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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퇴근? 새벽2시에 잠드는 노곤한 '슈퍼맨'
칼퇴근? 새벽2시에 잠드는 노곤한 '슈퍼맨'
  • 배원정 기자
  • 승인 2007.04.16 14: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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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5주년 기념 특집] 교수사회 변화의 물결

많은 교수들이 자신들은 ‘학자’라고 강조한다. 이 말에는 권위가 배인 ‘교수’라는 단어보다는 마음껏 연구하는 즐거움에 빠지고 싶다는 뜻이 담겨있다. 그러나 이제 상아탑 내에서 연구에 몰입하며 학문적 성과를 내는 것만으로는 교수신분을 유지하기 힘든 시대가 왔다. 철밥통이라 불리던 교수 사회가 자율경쟁체제에 접어든 것이다. 대학은 교수에게 강의· 연구· 봉사활동 뿐 아니라 대외적인 활동에 개인의 능력까지 요구한다. 철저한 능력위주의 평가로 교수사회에 경쟁의 바람이 불고 있다. ‘슈퍼맨’을 요구하는 교수 사회의 변화된 일상을 찾아봤다.

‘행정가’와 ‘학자’로서의 자질 모두 요구

K대 김 교수는 요즘 보직을 겸하면서 교수생활 하기가 정말 힘들다. 업무량은 많아져 행정력을 십분 발휘해야 하지만 연구 논문을 쓰는데도 소홀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논문의 양과 질이 승진 심사에서 엄격한 기준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보직을 맡지 않으려는 교수들도 많아졌다”고 말한다.
연구 성과를 철저히 검증하고 인센티브제로 연결하는 대학의 현 제도는 ‘행정가’와 ‘학자’로서의 자질 모두를 요구 한다.

어학능력 향상과 자기개발을 위해 학교 내 어학교육원에서 학생들과 함께 원어민 수업을 받는 교수의 모습이다.
연구 환경도 변했다. 전공 분야에 따라 상대적으로 경쟁 대상이 많은 학과의 교수들은 좀더 분발해야 한다. 타 학문과 융합할 수 있는 자질까지 평가받는 것이다. 학제간 연구가 활성화되면서 자기 전공과 관련한 학회에만 참가해서는 경쟁력이 떨어진다. 주로 주말에 열리는 학회들 가운데 시간을 쪼개서라도 하루 두 군데 정도는 참석하는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특색 있는 논문 주제로 연구비 지원이라도 받을라치면 이런 열성쯤은 기본이다.

지방대에 근무하는 강 교수는 기업체에 펀딩을 하러 다니느라 하루 24시간이 부족하다. 영업사원처럼 연구비를 따내고, 후원금을 받기 위해 직접 발로 뛰는 것이다. 심지어 해마다 입시철 때는 고등학교에 찾아가 학교 홍보를 해야 하기도 한다. 그때마다 ‘연구하고 잘 가르치기만 하면 될 줄 알았던 교수가 이런 것도 해야 하나’하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지만, 대학이 요구하니 어쩔 수 없다.    

멀티미디어 시스템에 능숙해야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강의평가제가 도입되면서부터 알차고 성실한 강의를 준비하지 않으면 곧바로 폐강으로 이어진다. 더 이상 오프라인 강의만으로는 학생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 강의록을 수업 홈페이지에 올려야 하고, 온라인에서 지속적으로 학생들의 질문에 피드백 해줘야 한다. 그러다보니 학생들의 발 빠른 학습 환경에 적응하느라 파워포인트 작성부터 엑셀 작업까지, 멀티미디어 시스템에도 능해야 하는 게 요즘 교수들이 갖춰야할 필수 덕목이다.

산학협력의 일환으로 기업체 사장에게 연구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이재학 한국산업기술대 교수(기계설비공학과)의 모습이다.
C대 유 교수도 최근 컴퓨터를 배우느라 고생이다. 희끗희끗한 머리의 老교수가 독수리 타법으로 강의노트를 작성하는 모습을 상상한다면 오산이다. 기본적인 워드작업은 가능하지만 최첨단 기자재가 갖춰진 강의실에서 강의를 하려면 하루가 멀다하고 바뀌는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교수학습지원센터에서 진행하는 세미나 강의에 참가하고 나면 교수업적평가에서 가산점도 얻는다.

동료 교수들과 어울릴 시간도 자연스레 줄었다. 과거 신임교수로 부임했다고 선배 교수들이 부르는 술자리에 불려 다닐 시간적 여유나 공동체적 분위기는 상상조차 힘들다. 낭만적인 교수생활은 꿈꾸기 어렵다. 교수들끼리의 소모임에 참여할까 싶다가도 논문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은게 현실이다.

어학강좌 듣는 교수 꾸준히 늘어

국제화 능력을 요구하는 세태에 맞춰 어학강좌를 듣는 교수들이 많아졌다. H대 석 교수는 강의를 마친 후 저녁 6시가 되면 학내에 있는 어학교육원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일주일에 세 번, 학생들과 함께 원어민 강의를 듣는 다는 사실이 처음에는 쑥쓰러웠지만 자기개발 차원에서 어학 능력을 키우기 위해 꾸준히 노력한다”고 말한다. 학생의 입장에서 학생들의 수업참여도를 이끌어 내기 위한 강의 아이템도 함께 얻어감은 물론이다. 교수처럼 어학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새벽부터 외국어 학원에 등록해 제2외국어에 힘쓰는 교수들이 상당수 있다. 

이화여대에 있는 이화교수학습센터에서 교수들이 파워포인트 활용 강의를 듣고 있다.
이공계 쪽 사정은 어떨까. S대 이 교수의 취침시간은 새벽 2시다. 70년대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연구개발에 집중하는 분위기였지만, 이제 연구소나 기업에서 연구 프로젝트를 따와 학생들에게 등록금과 생활비를 대줘야 하는 시대가 왔다. 더 이상 탁상 위에서 이뤄지는 연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오직 산학협력과 기술개발이 교수생활의 키워드다. 오늘도 인근 기업체 사장을 모시고 대부도에서 간단한 점심 식사를 하며 기업체의 협조를 요청했다. 장학금 유치와 고가의 연구 기자재를 빌려야 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취업과도 연결된다. 가끔 새벽까지 이어지는 기업체 사장들과의 술자리도 피할 수 없다.

다방면의 역할을 요구하는 일상이지만 보람은 있다. 정용하 교수회장(부산대 정치외교학과)은 “연구 분위기가 강화된 만큼 교수들 스스로가 전문적인 역량을 배가 시키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고 말했다. 오늘도 교수 연구동의 불빛은 늦도록 꺼지지 않고 있다.  
배원정 기자 wjba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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