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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를 넘는 근대 … '식민지 근대'의 패러독스
근대를 넘는 근대 … '식민지 근대'의 패러독스
  • 교수신문
  • 승인 2007.03.16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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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비평 기획시리즈 (2) 식민지근대화론에 대하여 上

역사비평 시리즈 두 번째는 민족주의, 탈민족주의, 탈근대주의로 집약될 수 있는 역사논쟁을 살펴본다. 특히 논쟁의 핵심이 되는 <해방전후사의 재인식>과 <근대를 다시 읽는다>의 필자들에게서 직접 식민지근대화론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주익종 박사는 식민지근대화론이 일제시대를 미화하는 것은 분명 아니지만, 역사의 어두운 면과 더불어 식민지적 근대화 과정이라는 다른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윤해동 교수는 식민지근대를 동시대성과 연속성이라는 두 축으로 새롭게 해석하면서 탈근대적 개념화를 시도하고 있다. 

‘식민지 근대’의 패러독스  

 ‘식민지근대’란 무엇이고, 어떤 의도로 제출된 것인가. 식민지근대론은 ‘식민지근대화’를 주장하거나 옹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식민지의 ‘근대화’를 완전히 부정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이는 제국주의 지배의 ‘수탈’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식민 지배를 통한 근대화를 부정하는 것도 그렇다고 수탈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근대화도 수탈도 부분적으로는 인정한다는 것이 될 터이다. 하지만 식민지근대 논의의 본질적 의도가 두 논의를 절충하고자 하는 데에 있는 것은 더욱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식민지배의 성격과 피식민 사회의 변화를 근대화라든가 수탈이라는 개념으로는 더 이상 설명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식민지근대론은 식민지를 설명하고자 하는 기존의 논의가 처한 이런 궁지로부터 출발한다. 요컨대 식민지를 보는 제3의 시각이 바로 식민지근대론이다.  

 그리하여 식민지근대론은 제국과 식민지를 보는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것은 식민지가 일국적이고 자족적인 정치ㆍ경제ㆍ사회적 단위가 아니라 제국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었다는 점과 제국과 식민지는 상호작용하는 하나의 ‘연관된 세계’를 구성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식의 한 축으로 삼는다. 식민지란 근대세계체제가 그 체제로서의 속성을 갖추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곧 식민지체제란 근대세계체제의 하위체계로서, 문화적 교류와 융합 및 동화가 가장 활발한 체제이자 시기를 구성한다. 그러므로 아주 역설적이게도 식민지체제란 국민국가체제를 구성해가는 출발점으로서의 위치를 가지지만, 국민국가적 관점으로는 그 속성을 헤아리기 어려운 시기이기도 한 것이다. 이는 식민지근대가 제국과 식민지를 관통하는 동시대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이르는 것인바, 이를 식민지 이해의 ‘횡축’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하나의 축은 식민지배로부터 해방되어 정치ㆍ경제ㆍ사회적으로 독립된 단위를 구성한다거나 ‘친일파’를 ‘청산’함으로써, 식민지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둔다. 이는 식민지근대가 탈식민시대에도 이어지는 연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으로, 이를 식민지 이해의 ‘종축’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식민지가 지금까지도 ‘현재’ 속에 살아있다면, 식민 지배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이며,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식민 지배를 통해 형성된 ‘근대’를 보는 시각이 현재적 삶을 구성하고 있다면, 그런 근대를 벗어나는 길만이 식민지배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첩경이 될 것이다.

욕망과 규율 … 식민지 ‘규율권력’의 이중성

 일제 지배 하의 ‘수탈’이란 무엇인가? 근대화와 차별화가 동시적으로 발현하는 상황을 수탈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은 바로 ‘규율권력’의 이중성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근대적으로 생체화된 미시권력은 식민지배 하에서 지속적으로 작동하고 있었고, 이는 욕망과 규율화의 이중성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근대 국민국가의 규율권력이 작동하는 전형적인 대상으로서 교육과 징병은 일제하 조선에서도 잘 작동하고 있었다. 식민지 회색지대가 근거하는 지점이 바로 규율권력이 작동하는 곳이다. 식민지 회색지대라는 개념은 이항대립의 도식 속에서 말소되어 버린 식민지배 하의 일상생활이 작동하는 광범한 지대를 복구하고자 하는 의도를 담고 있지만, 말 그대로 생활의 회색지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식민지에서의 ‘수탈’을 위와 같이 해석할 수 있다면, 저항이라는 다른 항에 대해서도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식민지 공공성’이란 개념은 식민지기 저항의 외연을 넓히기 위해서 고안된 것이다. 근대 사회가 분화하면서 근대적 ‘공공영역’이라는 문제 영역이 부상하는 이유는, 그것이 공공성의 체현자로서의 국가의 공권력이 사적 영역을 장악해가는 과정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공권력에 의해 회수되지 않는 ‘공적 영역’의 존재는 중요하다. 식민지배하 저항과 협력이 교차하는 지점에 ‘정치적인 것’으로서의 ‘공적 영역’이 존재하고 여기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식민지기 저항의 의미를 새로이 규정하기 위한 것이다.

