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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발상의 논의 쏟아낸 경이로운 ‘작품’
역발상의 논의 쏟아낸 경이로운 ‘작품’
  • 최운실 / 아주대·교육학
  • 승인 2007.05.21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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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교육자본론 : 사교육과 평생교육의 자본화> 한준상 | 학지사 | 2007

프레이리 선생이 그토록 强辯했던 文化作業者(culture workers)로서의 교육자, 기꺼이 가르치는 일에 나서겠다고 결심한 교육자들에게는 “시대의 傑作”을 만나는 일이 가히 “경이로운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評者는 최근 독특함의 미학과 지적 창조성의 내공이 물씬 감지되는『교육자본론:사교육과 평생교육의 자본화』이란 걸작과의 遭遇를 통해 또 한번의 경이로움을 접할 수 있었다.
한 교수의 지적 예리함이, 늘 그러하듯, 어김없이 이 책에서도 진한 감동으로 전해져온다. 필자의 글은 늘 새롭고 다채롭고, 온통 개성이 강한 논리로 겹겹이 중무장되어 있다. 필자의 평소 지론인 “배움학의 고리”부터 공교육과 사교육을 넘나드는 “생각의 경계 넘나들기”와 “교육계의 블루오션 찾기”지적 작업 흔적들이 예외 없이 발견된다. 최근  우리 교육계에 신 주류 개념으로 신데렐라처럼 등장한 인적자본 형성의 HRD 구도와 사회적 자본 그리고 여기에 새로이 “교육의 총체적 자본화”라는 삼각구도 담론이 가미되면서 “교육자본론”이라는 야심작이 빚어졌음이리라. 
교육자본론을 읽으며 무한한 “생각연습” 그리고 “기존의 당연시 되던 것들과의 결별”의 중요함이 묻어남을 느끼게 된다. 교육에 대한 무한한 단상과 방대한 지식정보 그리고 이들을 나름의 독특한 방식으로 엮어 새로운 그 무엇을 만들어 내는 지혜를 배우게 된다. 그야말로 “별 것 아닌 것 까지도 별 것으로 만들어 내는 지적 논리의 생명력”이 발견된다.
<교육자본론> 또한 예측을 불허한다. 제목만 봐도 쉽게 감이 잡히고 예단할 수 있는 그런 류의 책이 역시 아니었다. 상당한 시간을 두고 두세 번을 읽고 또 읽어봐도 그리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그래서 많이 생각하고 또 곰씹어 보게 만드는 책이다. 책을 읽으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게 만드는 재주를 가진 필자의 상상력과 창의력과 지력과 독서력이 이번에도 여지없이 발휘되었음이리라. 후학들로 하여금, 스스로 교육계에 종사한다고 자부하는 많은 전문가들로 하여금 “배움학”을 게을리 한 자신의 부족함을 한껏 부끄럽게 만드는 그런 작품을 또 한번 빚었음이리라.
교육자본론은 서언부터 예사롭지 않다. 예의 그 엄청난 미주가 들어가는 글에서부터 독자들을 위압한다. 마치 배움의 경이함으로 들어가는 엄숙함을 느끼게 하는 좁은 문처럼 와 닿는 다. 서언에서 이미 읽는 이들로 하여금 교육자본론의 본질과 그 학적 함의를 배움의 본질이라는 근원적 논의를 통해 숙고해 보게 만든다. 교육자본이란 무엇인가? 그 개념과 양태 그리고 교육의 “자본화” 라는 전환적 틀 바꿈의 새로운 의미론을 시사한다.
필자는 교육자본론을 풀어가는 화두로서 인간교육의 원형이자 도시 전체가 하나의 교실이며 삶의 배움터였던 그리스의 아고라 정신을 상정하고 있다. 학습도시와 학습국가, 학습기업, 학습조직 그리고 군대 또한 군인적자원개발을 필두로 “학습군대화” 하고 있는 요즘의 상황 속에서 필자는 진정한 “배움”을 화두로 우리 사회의 모든 자원을 교육자원으로 전환하라고, 또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고, 그 길만이 난마처럼 얽힌 우리네 교육문제와 사회문제를 풀어내고 교육력을 복원할 수 있는 생존의 방책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교육자원의 자본화를 위한 논의의 틀 거리로 필자는 인적자본과 교육자본과 사회자본의 결합 그리고 교육자본의 확장과 일상화를 논하며 이를 위한 교육자본의 토대 구축과 교육자본 촉진 유통의 관계망들을 명쾌하게 조감하고 있다. 