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박물관(관장 김홍남, 이하 박물관)이 용산으로 이전·개관한 지 1년이 넘었다. 최근 박물관은 유물을 수집·보관하고 일부를 전시하는 개념에서 기획전시를 다양화하고, 일상적으로 찾아 즐길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실 비평에 이어 김홍남 관장을 만나 박물관과 학계의 관계, 박물관 운영 계획 등을 물었다. /편집자주
지난해 8월 화려한 이력으로 취임한 김홍남 관장은 인터뷰 내내 거침없이 자신의 입장과 생각을 드러냈다. 국립박물관의 첫 ‘외부 인사’가 박물관 운영에 어떤 마스터플랜을 세워놨을까. 학계의 연구 성과가 집약돼 반영되는 국립박물관장으로서 학계와의 교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했다.
열악한 지방박물관 지원 … 균형발전 최선
박물관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박물관의 소장품들을 마음껏 열람하고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이다. 학계에서는 박물관이 연구자들을 위해 유물이나 관련 자료를 원활히 제공하고 학계를 배려할 수 있는 혁신적인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게 공통된 목소리였다. 박물관이 공식적인 룰을 정해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김 관장은 “이화여대 박물관장으로 재직하면서 박물관의 폐쇄성에 대해서 누구보다 더욱 잘 알게 됐습니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외국의 경우 학계와 박물관의 관계가 매우 긴밀하고, 그 교류도 한국에 비해 훨씬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반면 한국의 국공립 박물관이나 사립 미술관의 경우는 소장품 개방에 있어 상당히 폐쇄적이죠. 관장으로 취임한 후 연구자들이 박물관의 소장품이나 자료를 열람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목적만 뚜렷하다면 신청 후 관람할 수 있게끔 했습니다”고 말한다.
현재 박물관에서는 <동원학술지>, <미술자료> 등의 학술지를 출간하고 있다. 이 중 <동원학술지>는 필진을 박물관 내부 인사만 구성, ‘그들만의 잔치’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외부 학자들의 참여가 좀더 활발해져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합니다. <동원학술지>도 개방시켜 외부필진, 내부필진이 고루 섞이도록 할 생각입니다. 직접 일일이 논문들을 확인하고 그 수준을 한층 끌어올릴 계획입니다. 이런 모습이 좀 더 개방적인 박물관이 되도록 하는 데도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해요.”
학계의 최신 지식 및 연구 성과가 박물관의 기획전이나 상설전에도 적극 반영되길 바란다는 요구도 많다. 연륜 있는 교수들의 전시 참여가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는 학계와 박물관의 동반 상승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김관장은 이러한 학계의 생각에 의견을 달리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현직 교수들 가운데 실제 전시경험을 갖춘 사람은 몇명 되지 않습니다. ‘학자’로서의 교수들이 대부분이죠. 뿐만 아니라 박물관의 학예직들 또한 실질적인 전시경험은 많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우리의 고질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김 관장은 박물관의 학예사 채용방식에 대해서도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현재의 학예직 채용방식은 공무원을 뽑는 방식 입니다. 경력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국어, 영어, 문화사와 같은 암기지식을 요구하는 시험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외국의 경우 중간 규모의 박물관도 채용시험 자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3년 이상의 실무경력, 3종의 추천서, 학문실적과 같은 것들이 채용의 잣대지요. 무엇보다 경험이 중요합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실무경험도 없이 일을 맡게 된다면 제대로 일을 해내기가 힘듭니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점차 개선시켜 나갈 생각입니다.”
그가 생각하는 연구 인력들의 이상적인 상은 무엇일까.
“전공분야와 박물관의 관계는 의과대학 교수와 의사의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대에서 연구한 성과를 임상으로 옮기는 사람이 바로 큐레이터죠. 예술분야의 감성과 연출력을 갖추면서도 학자로서의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전공분야의 논문을 아무리 잘 써도 전시로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습니다.”
‘학계의 숙원사업’국제학술지 10월 창간 예정
김 관장이 가장 역점을 두는 과제는 11개 지방 국립박물관의 활성화와 아시아 중심 박물관으로의 도약이다. “김대중 정권 때부터 지역발전 정책을 내세웠지만 특히 문화 발전에는 서울과 큰 격차가 있습니다. 그 간극을 메워줄 수 있는 곳이 지방 박물관입니다. 현실은 제 구실을 못하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전문 인력과 예산이 부족합니다.”
김 관장은 대안으로 지방박물관 지원 통합 시스템을 구축했다. 중앙 박물관에 있는 인력을 재편성하고 팀을 만들어 건축, 전시, 디자인 등 각 분야의 인력을 지방 박물관에 파견한 것이다. 중앙박물관의 예산을 아껴 지방박물관에 지원을 늘리고 있다. 김 관장은 “열악한 지방박물관을 폭넓게 지원해 지역문화 균형발전에 이바지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아시아 중심 박물관으로의 도약도 의욕적이다. “우리 것만이 최고라는 사고방식으로는 아시아중심 박물관으로 도약하기 힘들죠. 아시아에서 만큼은 최고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아시아팀을 육성한 것입니다.”
국제화 전략도 궁금했다. 최근 활발히 열리고 있는 국제 심포지엄에 관한 그의 생각을 물었다. 그 대답 또한 의외다.
김 관장은 “해외에 전혀 반영되지도 않는 국제 심포지엄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국제 심포지엄은 일회성 행사입니다. 국내용이면 30억 원을 지원받을 것이 ‘국제’라는 말만 붙으면 국가로부터 1백50억 원을 지원 받는다는 겁니다. ‘국제’라는 말이 실질적으로 얼마나 이뤄지고 있는지 반문하고 싶군요”라고 일침을 가한다.
김 관장은 오는 10월부터 학계의 숙원사업이었던 국제전문저널을 창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고고·미술·역사·건축을 포함, 한국의 학문적인 발전성과를 보여주는 저널 창간이 목표다. 국내·외 석학 12명을 편집위원으로 구성할 예정이다.
“지금까지의 연구가 내수 연구였다면, 앞으로는 국제사회에 우리가 어떤 연구를 하고 있으며 어떤 성과를 내고 있는지 알려줘야 합니다. 한국의 학문적인 성과가 세계 연구에 반영되지 않는 게 현실입니다. 국제저널 창간이 이런 현실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배원정 기자 wjbae@kyosu.net
김홍남 관장은?
서울대 미학과 출신인 김홍남 관장(59)은 1977년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예일대에서 동양미술사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큐레이터 등으로 일하다 이화여대 교수 임용과 함께 귀국했다. 1995년부터 이화여대 박물관장 및 문화부 문화재전문위원으로 활동했으며, 2003년부터 민속박물관장으로 재직했다. 지난해 국립중앙박물관장으로 취임했다. 박물관 60년 역사상 첫 여성 수장이자, 외부 출신이다.
내셔널트러스트운동 등 문화재 관련 시민단체 활동으로 대외적인 지명도를 높였고, 특유의 강단과 저돌적인 활동력으로 우군도 많지만 독선적이라는 평도 있다.
‘조선시대 도자기展’, ‘18세기 조선 회화展’은 미국에서 그가 기획한 대표적인 전시다. 한국에서는 2005~2006년 민속박물관에서 개최된 ‘빛展’과 ‘민화와 장식병풍展’이 주목을 받았었다.
한국어로 써진 주요논문으로는 ‘이화여대박물관소장 청자상감인물화매병의 <조맹부· 관도승사락도>:원·고려문화의 소산으로’와 ‘조선시대 궁모란병 연구’, ‘안평대군 소장 중국서예: 송 휘종, 소식, 조맹부, 선우추’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