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매우 작은 연구실을 가지고 있다. 연구실이래야 남들처럼 이렇다 할 만한 실험 기자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능력을 발휘해 줄 대학원생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조그만 실험실에 몇 가지 아이디어로 좌판을 벌린 구멍가게 수준이지만, 연구란 것이 거창하다고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니라고 믿기에 그런대로 핵 자기공명 (NMR) 연구실이라는 간판 아래서 행복을 캐고 있다. 본 연구실에서는 NMR에 필요한 단결정 성장을 하고 있는데. 대학원생이 많지 않아서 일부 학부생의 도움을 받고 있고, 키우기 어려운 다른 단결정들은 국내외 다른 공동 연구자에게 공급 받아서 연구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결정들을 이용하여 NMR 실험을 하는데 이는 워낙 고가의 장비로서 본 대학에는 없는지라 다른 연구기관에 의뢰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외에도 단결정의 강탄성 특성을 연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실험 역시 다른 연구기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된다. 이렇게 부실한 연구 환경 속에서도 지금까지 국외 SCI 논문에 110여편과 국내 SCI논문에 10여편을 발표하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본 대학교 이공대학에는 물리학과가 있었는데, 최근 이공계 기피현상으로 지원자가 줄어들고 물리학과가 없어져, 본인은 사범대학 과학교육과로 자리를 옮긴지 이제 3년이 되었다. 사범대에서는 임용고사를 위해 비학점 강의 등으로 강의 시간은 늘어난데 반해 연구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줄어든 게 사실이지만, 교육대학원생과 학부생 몇으로 연구를 계속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한다.
굳이 나와 같은 여성이 아니라도 가정과 직장, 그리고 그 안에 포함된 구성원 모두에게 만족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사소한 것에 즐거워하고 만족해 한다면 행복이 결코 멀리 있지는 않으리라. 비록 컴퓨터가 토해내는 데이터의 한 부분을 부여잡고 낭만적인 시를 쓸 수 는 없어도, 밤을 새워 분석한 데이터에 숨을 불어넣어 완성된 한 편의 논문을 만든다면 그 역시 행복한 내 삶의 한 부분은 족히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대학원생, 거액의 연구비, 넓은 연구실, 그리고 고가의 기자재 등.... 이 모든 것들은 연구를 원하는 교수들이 바라는 최고의 조건이겠지만 이미 이런 호사스러움을 남의 행운으로 돌 릴 수밖에 없는 빈궁한 대부분의 교수들이 오늘도 열심히 연구실을 지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계가 없어서, 대학원생이 없어서, 그리고 그 모든 핑계를 이유로 연구실을 외면했던 많은 교수들에게는 너무도 합당한 이유겠지만, 이제는 한참 멀어져있는 파랑새를 찾으려하기보다는 지금이라도 실험실에 생긴 거미줄을 거두고 오랫동안 켜지 않았던 실험 장비에 전원을 켜야 하지 않을까. 지금까지의 내 연구의 힘이 되어준 나의 파랑새는 자장면 한 그릇에도 만족할 줄 알고, 몇 푼 되지 않는 인건비에도 고마워할 줄 알고 항상 내 곁을 지켜주었던 몇 명되지 않는 대학원생과 학부 연구생들이 아니었을까. 비록 필요한 고가의 장비가 내 곁에는 하나도 없지만....
임애란 교수(전주대 과학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