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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 야만의 시대
[대학정론] 야만의 시대
  • 논설위원
  • 승인 2001.09.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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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9-25 14:43:58
미국의 심장부를 강타한 9월 11일의 테러는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전세계에 실시간으로 중계되었다.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의 국방부(펜타곤)에 민간여객기가 자살공격을 감행하여 화염과 연기가 치솟고 한 순간 거대한 쌍둥이 빌딩이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모습은 헐리웃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텍타클한 화면을 연출했다.

테러리즘은 시각적인 충격을 극대화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의 이성적 사고를 마비시켜 폭력과 야만을 정당화하고 즐기게 만드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회교도인 테러리스트들은 기독교적 세계주의와 자본주의적 번영, 민주주의적 다원주의를 표방하는 유일제국 미국의 패권주의에 대한 거부를 극적인 방식으로 전세계에 알렸으나 그와 동시에 테러리즘에 대한 범세계적 분노와 보복의 도화선에 불길을 당긴 셈이 되었다. 불길과 먼지 속에 무너져내리는 고층 빌딩과 참담한 건물더미의 잔해, 먼지를 뒤집어쓰고 울부짖는 미국시민들의 모습에 가려 그들의 피맺힌 절규는 시청자들의 귀에 전달될 수 없었다.

이제 문제는 테러리스트들이 왜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극단적인 테러를 벌였는가를 따져보고 이러한 테러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미국의 정책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 지를 검토하는 것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오히려 전세계의 이목은 오사마 빈 라덴 같은 테러리스트들과 이들 악마의 집단을 비호하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응징하기 위해 특수부대에 의한 암살작전이 어떻게 전개되고 핵폭탄, 미사일, 경제봉쇄 등의 무기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용될 것인가 하는 데 쏠려 있다.

아닌게아니라 사태는 점점 헐리웃의 전형적인 3류 액션 영화처럼 전개되고 있다. 테러리스트를 비호하는 아랍의 약소국 아프가니스탄이 ‘성전’(지하드)을 다짐하는 다음 장면에서는 텍사스의 보안관 부시가 ‘영원한 정의’를 부르짖으며 ‘악의 무리’에 대한 ‘성전’(크루세이드)을 외친다. 이제 관객들은 서부의 보안관이 얼마나 멋진 솜씨로 악당을 응징할 것인지 숨을 죽이며 지켜보고 있다.

그러나 잠시 텔레비전 화면의 ‘복수혈전’에서 눈을 돌려 심호흡을 하고 사태를 객관화시켜 우리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자. 이럴 때 필요한 것은 이른바 서사적인 거리두기와 뒤집어보기를 통해 사태의 본질을 분석하는 브레히트식의 ‘낯설게 하기’ 기법일 것이다.

가령 미국에 자살공격을 감행한 아랍의 테러리스트를 윤봉길 의사로, 이를 배후에서 사주한 김구 선생은 라덴으로 역할을 바꾸어 무대에 올려놓았을 때, 우리는 흥미진진한 한 편의 영화를 보듯이 사태의 추이를 감상할 수 있을까. 윤봉길 의사가 상해의 홍구공원에서 도시락 폭탄을 던져 일본군 장성들을 폭사시키는 장면이 CNN의 화면을 통해 전세계에 중개됐다면 시청자들은 지금처럼 엄청난 충격과 분노를 느끼면서 배후 조종자인 김구 선생을 라덴 같은 야만적 테러리스트로 지탄했을 것이 분명하다.

정작 야만적인 것은 테러리즘을 눈요기거리로 만들어 상업화하는 언론과 자기도 모르게 이런 화면에 빨려들어가지 않을 수 없는 가련하고 연약한 우리의 의식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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