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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루덴스] 시조 짓는 화학자 정순량 우석대 교수
[호모루덴스] 시조 짓는 화학자 정순량 우석대 교수
  • 전미영 기자
  • 승인 2001.09.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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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9-25 09:54:40

반질반질 윤기나는 다듬잇돌과 맵시있게 깎인 방망이가 부딪는 경쾌하고 낭랑한 소리가 집집마다 들려오던 시절이 있었다. 마당에서는 콩타작, 깨타작, 힘찬 도리깨질이 한창이다. 톡탁톡탁 끊어질 듯 이어지고, 도르륵 똑똑 도르륵 똑똑 중간중간 새로운 리듬이 생겨나는 옛 살림의 소리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음악이다.

정순량 우석대 교수(60세, 화학과)는 이 소리들을 한국인의 원형질 같은 것이라고 표현한다. 엇박과 정박, 기본 가락과 변주 가락이 절묘하게 합쳐진 3,4조의 세계. 다듬이 소리, 도리깨 소리에서 정순량 교수는 시조의 소리를 찾아낸다. 비단 그 소리들뿐이랴. 정교수의 귀에 들리는 소리는 모두가 ‘시조 읊는’ 소리처럼 들린다.

대학 새내기 때, 교양 국어시간에 처음으로 만난 시조는 이제 정교수 삶의 즐거움이자 행복이 되어버렸다. 스무 살 화학도는 시조의 무엇에 그토록 빠져버린 것일까. 그는 다른 무엇보다도 시조의 그 ‘형식미’에 반했다고 한다. 절제에서 오는 단아한 아름다움에 빠져들어 시조를 짓고 또 짓기를 몇 년, 그렇게 만들어낸 시조들을 모아 1976년, 그 당시 난다긴다하는 문청들의 집합소였던 ‘대구매일신문’ 시조 부문을 통해 등단했다. 그 뒤로 회갑을 맞은 올해까지 총 여섯 권의 시집을 냈으며 현재 한국시조시인협외 이사, 전북문인협회 부회장까지 맡고 있다.

“요즘 젊은 작가들은 소위 ‘현대적 감각’으로 시조의 형식을 흐트러뜨리기 일쑤입니다. 현대시조는 현대라는 시대성과 시조의 본질인 정형성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지요. 내용도 중요하지만, 형식미를 갖추지 않으면 그것은 시조가 아닙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는 우리의 전통 시조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시조에 대해 지레짐작하고 편견을 갖는 젊은이들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그 깊이를 조금만 알게 되면 시조의 맛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정교수는 요즘 고사성어로 시조 짓는 작업에 푹 빠져서 이미 33편의 초고를 완성했다. 고사성어의 지혜와 우리 시조의 아름다운 운율이 만나 어우러진 새로운 시조세계를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낼 꿈에 들떠있다.
전미영 기자 neruda73@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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