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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 한국 대학교육에서의 문제중심학습(PBL)
초점 : 한국 대학교육에서의 문제중심학습(PBL)
  • 가천의대 이영돈 교수
  • 승인 2007.03.26 14: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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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동적 학습·비평적 사고 능력에‘효과적’
최근 대학 졸업생들의 취업이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고들 한다. 그러나 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은 오히려 기업현장에서 당장 일할 인재를 구하기가 홍수 속에 먹을 물을 찾는 것과 같다고들 한다. 분명 이러한 불일치는 인재의 제공자인 대학의 교육에 문제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지금까지 의과대학을 포함한 우리나라의 대학교육은  전형적인 교수 중심 교육과정이었다. 의학교육을 예로 들면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모든 교육이 그렇듯이 교과목 중심으로 강의실에서 엄청난 양의 지식을 학생들에게 쏟아 부어왔다.

선생이 가르치면 배움이 이뤄진다는 가정 하에 교수가 학생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내용을 일방적으로 강의를 통해 학생들에게 전달해 왔다.

그러다 보니 창조적, 비판적, 분석적, 종합적인 사고를 키워주기보다는 암기 위주의 교육이 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요즈음은 급변하는 지식의 홍수 속에 사는 세상이다. 자연과학의 경우 강의 중 교수가 칠판에 쓴 내용이 교수가 막 뒤돌아서면 이미 지나간 학설이거나 잘못된 내용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모든 것을 학생들에게 전달할 수는 없다. 즉 ‘무엇을 배울 것인가(what to learn)’ 보다는 ‘어떻게 배울 것인가(how to learn)’를 가르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교수들은 이제 학생들에게 어떻게 하면 많은 고기를 잡아다 일방적으로 줄 수 있을까보다는 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 주기에 몰두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1969년 캐나다 맥마스터(McMaster) 의과대학이 개혁교육과정(innovative curriculum)을 시행한 것이 문제중심학습(PBL: Problem  Based Learning)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이 맥마스터 프로그램은 영국의 옥스포드, 캠브리지 대학의 tutorial을 기반으로 개발되었는데 자기 개발형 학습, 문제중심학습, 소그룹 학습을 특징으로 하였다. 그러나 문제중심학습에 대한 개념은 1980년 미국 사우던 일리노이 대학의 바로우(H. Barrow) 교수에 의해 처음 정리됐다.

현재 해외의 많은 대학에서 문제중심학습을 의학과 자연과학을 넘어서 인문과학에도 광범위하게 적용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의과대학에서 PBL을 시행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의과대학이 아닌 타 대학에서도 PBL을 시도하고 있다는 소식은 있으나 어느 정도로, 또한 어떻게 PBL을 도입하여 학습하고 있는지는 아직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다. 또한 타 분야에서 시행되는 PBL은 사실 PBL이라기 보다는 사례중심 학습(case based learning)이라고 해야 타당할 것 같다. 이는 이를 시행하는 교수들이 학생 중심, 소그룹, 튜터(tutor) 등 모양새가 비슷한 탓에 사례 중심학습과 문제중심학습을 혼동한 데서 오는 것 같다.

문제중심학습의 기본 뿌리는 구성주의(constructivism)에 있으며 듀이(J. Dewey)의 사상에 근거하고 있다. 듀이(1916)는 학습자 자신들에게 의미 있고 그들에게 중요한 경험을 제공하는 상황, 즉 상호간에 정보 교환을 하면서 함께 학습을 하는 교실과 같은 상황에서 지식과 아이디어가 창출된다고 하였다. 바로우 교수는 듀이의 사상을 의학교육에 적용할 필요성을 인식하여 문제중심학습을 개발하였다. 그는 의과대학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교육의 세 가지 요소를 지식, 지식의 활용 능력, 미래에 직면할 문제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보고 이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교육 방법을 개발한 것이다. 

많은 분들이 PBL에 대해서 알고 있겠지만 간략히 개념과 방법을 설명해 보고자 한다. 바로우 교수는 문제 중심 학습이란 “문제(problem)의 핵심을 제대로 파악한 후 이를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학습자 스스로 그 해결에 필요한 정보를 발견하게끔 하기 위한 수단(자극)으로서 문제를 활용하며 학생들이 스스로 공부하도록 하는 학습과정”을 의미한다고 하였다(1980). 또한 월튼(Walton) 등은 “PBL은 제시된 상황을 통하여 문제점들을 발견하고, 그 해결을 통하여 필요한 지식, 기술 또는 태도를 배움으로써 앞으로 이와 유사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학습 방법이다”라고 하였다(Walton JH & Mathew MB.  Med Educ, 1989).

