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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직선 위의 미로
[에세이] 직선 위의 미로
  • 최수철 한신대
  • 승인 2007.02.05 14: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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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하게 정체되는 차도 위에서 운전을 하는 중에, 공연히 조급한 마음이 들어 이리저리 차선을 옮기며 남들보다 더 빨리 앞으로 나아가려 할 때가 있다. 다른 자동차들 사이의 빈틈 속으로 어렵게 비집고 들어가며 그 제한된 공간 내에서 추월을 하려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때면 자주 경험하는 일이지만, 나의 자동차는 결코 다른 차들을 앞서지 못한다. 어차피 느릿느릿한 큰 흐름 속에 갇힌 채 헛되이 갈팡질팡할 뿐이다. 심지어 온갖 시도를 다 해보아도, 그로 인해 오히려 남들보다 뒤처지는 일도 다반사다.

그러다가 무심코 고개를 돌려 옆을 돌아보면, 나를 바라보는 타인들의 시선들과 마주친다. 그들은 때로 연민의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기도 하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그저 덤덤한 눈길로 나를 건너다보기도 하고, 또 때로는 화가 나거나 경멸감이 어린 눈길로 나를 쏘아보기도 한다.

그때 문득 나는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보르헤스가 말한 ‘직선 위의 미로’를 떠올린다. 흔히 라비린토스라고 불리는 미로 속에서는, 우리는 수없이 많은 갈림길을 앞에 두고서 어디로 나아갈지 알지 못한다. 기껏 방향을 잡아 앞으로 나아가 보아도 결국 제 자리로 돌아오고 만다. 그러나 보르헤스가 말한, 그리고 지금 내가 조금 변형시켜 말하고 있는 이 직선의 미로에서는, 애초에 그러한 선택의 여지도 없이, 하나의 직선 위에서 앞뒤로 끊임없이 진동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직선의 미로는 라비린토스보다 더욱 더 완벽하고 끔찍하다.

자동차의 물결에 휩쓸려 내 몸과 마음을 그 속에 속수무책으로 내맡겨 놓고 있을 때, 나는 그 직선의 미로를 떠올린다. 그 미로 속에서 나는 어디로도 빠져나갈 수 없는 공간 속에 갇혔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럴 때면, 일전에 중국의 변방을 여행하던 기억이 되살아나곤 한다. 외몽고의 하호허투에서 나는 새벽에 깨어나자마자, 일행 중의 한 사람과 호텔을 나와 택시를 잡아타고 사막으로 향했다. 사막의 지평선 위로 해가 떠오르는 일출의 광경을 보기 위해서였다. 중국어를 할 줄 아는 내 동료에게서 우리의 뜻을 전해들은 몽고인 운전수는 내내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윽고 우리는 길이 끝나는 곳에서 차에서 내려 컴컴한 사막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모래는 거칠었고, 도처에 덤불들만이 짐승처럼 웅크리고 있을 뿐이었다. 한참 동안 걸었을 때, 마침내 시야 저 끝이 훤하게 밝아오기 시작했고, 우리는 그쪽을 향해 계속 걸어갔다. 그러나 우리가 기대했던, 떠오르는 태양의 빛은 볼 수 없었다. 다만 어둠의 농도가 조금씩 옅어지면서, 온 세상이 뿌옇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었다. 우리 주위에서 잿빛 사막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는데, 놀랍게도 하늘 또한 사막과 똑같은 빛이었다. 게다가 그 하늘이 얼마나 낮게 내려앉아 있었는지, 마치 천장이 너무 낮아서 고개를 똑바로 들기가 힘든 방안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우리는 그 낮고 희뿌연 천장을 머리에 이고서 계속 쉬지 않고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미로 속에 갇혔음을 알고 있었다. 더욱이 그 광활한 미로 속에서, 어디로 나아가도 우리의 발길이 어떤 방향성도 가질 수 없었던 탓에, 우리는 그저 직선 위에 머물러 있었다. 그래도 헛되이 직선이라도 그리며 앞으로 나아가려고 애썼지만, 그러나 우리 자신이 그리는 직선 위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나는 문득 직선 위의 미로라는 개념을 머리에 떠올리고서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그 가슴 시린 깨달음에 고무되어 나의 동료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의 말소리는 위로 올라가 낮은 천장에 부딪쳤다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려 먼지를 풀풀 일으켰다. 한 마디로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좁았다. 우리가 나눈 대화는 대략 이런 것이었다. 삶이 사막처럼 광활하게 여겨져도, 정작 우리는 우리가 긋고 있는 직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의 삶이 직선 위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는 까닭은 무엇보다도 우리 삶이 탄생일로부터 죽음을 향해 직선으로 내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아무리 발버둥을 치며 하늘과 땅과 지하로 온갖 우회로를 찾아보아도, 결국 직선이라는 외길을 걷고 있을 따름이다. 우리가 아무리 유턴을 하고 후진을 하고 차선을 바꾸어도, 차에서 내리지 않는 한 차도라는 직선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윤회의 원도 그 직선 속에 들어 있다. 이 직선이 윤회의 원을 구성하는 작은 부분이라는 생각마저도 사치스럽게 여겨지는 것이다.

