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7 07:45 (수)
지식 융·복합 꿈꾼 학문과 학자들
지식 융·복합 꿈꾼 학문과 학자들
  • 김재호 기자
  • 승인 2007.05.21 10: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화제의책]지식의 통섭, 최재천·주일우 엮음 | 이음 | 2007

지식의 큰 줄기(統)를 잡아야(攝) 한다는 ‘통섭’. 만남을 강조하는 ‘회통’, 화쟁 과정을 강조하는 ‘총섭’. 그야말로 지식의 융·복합이 강조되고 있다.
각각의 용어들이 함의하는 바는 학술심포지엄에서 논의됐듯이 ‘서로 다른 요소 또는 이론들이 한데 모여 새로운 단위로 거듭남’ 정도로 보면 무방할 것이다.
 지난해 9월 이화여대 통섭원 개원을 기념하기 위해 ‘지식의 통섭을 위하여’라는 심포지엄이 열렸다.
책은 이날 발표된 논문들을 다듬어 묶었다.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토텔레스, <통섭>의 윌슨이 스승으로 섬겼던 근대 초기의 프랜시스 베이컨, 조선시대 학자인 박지원·홍대용·최한기 등이 통섭을 꿈꿨던 사람들로 소개됐다. 진화경제학, 생물학, 네트워크 과학, 유토피스틱스 등은 통섭을 꿈꾸는 학문들로 논의됐다.
 첫 논문은 조대호 연세대 교수(철학)의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 체계’이다.
그는 유비적인 통섭의 길로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다뤘다. 조 교수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종의 개체가 가장 앞선 뜻에서 있는 것이라는 존재론적 전제에서 출발하면서 생명체야말로 그런 개체의 구체적인 사례라고 보았기 때문에 생명체에 대한 탐구에 몰두한다”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본질론은 각 대상의 고유한 차별성을 인정하면서도 그것들을 함께 비교, 논의할 수 있는 공통의 논의 지평을 찾아내려는 그의 관심에 부응할 수 있다”고 적었다.
 마지막 논문은 홍성욱 서울대 교수(생명과학부)의 ‘21세기 한국의 자연과학과 인문학’. 홍 교수는 “윌슨에게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통섭은 평등한 것이 아니다”라며 “인간을 지배하는 물리적 인과관계를 이해할 수 있는 학문이 자연과학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오랫동안 상반되는 것이라고 간주된 한국의 인문학과 자연과학 사이의 소통은 ‘통섭’이 아니라 조심스러운 ‘접촉’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책에서도 언급됐듯이 지식을 통섭하고자 하는 학문적 바벨탑 쌓기는 여러 문제점을 낳았다. 용어 정립과 통섭의 궁극적인 가능성에 대해 이견이 많다. 특히 에필로그에서는 윌슨의 주장처럼 자연과학적 환원론의 뉘앙스가 느껴진다.                김재호 기자 yital@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