 과학사의 의미를 깊이 인식하고 있던 철학과의 한 교수의 협조로 철학과에서 과학사 강의를 맡았다. 화학을 전공한 사람으로 예상밖의 일이었다. 이어서 교양과목인 ‘자연과학개론’의 강의도 맡았다. 이로써 전공했던 화학은 나와 점점 멀어지고 과학사 연구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갈등과 고민이 교차했다. 이처럼 갈림길에서 방황하고 있을 때 한국과학사학회의 송상용 교수를 우연히 만났다.
이 만남으로 방황은 끝나고 전공을 과학사로 바꾸었다. 갈등과 고민이 말끔히 씻겨져 나갔다. 모교에서 ‘자연과학개론’ 전임 교수의 공채가 있었다. 다행히 자리를 잡게 됐다. 학교 당국이 어느 ‘학과’에 나를 소속시킬지 무척 궁금했다. 발령장에는 자연과학대학 ‘공통과’였다. 이유인즉 각 학과에서 문을 굳게 닫아버렸다는 것이다. 그 후 개인적으로 학과의 문을 조심스럽게 노크해 보았지만 모두 반응이 없었다.
닫혀진 공간은 시야가 좁아지는 법이다. 학과의 문이 이처럼 굳게 닫혀버린 까닭을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학문 세계에서의 변절자라는 낙인이 찍혀서일까.
무소속으로 30년의 학교생활이 흘렀다. 그러나 30년의 무소속 생활을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 주변 동료들의 도움으로 1995년 모교 학부과정에 ‘과학학과’가 탄생했다. 30년만에 ‘공통과’에서 ‘과학학과’로 소속이 바뀌었다. 비로소 보금자리를 찾은 셈이다.
외국의 학문 세계에서는 학문의 변절자가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경우가 흔히 있다. 토머스 쿤은 물리학을 전공했지만 과학사회학자로 변신하여 독특한 과학사회학의 영역을 수립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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