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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 좋은 강의에 홍보효과까지 ‘一擧兩得’
질 좋은 강의에 홍보효과까지 ‘一擧兩得’
  • 강민규 기자
  • 승인 2007.03.10 12: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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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는 명사 초청특강

“부시의 세계전략은 군사력의 우위를 바탕으로 상대국과 대치한다는 점에서 레이건의 전략과 유사하다. 그러나 부시는 위기신호를 무시하고 팽창을 계속한다는 점에서 레이건보다 못하다. 적어도 레이건은 ‘치고 빠질 줄은’ 알았다.”

성공회대 NGO대학원 주관으로 지난달 23일 열린 ‘아시아 시민사회 석학초청 연속강연’에 참석한 반세계화 진영의 대표적 석학 월든 벨로(Walden Bello·필리핀대 사회학과) 교수의 말이다. 이 강연회에 참석한 NGO대학원생들과 시민운동 활동가들은 미군의 필리핀 정치 개입에 반대하고 군부의 시민운동가 암살을 폭로해온 벨로 교수의 한마디 한마디를 놓칠세라 숨을 죽인다.

전공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가지고 있거나 현장 경험이 많은 명사의 체험담은 학생들에게 그야말로 ‘금싸라기’ 같은 강연이다. 최근 대학가에는 이처럼 외부 명사를 초청해 학생들의 관심을 끄는 강의가 점점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 이번 학기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대학원 과정의 ‘교정복지론’ 강좌(담당 교수 배임호)에는 전직 검찰총장, 교화활동을 해온 스님, 전 사형수 등이 강사로 나선다. 또 성공회대 NGO대학원은 벨로 교수와 킨히데 무샤코지(Kinhide Mushakoji) 전 유엔대학 부총장을 초청해 지난달 말과 이달 초에 각각 2차례씩 연속강연회를 열었다.

이공계 대학인 한국과학기술원에는 이번 학기에 ‘사랑학’ 강의(담당 교수 정재승)가 개설돼 눈길을 끈다. 3학점 교양과목인 이 강의는 문학, 사회학, 생명과학 등 다양한 학문을 통해 사랑을 분석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최재천 교수(이화여대 생명과학)와 작사가 심현보씨, 김동식 교수(인하대 국문과), 영화감독 허진호씨가 강사로 초청돼 각각 진화론, 대중음악, 문학, 영화와 사랑의 관계를 강의할 예정이다.

경제학과와 경영학과 개설 과목에서는 오래전부터 명사 초청강연이 활용돼왔다. 기업 최고경영자나 경제관료 등 경제·경영 각 분야 전문가들의 현장 경험을 학생들이 쉽게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학기에도 여러 대학에서 이 같은 강의들이 눈에 띈다. 연세대 경제학과에 개설된 ‘시장경제의 이해’(담당 교수 하성근)에는 최홍식 금융연구원장, 최장봉 예금보험공사 사장 등이 강사로 나서고 서강대 교양과목 ‘CEO 경영특강’(담당 교수 최정호)에는 윤영각 삼정KPMG 회계법인 대표, 진수형 한화증권 대표 등이 강사로 참여한다.

한편 개별 강좌 담당 교수가 아닌 학교 차원에서 외부 명사를 초빙해 개최하는 강좌도 많다. 경원대는 이번 학기에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 손석희 교수(성신여대 방송커뮤니케이션),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 등 12명의 명사를 초청하는 릴레이식 교양 강좌를 마련했다. ‘지성학’이라는 이름의 이 2학점 교양 강좌를 기획한 채재은 교수(경원대 교육학과)는 “경제·사회·문화·언론 등의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가진 인사들을 선정했으며 총장을 비롯해 많은 보직 교수들이 명사 섭외에 나섰다”고 밝혔다. 

충주대도 이번 학기에 ‘21세기 도전과 삶’이라는 제목으로 옴니버스 강좌를 신설해 각계에서 15명의 저명인사를 초청할 계획이다. 지난 8일 정우택 충청북도지사가 ‘시대정신과 변화’라는 주제로 강연했으며 앞으로 영화번역가 이미도씨, 이만기 교수(인제대 사회체육학과) 등이 강사로 예정돼있다. 건국대는 강좌 당 100분씩 4년간 100개 강좌를 여는 ‘100분 100강좌’를 이번 학기에 신설하고 기초소양교육을 위한 각 분야 전문가들을 섭외했다. 송희라 세계미식문화연구원장, 소설가 은희경씨 등이 강사로 나설 예정이다. 서울대에 2004년과 2005년 각각 개설된 ‘관악초청강좌’와 ‘관악사콜로키움’, 그리고 명사 초청특강의 모태격인 국민대 ‘목요특강’도 이번 학기에 계속 개최된다.

이렇듯 대학가에 명사 초청강좌가 확산되고 있는 것은 그 교육적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국민대 홍보팀 서준경씨는 “명사들의 강의료가 보통 회당 50만원선”이라며 “그 정도의 비용으로 수백 명의 학생들로 하여금 평소에 듣기 힘든 강의를 듣게 할 수 있다면 ‘투입 대비 산출’이 상당히 높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명사 초청강좌가 대학의 이미지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는 사실도 또다른 요인이다. 성공회대 민주주의와 사회운동연구소 관계자는 “학교 홍보 효과가 크기 때문에 외부 명사 초청에 힘쓰는 대학들이 많다”며 “초청 실적에 따라 성과급이 주어지기도 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편 초청강좌의 강사에 따라 학생들의 호응도가 크게 차이 나는 현상은 문제점으로 거론된다. 서울대 관악사콜로키움을 주관해온 한 조교는 “학자들이 강사로 오면 학생들의 관심이 저조하고 대중적인 문화계 인사들이 오면 호응이 뜨겁다”고 말했다. 이 같은 문제 때문에 국민대는 모든 학생에게 개방해오던 ‘목요특강’을 1999년 교양강좌로 등록시켜 매 학기 12회 특강을 들은 학생에게 1학점을 부여, ‘비인기 강의’에 대한 참여도를 높이고 있다. 건국대 ‘100분 100강좌’도 1학점 교양강좌로 개설됐다. 또 저명인사들이 대학 특강을 정치적으로 활용할 우려가 있다는 점도 문제다. 주보돈 교수(경북대 사학과)는 “최근 대부분의 명사 초청특강은 현장에서 나오는 새로운 지식을 전달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지만 과거에는 정치적 목적으로 이뤄지는 특강이 많았다”며 “앞으로도 선거철에 정치인들이 대학 특강에 지나치게 많이 나서는 일은 지양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강민규 기자 scv21@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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