앞뒤로 다른 자동차들 사이에 꽉 낀 채, 천장이 낮은 내 자동차 안에 앉아 그때의 일을 떠올릴 때면, 또한 나는 어쩔 수 없이 목에 통증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럴 때면 등뼈가 곧추서 있고 그 위에 두개골이 얹어져 있는 우리 몸의 구조가 실로 기이하게 느껴지곤 한다. 조만간 허물어지고 말 이 등뼈라는 직선이 허망하게만 여겨진다. 우리가 아무리 등뼈를 꼿꼿이 세우고서 그 위의 두개골을 이리저리 돌려 시야를 확보하려 해도, 우리는 단지 우리 앞의 직선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수시로 내 목에서 실제로 머리가 바닥에 뚝 떨어져내려 떼구루 굴러가는 광경을 목도하곤 한다.

그러나 외몽고의 사막에서 우리가 나눈 대화는 그렇게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방식으로 마무리되지만은 않았다. 비록 우리가 직선 위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그 직선이 미로가 될 수 있다는 사실, 게다가 따지고 보면 라비린토스만큼이나 복잡한 미로이기도 하다는 사실에 우리 삶의 구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직선에는 시간이 흐르고 있으며, 그 시간은 생명력을 불러일으키는 원초적인 전류와도 같은 것이다. 그 직선 위에서는 시간이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를 향해 흐르고 있고, 우리는 그 속에서 다시금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시간대 속을 우리의 자유의지로 횡행할 수 있다. 그 점이야말로 직선이 미로가 될 수 있는 조건이자 명분이다. 우리는 어차피 이 미로를 벗어날 수 없으므로, 이 미로를 탐색해야 하고, 그 탐색의 과정을 통해 미래와 현재와 과거 속을 넘나들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 삶의 의미에 다가설 수 있고, 아울러 이 직선의 속성도 깨달을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지금 나는 혼자 타는 시소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시소를 혼자 타려면 그 위에 올라가 한가운데에 버티고 서서 이쪽저쪽으로 번갈아 발에 힘을 주어 움직이면 된다. 그렇게 할 때, 그 시소라는 직선은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우리의 균형과 안정을 뒤흔든다. 내 두개골이 시소 위로 떨어져 내려 그 위에서 이쪽저쪽으로 글러 다닌다. 그때 문득 우리는, 아무리 움직여도 짧은 직선상에 있다는 느낌, 차도 위에서 미아가 된 기분, 끊임없이 차선을 바꾸며 추월을 해도 계속 뒤처지는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단초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이제 나는 다시 외몽고의 그 사막으로 돌아간다. 길이 끝난 곳에서, 우리는 택시와 운전수를 기다리게 하고서 어두컴컴한 사막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스무 살가량의 운전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우리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어디로 내딛든 우리의 발걸음은 직선을 그리고 있었다. 사실, 나는 전날 술을 많이 마신 탓에 몸 상태가 영 좋지 않았다. 내 다리는 약간 비틀거리기까지 했다. 어느 순간, 내 코에서 피가 주르

1988년 윤동주문학상, 1993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륵 흘러내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숙였고, 그 상태로 피가 흘러내리게 했다. 코에서 떨어진 코피가 모랫바람에 붉은 먼지처럼 사방으로 날렸다. 그때 나는 하늘을 낮은 천장처럼 머리에 이고 있는 그곳에서, 답답함 못지않게 더할 나위 없는 해방감을 느꼈다.

이제 심하게 정체되는 차도 위에서 운전을 하고 있는 지금, 나는 다시금 직선 위의 미로를 눈앞에 떠올리고서, 하호허투의 사막과 서울의 거리와 어느 이역의 숲속 풍경에 내 몸과 마음을 맡긴 채, 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자유로이 오가면서, 우리 삶의 열린 가능성이라는 미로 속을 탐색한다. 그러면서 그 역동성과 해방감을 만끽한다.

최수철/ 한신대`문예창작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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