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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그 제자들
그 때 그 제자들
  • 상지대 임상철 교수
  • 승인 2007.03.26 14: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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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중반에 북한의 식량난이 발생하였으며 북한 실상이 대외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대북지원의 물꼬가 트이고 남북교류가 본격화되던 무렵에 나는 ‘북한농업’이라는 조금은 생소한 교양강좌를 개설하였다. 학생들에게 남과 북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북한에 관한 기본적인 지식을 전달하려 노력하며, 통일에 대한 당위성과 방법론을 학생들 스스로가 터득하고 지혜를 얻는 데 조력자의 역할을 자임하면서 강의에 임한다. 다행히 수강생들이 진지하게 들어주고 있기에 더욱 열심히 강의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내게는 대여섯 명의 북한출신 제자가 생겼다. 모두가 북한농업강의를 들었던 학생들이다. 학업을 마치고 한의사의 길을 걷는 학생, 북쪽출신 남녀학생이 결혼하여 신혼의 보금자리를 꾸린 제자도 있다. 특별히 기억에 떠오르는 학생은 98년 1학기 때 만났던 한 학생이다. 강의를 마치고 나가려는데 머뭇거리며 면담을 요청하는 학생과 마주쳤다. 바로 내 강의를 듣는 북한출신 학생이었다. 강의가 매우 흥미롭다며 북한에서 모르던 지식을 남한에서 배우는 것이 또한 새롭게 느껴진다고 하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학생은 북한에서 예술대학을 졸업하고 외국공관에 근무하다가 남으로 탈북한 출신성분이 상당히 좋은 학생이었다. 이 학생을 수회에 걸친 개별면담을 통하여 별도지도를 하곤 했었다. 그해 겨울 이 학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내용인 즉, 밑도 끝도 없이 책을 쓰려고 한다는 제안이었다. 통일에 관한 소설을 써서 돈을 벌겠단다. 글쎄 유명세도 없는 상태에서 돈 벌기가 쉽지 않을 것이지만, 의도하는 줄거리를 요약하여 연구실로 오면 도움이 되는 방안을 찾아보자고 답하였다. 연이어 또 다시 질문을 던진다. “한 일억원 벌 수 있습니까?”

자본주의를 학습하지 못한 이 학생은 돈의 크기도, 돈을 버는 방법도 초등학교 수준이었다. 결국 졸업을 하지 못하고 부산의 어느 인척을 찾아 내려갔다는 소식을 끝으로 연락이 없다. 많은 세월이 흘렀으니 이제는 잘 적응하며 새로운 삶을 살고 있을 것으로 생각해본다.

2년 전 스승의 날, 가슴 찡하는 경험을 했었다. 강의를 끝내고 나오려는데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뒤돌아보니 몇몇 학생들이 준비해온 ‘작전’이 시작되고 있었다.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스승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우리과도 아닌 타과의 학생들로부터 특별한 대접을 받으니 가슴 뭉클한 고마움을 느꼈다. 그 학생들 덕에 수강생들에게 알찬 내용을 더욱 열심히 전해주어야 하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고, 또한 교양강의를 담당하느라고 상대적으로 전공강의가 부실한 것은 아닌지 내 자신을 반성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었다.

강의실에서 학생들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보면서, 동감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이는 진지함을 확인하면서 피곤함을 잊는다. 믿음직한 제자들은 우리에게 보약과 같은 존재이다. 

그러나 지난해부터는 이러닝 수업으로 전환하였다. 매 학기 초 수강신청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사실을 익히 아는 나는 게시판에 첫 글을 올렸다. “수강신청의 전쟁에서 승리한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제 또 다시 한 학기동안 새로운 전쟁이 시작됩니다.” “모두가 승리하는 전쟁이 되길 바랍니다.”라고.
3백여명 수강생들의 과제물을 확인하고 평가하는 작업은 중노동에 버금간다. 3회에 걸친 과제물을 확인하려면 매회 며칠씩 밤을 꼬박 지새워야 한다. 첨삭지도를 해주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에 짧은 몇 줄의 코멘트로 대신하고 있다. 반면에 질의응답란을 최대한 이용하면서 학생들과 친숙해지려고 노력한다. 질문을 유도해도 어색해하던 면대면 강의실의 학생들과는 달리 오프라인에서는 컴퓨터라는 중간매체를 통해 소통하기에 스스럼없이 질문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끔씩은 개인 메일을 이용하여 답해주기도 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임상철
상지대·친환경식물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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