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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파랑새를 찾아서-전주대 임애란 교수
나의 파랑새를 찾아서-전주대 임애란 교수
  • 임애란 전주대 교수
  • 승인 2007.03.22 14: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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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마찬가지겠지만,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산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때로는 틀에 박힌 듯한 일상의 단조로움 속에서 약간의 탈출도 그런대로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겠지만 그래도 나는 연구하는 재미로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다.

사실 나는 매우 작은 연구실을 가지고 있다. 연구실이래야 남들처럼 이렇다 할 만한 실험 기자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능력을 발휘해 줄 대학원생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조그만 실험실에 몇 가지 아이디어로 좌판을 벌린 구멍가게 수준이지만, 연구란 것이 거창하다고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게 아니라고 믿기에 그런대로 핵 자기공명 (NMR) 연구실이라는 간판 아래서 행복을 캐고 있다. 본 연구실에서는 NMR에 필요한 단결정 성장을 하고 있는데. 대학원생이 많지 않아서 일부 학부생의 도움을 받고 있고, 키우기 어려운 다른 단결정들은 국내외 다른 공동 연구자에게 공급 받아서 연구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결정들을 이용하여 NMR 실험을 하는데 이는 워낙 고가의 장비로서 본 대학에는 없는지라 다른 연구기관에 의뢰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외에도 단결정의 강탄성 특성을 연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 실험 역시 다른 연구기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된다. 이렇게 부실한 연구 환경 속에서도 지금까지 국외 SCI 논문에 110여편과 국내 SCI논문에 10여편을 발표하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본 대학교 이공대학에는 물리학과가 있었는데, 최근 이공계 기피현상으로 지원자가 줄어들고 물리학과가 없어져, 본인은 사범대학 과학교육과로 자리를 옮긴지 이제 3년이 되었다. 사범대에서는 임용고사를 위해 비학점 강의 등으로 강의 시간은 늘어난데 반해 연구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줄어든 게 사실이지만, 교육대학원생과 학부생 몇으로 연구를 계속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한다.
굳이 나와 같은 여성이 아니라도 가정과 직장, 그리고 그 안에 포함된 구성원 모두에게 만족을 느끼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사소한 것에 즐거워하고 만족해 한다면 행복이 결코 멀리 있지는 않으리라. 비록 컴퓨터가 토해내는 데이터의 한 부분을 부여잡고 낭만적인 시를 쓸 수 는 없어도, 밤을 새워 분석한 데이터에 숨을 불어넣어 완성된 한 편의 논문을 만든다면 그 역시 행복한 내 삶의 한 부분은 족히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대학원생, 거액의 연구비, 넓은 연구실, 그리고 고가의 기자재 등.... 이 모든 것들은 연구를 원하는 교수들이 바라는 최고의 조건이겠지만 이미 이런 호사스러움을 남의 행운으로 돌 릴 수밖에 없는 빈궁한 대부분의 교수들이 오늘도 열심히 연구실을 지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계가 없어서, 대학원생이 없어서, 그리고 그 모든 핑계를 이유로 연구실을 외면했던 많은 교수들에게는 너무도 합당한 이유겠지만, 이제는 한참 멀어져있는 파랑새를 찾으려하기보다는 지금이라도 실험실에 생긴 거미줄을 거두고 오랫동안 켜지 않았던 실험 장비에 전원을 켜야 하지 않을까. 지금까지의 내 연구의 힘이 되어준 나의 파랑새는 자장면 한 그릇에도 만족할 줄 알고, 몇 푼 되지 않는 인건비에도 고마워할 줄 알고 항상 내 곁을 지켜주었던 몇 명되지 않는 대학원생과 학부 연구생들이 아니었을까. 비록 필요한 고가의 장비가 내 곁에는 하나도 없지만....

임애란 교수(전주대 과학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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