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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아닌 ‘우리’의 사회학, 이제 생태정치학으로
'너/나'아닌 ‘우리’의 사회학, 이제 생태정치학으로
  • 김환석 국민대
  • 승인 2007.02.02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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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지성_프랑스 과학기술사회학자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

브뤼노 라투르(영어권에서는 ‘브루노 라투어’라고 부름)는 1947년생으로 프랑스 와인의 유명한 생산지중 하나인 부르고뉴 지방의 본느에서 ‘루이 라투르’라는 전통있는 와인제조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프랑스의 지식인들을 보통 배출하는 에콜노르말 출신이 아니라, 지방도시인 부르고뉴의 디종(Dijon)에서 대학을 다녔다. 대학에서는 철학 및 성경해석 분야로 학위를 받았고, 그 후 군복무에 해당하는 프랑스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아프리카(아이보리 코스트)에 건너가서 인류학적 현지조사 훈련을 통해 사회과학으로 학문적 관심을 돌렸다. 그리고 나서 1975년 아프리카와 대조되는 문화를 탐구하기 위해서 미국으로 건너가 실험실에 대한 민속지 연구를 수행함으로써 본격적으로 과학학(Science Studies) 분야에 뛰어들게 되었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소크생물학연구소(Salk Institute for Biological Studies)에서 1975년 10월부터 1977년 8월까지 이루어진 이 참여관찰 연구결과를, 라투르는 영국의 과학사회학자 스티브 울가(Steve Woolgar)와 함께 정리하여 1979년 '실험실 생활: 과학적 사실의 사회적 구성'(Laboratory Life: The Social Construction of Scientific Facts)이란 책으로 펴냈다. 이 책은 사실상 실험실에서 과학자들이 행하는 일상적 활동에 대한 세부연구로서는 첫 시도였으며, 학계의 대단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면서 이후 ‘실험실연구’로 이름 붙여진 과학학의 새로운 흐름을 선도하는 역할을 하였다. 라투르는 이때부터 특히 영미권 학자들에게 명성을 얻게 되었고 과학학뿐 아니라 여러 분야의 학자들이 그의 독특한 관점과 설명방식을 두고 열띤 논쟁을 벌였다.

이후 그는 1982년 파리 국립고등광업대학교 혁신사회학센터에 합류하여 그곳의 교수인 미셸 칼롱(Michel Callon)과 더불어 이른바 '행위자-연결망 이론'(ANT, Actor-Network Theory)을 본격적으로 이론화하는 데 매진하였다. ANT의 창시자는 칼롱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을 전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것은 라투르였다. 특히 라투르는 ANT의 철학적 기초를 마련하고 방법론을 확립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는데,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세르(Michel Serres)의 비근대주의 과학철학과 그레마스(A. J. Greimas)의 구조주의 기호학, 그리고 가핑클(Harold Garfinkel)의 민속방법론이다. ANT는 실험실 내부의 분석에 머물던 그의 과학학 연구를 실험실 외부로 확장시키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는데, 그 결실로서 나온 저작이 '프랑스의 파스퇴르화'(The Pasteurization of France, 불어판 1984; 영어판, 1988)와 '과학의 실천'(Science in Action, 1987)이다. 이 두 권의 책으로 과학학자로서의 그의 명성은 국제적으로 확고해졌으며, ANT는 과학지식사회학(Sociology of Scientific Knowledge)이 주도하던 과학학 분야에서 새로운 지배적 이론으로 점차 부상하게 되었다.
탈냉전 시대인 1990년대 이후 그는 자신의 이론을 단지 과학과 기술만이 아닌 정치나 환경, 예술, 사법, 종교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의 분석에 적용하는 시도를 해왔다. 그러면서 그는 과학학에서 출발한 ANT를 근대주의와 탈근대주의 모두를 넘어서는 ‘비근대주의’(non-modernism) 일반이론으로 확대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짤막하지만 그의 비근대주의 사상을 잘 드러내는 것이 '우리는 결코 근대적이었던 적이 없었다'(We Have Never Been Modern, 불어판 1991; 영어판 1993)라는 저서이다. 이 책은 현재까지 15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라투르의 저서 중에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한 저서가 되었다. 그리고 파리 자동지하철 시스템의 사례분석서인 '아라미스 또는 기술 사랑'(Aramis or the Love of Technology, 불어판 1992; 영어판 1996)은 일종의 추리소설과 비슷한 독특한 형식으로 주목을 끌었다. 이외에도 소위 ‘과학전쟁’의 쟁점에 대한 그의 입장을 제시한 '판도라의 희망: 과학학의 현실에 대한 에세이'(Pandoras Hope: Essays on the Reality of Science Studies, 1999), 환경에 대한 정치철학서인 '자연의 정치학'(Politics of Nature: How to Bring the Sciences into Democracy, 불어판 1999; 영어판 2004), 그리고 프랑스 최고행정재판소에 관한 민속지 연구서인 '법에 대해 쓰기'(Ecrire le droit: une ethnographie du Conseil d'Etat, 2002) 등 정력적인 저술을 계속하고 있다.