문제중심학습의 특징은 첫째, 소그룹(통상 6-8명)학습이며 둘째, 학습자들에게 비구조화(ill structured)된 실제 증례(authentic problem)가 주어진다. 학생들에게 단계적으로(첫 session시 3-4단계) 정보가 주어지는데 처음 주어지는 단계의 문제는 간략한 비구조적인 문제로서 다양한 의사와 사고(brain storming)를 창출할 수 있는 문제가 주어진다. 여기서 사례중심학습과 차이가 난다. 사례중심학습은 과정보다는 답을 맞히려는 데 목적이 있지만 PBL은 과정을 중요시한다.

즉 학습전개 과정을 3 단계로 나누는데, 이는 1) 문제발견 단계(problem identification) 2) 비판적 이유 대기(critical reasoning) 3) 문제해결 단계(problem solving)로 이뤄진다. 이 중에서도 비판적 이유 대기를 가장 중요시 한다. 셋째, 학생 중심의 자기 주도적 학습(self-directed learning)이며 그룹 내의 협동을 중요시 한다. 학생들 스스로 배우며, 가르치며, 서로에게 배운다. 협동적 문제 해결은 학습자의 인지 발달에 중요한 상호작용을 풍부하게 제공한다(Bershon, 1992). 즉 그룹 내에서 학습자들은 자신의 견해에 대해 객관적 평가를 받으며 사고의 영역이 서로 상승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넷째, 선생(tutor)의 역할은 소그룹 내에서 가르치는 입장이 아니라 단지 학습 진행의 촉진자(facilitator) 및 안내자(guider) 또한 같이 배워 가는 공동학습자(co-learner)이다. 다섯째, 다양한 방식의 평가가 이루어진다.

평가는 튜터가 학생, 학생이 튜터를, 학생 상호 간, 그룹 상호 간 평가를 하게 되며 평가 내용은 그룹 내에서의 발표력, 이해력, 협동력, 문제 해결능력 등과 최종 보고서(학습과제물), 에세이(essay: 객관성을 높이기 위해 학생들이 경험한 PBL module과 비슷하게 문제를 만들어 개인별로 치는 시험), 성찰 레포트 등이 포함된다. 따라서 문제 해결 전 과정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고 특히 학습자가 평가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게 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실제 PBL은 통상 3개 ‘phase’로 나누어 진행된다. 보통 1주에 한 문제(module)를 다루는데 phase1에서는 구성원의 소개 및 역할 분담, PBL 증례의 분석( problem definition)과 학습항목(learning issue)의 도출, phase2에서는 학습항목의 자가 학습(information search), phase3에서는 학습결과의 토론과 정리(reformulation / feedback)가 이뤄지며 일주일에 약 2-3회 모인다. PBL의 운영원칙은 첫째로 출석과 시간을 정확히 지킨다, 둘째로 공부과정을 칠판이나 큰 종이에 기록한다, 셋째로 자기의 생각을 분명하게 발표한다, 넷째로 학습과정을 생략하지 않는다 등이다.

문제중심학습은 학습자들을 피동적인 학습상황에서 능동적으로 학습과정에 참여시키며, 교육에 대한 책임감을 갖게 해주고 분석적이고 비평적인 사고 기술, 이해력, 문제해결 능력을 길러준다.

뿐만 아니라 학습하는 방법에 대한 학습(learn to how to learn), 동료와 협동·협력하는 능력을 길러 주는 학습 방법이라는 것도 이미 입증되고 있다. 학습자들은 나아가 문제중심학습을 통해 학습한 것과 현장 실제상황의 직접적 연관성을 배우게 되며, 평생 학습자로서 끊임없이 부딪히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능력을 갖게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모든 대학 교육영역에 문제중심학습을 적용하는 것은 어려우리라 생각하지만 문제중심학습이 의과대학 이외의 타 대학 교육 분야에 가능한 한 널리 보급되고 시행되기를 바란다. 또한 PBL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 경험을 나누며 공부할 수 있는  모임이나 네트워크가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영돈 / 가천의대·의학과

필자는 서울대에서 ‘중합효소 연쇄반응법으로 증폭한 Rickettsia tsutsusgamushi 56-kilodalton 단백 유전자의 T-tracking에 의한 유전자형 동정’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가천의대 교육개발센터 소장과 교무처장, 가천의대 길병원 진료 부원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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