식민지하 저항운동은 대중적 현상

 또한 식민지하 근대적 대중의 창출을 거론하는 것 역시 저항의 의미를 재해석하는 것과 연관되어 있다. 식민지하 저항이란 무엇인가? 저항의 외연을 확장함으로써 내포를 충실하게 하기 위해서 나아가 소수자의 목소리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근대적 대중의 창출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대중의 공공영역 진출에 대해 적극적으로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식민지하 저항운동을 대중의 창출과 그에 기반을 둔 대중적 현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저항운동은 특권화되어 버릴 위험성에 곧바로 노출된다. 저항운동을 특권화한다는 것은 탈식민화 이후 새로운 제국주의 지배의 열망을 저항운동의 특권화를 통해 내면화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 아닌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제3세계 민족국가의 경험은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제 협력이란 무엇인가를 살펴보자. 1920년대에 근대적 경제, 사회의 분리 현상은 선명하게 노정된다. 다양한 사회적 영역에서 자율적인 동학(dynamics)이 형성되거니와, 협력이란 사회가 식민지권력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회의 대응 양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인 것’의 ‘정치적인 것’으로의 전환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치적 대응의 한 양상이 바로 협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협력은 제국주의 통치와 상호작용하면서 제국주의 지배의 특성을 구성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협력이란 제국주의 지배 하 근대 주체 구성의 한 양식으로서 적극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일제 말기 협력자의 주체 구성의 3가지 양태로서 민족부르주아적, 사회주의적, 근대초극적 양태를 들 수 있다면, 이는 저항적 주체의 형성과 아울러 근대 한국의 주체 형성의 중요한 특성을 구성한다고 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저항을 특권화함으로써 지배담론이 ‘민족’을 전유하고 다른 주체 구성의 방식을 소멸시키는 과정을 밟아온 것은 아닐까. 이 역시 근대 주체를 민족으로만 동일시할 때에 가능한 일이거니와, 현실정치를 권위주의적이고 도덕주의적으로 바라볼 때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이제 식민지하 계몽을 통하여 식민지근대의 문제의식을 살펴보기로 하자. 서구 근대가 계몽의 기획으로 추구되어 왔던 것이 역사적 사실이고, 그 계몽은 계몽의 주체와 대상 간의 고유한 괴리를 내장하고 있다는 역설을 가지고 있다면, 식민지 한국에서도 이는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식민지 한국에서는 계몽에서도 예외적 이중성이 발생한다. 식민권력과 식민지 엘리트 간의 계몽의 기획은 협동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민족주의라는 심급에서는 계몽의 협동관계가 상호 대립관계로 전환한다. 계몽의 고유한 역설에 기반을 둔 식민지 계몽의 이런 대립 관계는 기묘한 서구 근대에 대한 환상을 낳았으며 이는 ‘근대지상주의’를 재생산하는 데에 기여하였다. 민족의 심급에서 대립하는 식민권력에 대한 적대감이 서구 근대에 대한 환상을 낳았으며, 이것이 근대지상주의에 기여할 것이라는 점은 필지의 사실이다.

식민지근대는 탈근대적 개념화의 시도

 일제의 식민권력 즉 총독부 권력은 ‘식민국가’로서 근대국가로서의 특성을 구비하고 있었다. 식민국가는 폭력의 독점에 기반을 두고 식민지의 근대적 경제의 분리와 사회적 분화를 추동함으로써 사회적 합리성을 확대하는 데에 기여하였다. 신분제적 하위지배와 지역지배는 완전히 종식되었다. 시장의 물신화에 바탕을 둔 상품경제는 경제를 국가로부터 분리하여 이에 자율성을 부여하며, 이를 기반으로 사회적 분화를 가속화하는 것이었다. 근대적 사회의 분화가 바로 이것이다. 이는 또한 사회적 합리화의 과정이기도 하다.

 식민지 조선에서도 합리성이 확대되고 이른바 ‘근대인’이 창출된다고 하는 것은 이런 차원에서이다. 이미 1920년대 식민지 조선에는 전지구적인 근대적 ‘동시성’이 관통되고 있었거니와, 최근 식민지에서의 ‘부드러운 근대’에 대한 문제의식은 바로 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부드러운 근대가 관통되고 있었다는 도시 사회적 문제의식은, 근대적 에토스라는 차원에서는 농촌이나 산간벽지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규율권력화된 근대인은 근대를 욕망하는 존재로서 식민지 전체에 미만해 있었던 것이다.

 식민지근대란 이처럼 식민지를 보는 새로운 시각 곧 동시대성과 연속성이라는 두 개의 축을 설정하고, 근대 세계의 가장 전형적인 현상의 하나로 식민지를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이는 곧 근대를 새로이 그리고 비판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식민지근대란 식민지를 근대의 전형으로 바라보지만 근대를 비판적으로 재해석하고자 하는 점에서, 탈근대적 개념화의 시도이다. 근대를 넘어서고자 하는 근대 규정이라는 점에서, 식민지근대는 패러독스의 세계에 속하는 것이리라. 

윤해동 / 성균관대·한국근대사

글쓴이는 서울대 국사학과에서 ‘일제의 면제 실시와 촌락재편정책’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주요 저서로 <식민지의 회색지대>, <지배와 자치-식민지기 촌락의 3국면구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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