라투르는 2006년에 오래 몸담았던 국립고등광업대학교를 떠나 사회과학 분야의 엘리트 양성기관인 파리 정치연구대학교(Sciences-Po Paris)의 사회학 정교수로 옮겨갔다. 하지만 그의 활동무대는 단지 프랑스만이 아니라,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교(샌디에이고), 영국의 런던정경대학교, 미국 하버드대학교 과학사학과의 방문교수를 역임하는 등 해외 여러 나라에 걸쳐 있다. 2002년과 2005년에는 독일 칼스루에의 예술 및 미디어 센터(ZKM)가 개최한 국제예술전시회의 공동 큐레이터로 활약하기도 하였다. 더 나아가 과학학 분야의 대표적 국제학회인 4S(Society for Social Studies of Science)에서 수여하는 버널 상을 1992년에 받았고 이 학회의 회장을 2004-05년에 지낸 사실은, 그의 학문적 명성이 국제적으로 최고 수준에 도달했음을 나타낸다고 하겠다.
이렇게 라투르의 명성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지만, 정작 그의 이론이 어떤 내용이며 기존의 이론에 비해 무엇이 새롭고 더 나은가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가장 최근에 발간된 그의 저서 ‘사회이론의 재구성’(Reassembling the Social: an Introduction to Actor-Network Theory, 2005)에서 라투르는 바로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한 시도로서 그의 이론인 ANT의 요점을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그는 30년 전에 자신이 수행했던 실험실연구를 통해서 과학에 대한 순수한 ‘사회적’ 설명은 과학의 현실과는 다르며 따라서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임을 통렬히 깨달았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과학적 사실이 만들어지는 과정에는 인간들만이 아니라 비인간(실험대상, 실험기구 등)도 행위자의 역할을 하며, 인간-비인간 사이에 성공적 결합(즉 연결망)이 구축되지 않는 한 실험결과는 과학적 사실로 안정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만을 행위자로 상정해온 기존의 사회학을 단지 확장하여 과학에 적용하려는 시도는 실패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실패는 기존의 사회학이 성공을 거두었다고 간주해왔던 과학 이외의 영역들-정치, 경제, 종교, 문화 등-에 대해서도 과연 설명이 타당한 것이었는지 의문시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인간/비인간, 사회/자연, 주체/객체의 이분법은 바로 근대주의의 산물이며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잘못된 분업도 여기서 생겨났다고 라투르는 본다. 인간-비인간의 다양한 결합이 지속되어 왔다는 면에서 전근대와 근대가 분리되지 않음을 세르의 철학에서 배울 수 있고, 인간과 비인간의 행위를 대칭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 언어를 그레마스의 기호학에서 찾을 수 있으며, 사회학자의 개념을 부과할 것이 아니라 행위자 자신의 설명에 주목해야 함을 가핑클의 민속방법론이 깨닫게 해준다고 지적한다. ANT는 바로 이러한 통찰들에 영감을 받아 고안해낸 대안적인 사회학 방법론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면에서 그는 기존의 사회학을 ‘사회현상의 사회학’(sociology of the social)으로 부르고 이를 ANT로 대표되는 ‘결합체의 사회학’(sociology of associations)과 대비시키면서 후자에만 사회이론의 희망이 있음을 강조한다.

이처럼 라투르는 ANT를 단지 과학학 이론으로서가 아니라 일반적인 사회이론으로 제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ANT의 바탕에 깔린 그의 ‘비근대주의’ 철학은 최근의 책 ‘자연의 정치학’에서 일종의 새로운 생태정치학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는 ‘자연’이란 범주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와 더불어 근대주의의 구성물이라면, 이런 ‘자연’ 개념에 의존하고 있는 현재의 많은 녹색운동들은 근대주의 기획을 변혁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명을 연장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러한 한계를 벗어나 현재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생태적 위기를 해결하려면, 기술과학이 마땅히 논쟁과 타협의 정치적 과정을 거쳐야 하며 이를 통해 인간과 비인간이 지금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결합되는 새로운 공생의 실험--즉 벨기에의 과학철학자 이사벨 스텐저스(Isabelle Stengers)가 제창하는 ‘코스모폴리틱스’와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그는 역설하고 있다.

