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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學而思] 퇴계와 건축학
[學而思] 퇴계와 건축학
  • 김동욱 경기대
  • 승인 2001.10.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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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0-17 16:07:15
김동욱/경기대·건축학

천원짜리 지폐에는 앞면에 퇴계 이황의 초상이 그려져 있고 뒷면에는 이황을 봉향한 도산서원의 전경이 묘사되어 있다. 뒷면 그림 한 가운데는 기와지붕을 덮은 집 한 채가 유난히 강조되어 있는데, 이 집은 이황이 만년에 학문에 몰두하고 자연을 즐기며 제자들을 길러내던 도산서당이다. 나이 50이 되어 스스로 관직을 버리고 고향에 내려 온 이황은 조용히 자연에 둘러싸여 학문에 전념할 서재 한 채를 짓기 위해 고심하였다. 몇 차례 집을 옮긴 끝에 마침내 마땅한 터를 얻고 나서 수년 간 궁리 끝에 나이 60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지어낸 것이 도산서당이다.

이 집에서 퇴계는 집 주위 자연을 노래한 아름다운 시를 짓고 조선 성리학의 본령을 일으켜 세웠으며 영남의 기라성같은 제자들을 키워냈다. 서당 주변의 자연과 그 속에서 살고 있는 백성들의 삶의 편린을 노래한 도산잡영 48수는 16세기 조선의 선비가 갖고있던 자연과 사물에 대한 심미관을 잘 드러낸다. 여기에는 조선조 선비들의 사상과 시와 역사가 담겨있다.

또한 퇴계가 스스로 집의 설계안을 그림으로 그려가면서 힘들게 지어낸 서당 건물 자체는 소박하면서도 선비의 품격이 우러나는 독특한 건축미를 드러내 보여준다. 이 집은 고향 인근 사찰의 승려 목수가 지어낸 것인데, 마치 산간의 암자에서 볼 수 있을 듯한 고즈넉한 정취가 담겨있다. 집은 온돌방 한 칸과 마루방 한 칸, 그리고 부엌 한 칸만으로 이루어졌다. 한 사람의 선비가 고요히 책을 보고, 잠자고, 찾아오는 손님을 맞기에 부족함이 없는 가장 적절한 크기를 가셨다. 더 크다면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정도의 적정함이 돋보인다. 집 3면에는 각각 퇴를 덧 달아냈는데, 동쪽 퇴간은 비가 들이치지 않도록 처마를 덧 붙였고 뒤쪽 퇴는 책이나 문구를 올려놓을 선반으로 꾸몄고 서쪽에는 부엌에 딸린 헛간을 들였다. 3면의 퇴는 세심하게 다듬고 깎아낸 재목들을 교묘히 결합시켜서 퇴간이 몸채에 덧 붙여졌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도록 꾸며져 있다. 여기에는 16세기에 달성한 고도의 건축적 완성도가 담겨있다.

퇴계는 조선의 철학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성리학의 종장으로 평가된다. 그의 도산잡영이나 도산12곡은 국문학에서 높은 수준의 문학성을 인정받는다. 교육자로서의 퇴계의 인품이나 성과도 남다른 평판을 얻고있다. 이제 도산서당의 건물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퇴계는 건축에 대해서도 각별한 조예를 지닌 인물이었다는 또 하나의 평을 얻을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퇴계 이황은 16세기가 나은 하나의 거인임에 틀림없다고 생각된다. 다만, 현대의 학문 자세는 이러한 거인을 각각의 학문 영역의 시각으로만 한정적으로 관찰하는 한계에 머물러 있다. 철학자는 퇴계의 철학적 성찰만을, 국문학자는 그의 시가의 품격만을 논하고 교육학자는 그 교육적 업적을 논한다. 이제 하나를 더 추가해서 건축학이라는 영역에서도 퇴계를 다시 살펴보려는 판국이다.

현대의 학문이 제 각기의 전문성을 내세워 각 분야에서 괄목할 성과를 얻어내고 있는 점에 대해서 시비할 일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세분된 영역의 울타리 때문에 정작 중요한 본질을 놓치는 우를 범하고 있지 않은지 반성할 여지가 많다. 각각의 영역을 넘어선 통합된 시각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통합된 시각을 갖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한 사안에 대해서 각 분야에 속한 학자들 간의 울타리를 허문 생각의 교류는 있어야 마땅할 듯하다.

퇴계 자신은 분명 철학 따로 하고 남는 시간에 시 짓고, 제자가 찾아오면 가르치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모든 일은 한사람의 생애를 걸쳐서 통합되고 응축되어 그것이 때로는 철학으로, 때로는 문학으로, 그리고 교육으로 드러났을 뿐이라고 생각된다. 결국 통합적인 사고력과 관찰력이 역사적인 한 인물을 살펴보는 잣대가 되어야 할 것이라는 당연한 생각을 되새기면서 어떻게 하면 그런 통찰력을 갖추어 도산서당이라는 건물을 우리 시대에 설명할 수 있을지 애태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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