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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 경부운하의 위험한 정치적 담론화
[교수논평] 경부운하의 위험한 정치적 담론화
  • 조명래 단국대 도시계획
  • 승인 2006.12.26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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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운하는 1990년대 중반 한 토목전문가의 국토개조론 일환으로 제시됐다. 그러나 당시로서 이는 ‘토목적 공상’ 이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1996년 이명박 의원이 대정부 질의에서 경부운하 건설을 제안할 때까지도 그러했다.


경부운하에 쐐기를 박았던 것은 1996년 국토연구원이 제출한 ‘경부운하건설의 타당성 결여’란 연구결과였다. 이는 ‘경부운하에 대한 사실상의 사망선고’로 일컬어졌다. 그 후 2005년 청계천 복원을 앞두고 인기가 상승하던 이명박 시장은 언론들을 통해 경부운하를 청계천 이후의 대선과제로 경부운하를 가져갈 것을 흘렸다. 죽은 줄 알았던 경부운하는 8년만에 청계천 복원의 ‘정치적 영감’ 덕분에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되살아 난 경부운하는 더 이상 순수한 토목·토건적 과제가 아니라 정치적 과제로, 그 담론은 더 이상 토건적 가능성을 둘러싼 것이 아니라 정치적 지지와 반대를 둘러싼 것으로 변질되어 있다.


이때부터 이 전 시장은 경부운하를 청계천 다음 사업으로서가 아니라 미래를 이끌 지도자로서 그의 통치철학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퇴임 후 내륙탐사를 하고 독일 ‘라인-마인-도나우 운하’를 둘러보는 자리에서 그는 경부운하건설을 ‘한반도 국운 재융성 프로젝트’로까지 담론을 부풀렸다.

 

왜 하필이면 ‘경부운하’인가? 이는 일단 청계천 신화로 입증된 건설회사 CEO 출신이란 이명박 전 시장의 토목적 리더십이 반영되어 선정된 것이다. 그러나 경부운하는 청계천 보다 훨씬 더 분명한 정치공학적 기제로서 선택됐다.


경부운하 건설은 불확실성이 대단히 큰 토목사업이다. 해서 찬반이 있을 수 있지만 옳고 그름의 정답이 없는 전형적인 담론적 쟁점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경부운하가 단순히 정치적 담론으로 포획되는 상태만 아니라 그 포획을 통해 경부운하를 정치적 의제로 내건 정치인에 대한 정치적 반대가 지지로 전환되는 기제를 담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경부운하가 고도의 정치적 정략으로 다루어질 수 있음을 뜻한다. 이명박 전 시장의 한 측근은 실제 ‘(경부운하는) 선거란 담론적 정치과정에서 강한 안티를 불러내는 동시에

그 안티를 극복하는 가운데 강한 정치적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그랜드 플랜에 적합하다’고 고백했다. 물론 공약으로 다루어진다 해서 안티가 찬성으로 자동적으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정치사회적 공작이 필히 매개되어야 한다.


이 매개는 정치적 담론조작을 말한다. 정치적 의제로 선택한 후 이 전시장은 언론과의 잦은 인터뷰를 통해 경부운하를 ‘내륙운하’, ‘한반도 대운하’ 등의 용어로 확장하면서, 동시에 ‘경부운하 건설을 반대하는 측에 대해 ‘정치적 공세’이고, ‘반대를 위한 반대’이며, 또한 ‘모르고 하는 소리’라는 담론적 주장을 펴고 있다.


그의 주장에 신뢰성을 부여하기 위해 그는 ‘내륙운하는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내놓은 즉흥적 발상이 아니라 국가적 사업’이며 ‘경제효과, 환경효과, 국토균형발전은 물론 국운 융성’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담론적 상징조작을 끝없이 시도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인류역사는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능성을 믿는 리더십에 의해

이뤄진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의 리더십에 대한 믿음을 이끌어내기 위해 그는 ‘숙고’, ‘준비’, ‘검토’ 등의 말을 즐겨 사용하고 있다. 경부운하와 관련하여, 그는 ‘오랜 숙고의 산물’로 ‘오래 동안 준비 해 왔으며’ ‘국내외 학자 60~70여명이 10년간 기술적 검토를 마쳤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는 경부운하의 타당성 결여란 결론을 번복시킬 그 어떠한 근거나 자료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이런 점에서 ‘숙고’, ‘준비’, ‘검토’가 끝났다는 그의 말은 담론적 상징조작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죽은 경부운하’가 되살아나는 것은 이렇듯 전적으로 정치적 담론화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경부운하의 정치적 담론화는 참으로 위험하다. 담론적으로 조작되고 정치적으로 지지를 획득하면 이 사업은 쉽게 현실화될 수 있다.


문제는 그 이후다. 체계적인 검토와 논의가 없이 정치적 선동에 의해 경부운하가 추진되면, ‘재앙’에 가까운 국토환경의 파괴, 한반도 생태역사와 생태문화의 단절, 지방 신개발주의의 확산, 개발독재의 등장과 같은 후유증이 오래 동안 남을 수 있다.


우리가 특히 우려하는 것은 20세기 개발주의 패러다임으로 21세기 한국사회의 발전에 관한 비전을 제시하고 또한 이를 실현하고자 하는 시대에 한물간 리더십의 문제다. 아무리 기술적으로 가능하고 경제적으로 타당하다 하더라도, 경부운하는 21세기를 이끌 지도자가 올인 할 성질의 국가적 의제는 아닌 듯 싶다.

조명래 단국대 ㆍ도시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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