김환석 /국민대 사회학


필자는 영국 런던대학교 임페리얼칼리지에서 과학기술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과학기술학회 회장이자 대통령 산하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의 위원으로, 저서로는 ‘과학사회학의 쟁점들’, ‘진보의 패러독스: 과학기술의 민주화를 위하여’ 등이 있다.

 

 

 

<라투르 어록>

"우리는 동시에 말하는 두 모순적인 목소리와 더불어 사는 걸 배우지 않으면 안되는데, 그건 ‘만들어지고 있는 과학’(science in the making)의 목소리와 ‘이미 만들어진 과학’(ready made science)의 목소리다. 후자는 사실(=과학)과 기계(=기술)가 항상 충분히 잘 결정된다고 간주한다. 전자는 만들어지고 있는 사실과 기계는 항상 과소결정 된다고 주장한다. 즉 해당 블랙박스를 완전히 닫아버리기에는 어떤 작은 것이 항상 빠져 있다고 보는 것이다”(Latour, <과학의 실천>, 1987: 13).

“우리가 대면하는 것은 결코 과학, 기술, 사회가 아니라, 약하거나 강한 ‘결합체들’(associations)이다. 따라서 사실과 기계가 ‘무엇’이냐를 이해하는 일은 사람들이 ‘누구’이냐를 이해하는 것과 동일한 임무이다”(Latour, <과학의 실천>, 1987: 259).

"'실재’와 ‘비실재’, ‘실재’와 ‘가능성’, ‘실재’와 ‘상상’ 사이에는 아무 차이가 없다. 그보다 모든 차이는 오래 저항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용기있게 저항하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 어떻게 동맹을 맺거나 자신을 분리시키는 줄 아는 것과 그런 걸 모르는 것 사이에서 경험되는 것이다”(Latour, <프랑스의 파스퇴르화>, 1988: 159).

“근대적이라는 것은 이중의 모순을 말하는데, 하나는 ‘자연’과 ‘사회’의 두 헌법적 보장 사이의 모순이요, 다른 하나는 ‘정화’의 실천과 ‘매개’의 실천 사이의 모순이다”(Latour, <우리는 근대적이었던 적이 없었다>, 1993: 62).

“우리는 우리의 설명을 객체 또는 주체(사회)로 알려진 두 순수 형태에 집착할 필요가 없는데, 왜냐면 이들은 우리의 유일한 관심사인 중심적 실천 형태의 부분적이고 정화된 결과일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설명도 사실상 ‘자연’과 ‘사회’를 얻게 되지만, 이는 출발점이 아닌 최종 결과로서 그럴 뿐이다. ‘자연’은 돌지만 주체(사회)를 중심으로 도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사물과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집합을 중심으로 돈다. ‘주체’도 돌지만 ‘자연’을 중심으로 돌지는 않는다. 사람과 사물들이 창출되는 집합을 중심으로 도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침내 중간왕국이 재현된다. 자연들과 사회들은 그것의 위성들에 불과하다”(Latour, <우리는 근대적이었던 적이 없었다>, 1993: 79).

“과학학의 기획은, 과학 전사들이 만인에게 믿게 하려는 바와는 정반대로, 과학과 사회 사이에 “어떤 연관”이 존재한다는 것을 ‘선험적으로’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왜냐면 이 연관의 존재 여부는 그것을 확립하기 위해 행위자들이 행한 것 또는 행하지 않은 것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과학학은 단지 그런 연관이 ‘존재할 경우’ 그것을 추적하는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다”(Latour, <판도라의 희망>, 1999: 86-7).

“전통적으로 공동 선(도덕가의 관심사항)과 공동 세계(자연에 의해 주어진)를 구분해온 것에 반하여, 나는 ‘자연의 정치학’ 대신에 ‘한 공동 세계의 점진적 구성’이라 부르자고 제안한 바 있다. 나의 견해에 의하면, 이것이 과학과 정치를 재정의하고 다양한 생태적 위기로 인해 우리에게 강요된 정치적 인식론의 임무를 수행하는 길이다”(<사회이론의 재구성>, 2005: 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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