이들 자본들 간의 상생적 네트워킹과 상호작용의 시너지를 강조하면서 “접착의 고리, 매개의 고리, 소통의 고리” 라는 세 가지 각기 다른 영역으로 다각화하는 독특한 논의 방식을 접목하고 있다. 최근 학습조직의 통합모형에서 강조하고 있는 이환고리학습(double loop learning)의 의미와 중요성이 감지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배움 공동체의 거버넌스와 할력화를 위한 평생학습도시 운동과 도시공간의 교육자본화 그리고 학습통화 등등의 새로운 명제 등장 또한 예사롭지 않다.
2부에서 다루고 있는 “공간의 교육자본화”와 “관계의 교육자본화”, “활동의 교육자본화”라는 삼각구도 모형 또한 교육자본론을 배태하는 새로운 관계지움의 방식이 아닐 수 없다. 공간의 교육자본화에서 필자가 제시하고 있는 모든 이의 배움권을 보장하기 위한 “배움마을”과 배움터의 교육자본화 전략, 그리고 게임산업과 디지털 학습산업, 오프라인 학습산업을 잉태하고 있는 거대한 3.5차 교육산업의 이지케이션 교육자본화 전략, 사교육시장으로서의 학원산업의 의미 있는 교육자본화 논의 또한 예사롭지 않기는 마찬가지이다.
무수한 반론과 쟁점과 갈등과 이견이 속출할 수 있는 “역발상의 논의”들을 필자는 거침없이 토로하고 있다. 관계의 자본화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대통령과 45대, 46대 교육부 수장들의 교육정책 추진 양태와 입장을 “교육장관들의 읍소(泣訴), 미소(微笑), 실소(失笑), 그리고 고소(苦笑)”라는 전혀 새로운 관점의 틀로 분석해 내고 있다. 교육권력의 교육정치적 속성과 역학 그리고 교육정책의 정치적 논리와 신뢰 등을 교육자본화하기 위한 熟考의 智略들을 제시하고 있다.  활동의 교육자본화에서는 새로운 화두인 젠더 관점에 기초한 “배움학의 여성운동”과 성 차이 복원 그리고 이의 교육자본화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들을 투망하고 있다. 여기에 극단의 양극화라는 사회문제를 풀기 위한 교육적 지혜로 “취약계층의 교육자본화” 전략을 투사하고 있다. 취약계층의 배움력과 교육자본화를 위한 “러닝 리스타트( learning restart) 운동”과 맞춤형 직능개발 등의 교육자본론적 혜안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이 책을 접으며 필자가 서언에서 밝혔던 노벨상 수상자인 베커 교수의 <인간자본(Human Capital>에 필적할 대작을 꾸리고 싶었다는 염원과 그 속에 담긴 걸작 구상의 담대성이 재삼 떠오른다. 베커 교수처럼 경제학적 계량화 논리를 개발하고 싶었으나 답습 대신 필자는 “이론적 토대로서의 배움학”을 선택했다는 辯이 꽤나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끄덕임을 낳게 한다.
필자의 무한대적 생각의 속도와 생각의 깊이를 따를 수 있겠나 만은, 그래도 후학의 한 사람으로서, 책 속에 담긴 논의들을 벗 삼아, Mezirow 교수가 강조했던 전환학습의 깊은 의미 그리고 평생학습에서 강조하는 학습의 전생애성 (life-long), 범생애성(life-wide), 통생애성(life-deep)의 깊은 의미가 새록새록 되새겨 진다. “스스로 배움학”에 도전하고픈 강한 충동을 느끼며 배움과 가르침의 양면적 옷깃을 여며본다. 여전히 評者에게 후학으로서의 여지없는 부족함과 부끄러움을 가득 느끼게 만드는 이 책을 접으며. 

최운실 / 아주대·교육학


 

필자는 이화여대에서 평생교육을 전공했다. 아주대 교육대학원장과 한국평생교육학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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